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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유열의 음악앨범’, 가슴을 흔드는 추억이 담긴 마법
‘엇갈리는 만남’ 두 남녀의 사랑 속에 숨은 기억과 추억의 본질
서로에 대한 끝없는 추억 되고 싶은 두 남녀의 상처 입은 기억
2019-08-21 13:45:46 2019-08-21 18:36:56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사진은 기억을 담고 있다. 과거의 상처는 기억이란 이름으로 남아 있다. 기억은 결코 추억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추억을 위해 억지로 웃는다. 아프기 때문에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웃을 수 밖에 없기에 너무도 아픈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속 미수(김고은)와 현우(정해인)에겐 기억뿐이다. 추억이 없다. 기억뿐이기에 두 사람에겐 각자가 웃음으로 감춰야 하는 상처만 있다. 그래서 미수는 현우의 웃음이 너무 좋았다. 현우는 자신을 웃게 해주는 미수가 너무 고마웠다.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에게 추억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안간힘을 쓰고 서로를 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꾸만 엇갈린다. 기억이 두 사람을 조금씩 엇나가게 비틀어 놓았다. 두 사람에게 기억은 결코 아름다움을 간직한 영원한 추억이 될 수는 없을까.
 
 
 
두 사람은 1975년생 동갑이다. 미수는 빠른 년생이라며 은근히 현우에게 거리를 둔다. 거리를 두고 싶어서 두는 건 아니다. 자신의 기억이 들킬지 모르기 때문인 것 같다. 현우도 그 거리를 유지해 준다. 자신의 기억을 미수가 알아 채는 것이 두렵다. 미수는 현우의 기억 속 상처가 무엇인지 궁금하지만 짐작만 한다. 자신의 제과점에서 일하던 현우가 그렇게 친구들과 떠나가던 그날에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고 확신했지만 그 확신이 거짓이 길 바랐던 것처럼. 그리고 현우도 돌아오고 싶었지만 아무리 발버둥쳐도 기억은 언제나 추억을 앞서고 있단 사실에 괴로워하며 돌아오지 못했다. 그렇게 현실은 현우를 자꾸만 붙잡고 미수는 그 현실을 원망조차 하지 못한 채 기억이 추억이 되기를 소망하며 기다렸다. 두 사람은 그렇게 너무도 아프기에 웃으며 지내온 순간의 연속으로 서로의 엇갈림을 받아 들이고 또 기억을 숨긴 채 추억을 쫓고 있었다.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스틸. 사진/CGV 아트하우스
 
1994년 시작된 영화는 2005년 어느 날까지 흘러간다. 그 시간 속에서 두 사람은 10대의 설레임과 20대의 고민 그리고 30대의 현실을 직접 경험하면서 기억을 떨치고 추억을 쫓는 자신들의 모습에 괴로워한다. 현우가 미수의 제과점에 처음 찾아온 날부터 미수가 현우의 곁을 떠난 그날까지 두 사람은 서로가 무엇을 숨기고 있었는지도 모른 채 기억에 사로 잡혀 각자 삶에 생채기만 남기고 있었다. 그럼에도 웃고 있었던 것은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제나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던 현우의 모습에 미수는 괴로웠던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엄마가 죽고 혼자 남은 채 제과점을 운영하던 자신의 힘든 시간. 친언니처럼 자신의 곁을 지켜줬지만 또 다른 삶을 위해 스스로를 버리고 살아가는 은자의 모습이 괴롭다. 그 모습이 미수에겐 기억일 뿐이다. 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재개발로 인해 추억을 담고 있던 동네는 하나 둘 비워지고, 엄마와의 추억이 담긴 제과점도 텅빈 공간으로 남게 돼 버렸다. 미수의 기억은 그렇게 하나 둘 비워져 가고 있었다. IMF와 함께 국문과 출신으로 글을 쓰고 싶었지만 공장에서 일하는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상처를 입고 눈물로 자신의 상처를 가리지만 사실 미수에