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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성폭력 피해 신고·상담, 주저하지 마세요”
아청법 개정된 2012년부터 활동한 신진희 피해자 국선 전담 변호사 "신고 의지·정부 지원 중요"
"'미투' 이후 달라진 인식…30년 전 피해 도울 수 없어 안타까워"
2019-08-20 06:00:00 2019-08-20 06:00:00
[뉴스토마토 최서윤 기자] 지난 12일 ‘신림동 사건’ 첫 재판에서는 피해자 신원이 공개되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질 뻔했다. 비록 강간미수혐의를 다투고 있지만 엄연히 성폭력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임에도 이미 CCTV 영상이 인터넷에 공개됐다는 이유로 공개법정에서 증거조사를 진행하는 데 소송당사자인 검사와 변호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것이다. 이 상황을 막아선 이가 바로 피해자를 대신해 법정에 선 신진희 변호사였다. 신 변호사는 “일부 화면이 공개돼 있더라도 그 외에 다른 게 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재판장이 이를 받아들여 방청석에 퇴정을 명령했다. 제도화된 지 7년이 지났지만 아직 생소한 ‘피해자 변호사’의 역할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뉴스토마토>는 대한법률구조공단 소속으로 7년째 성폭력 피해자 국선 전담으로 활동하는 신진희 변호사를 만났다. 
 
신 변호사는 일주일 전인 당시 상황에 대해 최근 인사이동으로 공판검사가 바뀌면서 일어난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신 변호사도 당황한 건 사실이다. 그는 기록을 보다보면 개인정보를 놓치기가 정말 쉽다. 윗부분을 가려도 수사보고서를 내려가다 순간 놓치면 피해자 이름이 기재된 부분이 공개될 수 있다면서 아니나 다를까 그날도 비공개로 증거조사를 하던 중 피해자 이름이 나왔다. 진짜 조심해야 된다고 했다. 물론 형사사건에서 피해자를 대리하는 소송당사자는 검사다. 그러나 검사는 피해자 보호보다 가해자 엄벌에 좀 더 집중하기 쉽다. 사건을 보는 눈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종종 일어난다. 신 변호사는 피해자가 더 이상 한국에 없는 외국인이라거나 멀리서 찍혀 식별이 쉽지 않은 영상의 경우 굳이 비공개할 필요 있나하는 판·검사가 있다면서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단언했다. 그는 사건을 보는 눈에 따라 기자나, 다른 사건 변호인, 비슷한 성범죄를 저지르고 재판 대기 중인 피고인 등은 제각기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예를 들어 준강간 사건의 경우 술 취한 여성이 비틀거리는 모습이 나올 수도 있는데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빌미를 줄 수도 있고, 얼굴이 공개되면 더 가혹할 수 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해선 비공개가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신진희 대한법률구조공단 소속 성폭력 피해자 국선 전담 변호사. 사진/신진희 변호사
 
2012년 아동·청소년2013년 전체로 확대된 성폭력 피해자 변호사제도
 
신 변호사는 2012년 개정 아동청소년성보호법상 피해자 법률조력인이 처음 등장한 시점부터 피해자 변호사 일을 시작했다. 첫 사건을 맡은 그해 420일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6세 때부터 아버지 지인으로부터 상습 성폭행을 당해온 사실이, 아이가 여러 문제로 보호시설에 들어가게 되면서 13세가 돼서야 우연히 상담선생님과 대화 중 밝혀진 것이다. 7년이나 지난 사건이었지만 아이의 진술은 상당히 구체적이었고, 아동보호기관 및 봉사자들과 함께 모두 최선을 다한 끝에 16개월에 걸친 재판에서 가해자에 대해 징역 10년의 확정 판결을 받아냈다.
 
이듬해 피해자 변호사 제도는 그 대상이 확대됐다. 모든 성폭력 피해자에게 원하면 무료로 국선 변호사를 선임해준다. 성폭력 피해를 신고하면 경찰이 피해자 변호사 선임 의사를 확인토록 의무화했다. 헌법상 보장된 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이 형사소송법상 피해자진술권으로 규정됐지만 여전히 재판은 일반인에게 너무 어려웠고 대다수가 사회적 약자인 성폭력 사건 피해자들이 돈을 들이면서 소송당사자도 아닌 피해자 변호사를 선임하긴 어려운 사정을 반영했다. 현재 신 변호사를 포함한 성폭력 피해자 국선 전담 변호사는 21명이다. 그 외에 사선을 병행하는 피해자 국선 변호사들도 있다.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꼭 상담이라도 받아보세요.”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피해자의 의지. 신 변호사는 2011년 가정법률상담소에서 무료 상담을 하다 청각장애 남성에게 강간을 당해 결혼하게 된 청각장애 여성을 만난 적이 있다. 돕고 싶지만 10년 전 일이었고, 피해 여성이 원하는 건 사건처리가 아니라 그저 이혼이었다. 성폭력 피해자 변호사의 길로 들어서는 하나의 계기가 됐다.
 
도와달라고 했을 때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잘 모르는데, 경찰에 신고를 하거나 성폭력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거나 아니면 여성긴급전화 1366이나 해바라기센터에 전화하면 돼요. 문자나 이메일 상담도 있으니 꼭 받아보시는 걸 권하고 싶습니다. 너무 늦으면 증거라는 게 없어지잖아요. 피해사실을 말하기 어렵겠지만 용기내서 하셔야 권리구제도 받을 수 있고 그 길이 더 쉽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신 변호사가 인터뷰 중 수차례 반복한 말이다. 제도를 잘 모르거나 여전히 쉬쉬하는 관행이 남아 안타깝다. 그런 중에 미투 운동은 큰 전환점이 됐다. 신 변호사는 미투가 우리사회 인식 구조를 바꾸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서 미투 이후 이메일을 보내거나 전화 주시는 분들이 많다. 30년 전 사건 얘기도 하시고, ‘어릴 때 친척이, 삼촌이나 고모부가 만졌다는 얘기도 하신다고 소개했다. 대서특필되는 서지현 검사나 이윤택 감독 사건 기사를 접하면서 어떤 경우 가해자 처벌이 가능하고 어떤 경우에 처벌이 어려운지 학습효과도 있다는 게 신 변호사가 꼽는 미투 보도의 효과다. 그러나 여전히 가장 중요한 건 피해자의 도움 요청이다. ‘내 경우 가해자 처벌이 가능한지 아닌지판단하는 건 법률가의 도움 없인 어려운 일이다. 신 변호사는 한 번 문의해보시는 게 안 하는 것보단 낫다고 재차 강조했다.
 
 
신진희 성폭력 피해자 국선 전담 변호사가 지난 달 29일 경기도청에서 직장 내 성평등 관련 강의를 진행하는 모습. 사진/경기도청
 
신고의무제로 밝혀지는 친족 성폭력 사건들교사 역할 중요
 
피해자 의지에 이어 사건해결의 중요한 실마리로 추가해 강조한 건 교사의 역할이다 신 변호사는 생각보다 친족에 의한 아동 성폭력 사건이 굉장히 많다특히 무슨 행위인지도 모른 채 저학년 때부터 아빠나 오빠에게 당한 피해가 나중에 아이가 이상행동을 했을 때 이를 눈여겨 본 교사에 의해 알려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아이가 선생님에게 한 진술은 거짓말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신빙성도 높고 결과도 좋은 편이다. 과거엔 교사가 가정폭력에 관여해도 될지 눈치를 봤다면, 지금은 오히려 신고를 안 해 과태료를 물거나 은폐 시 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신 변호사는 신고의무제를 강화한 뒤부터 친족 성폭력 사건이 많이 밝혀지고 있다. 가해자 처벌도 징역 9~18년까지 받는 편이라며 선생님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다만 그는 가해자가 아버지 등 가장인 경우 경제적 부담을 느낀 친모의 강요로 신고를 꺼리는 경우도 존재한다면서 국가 지원이 있긴 하지만 월 50만원씩 3개월 지원에 그쳐 소용이 없다. 이 부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최서윤 기자 sabiduri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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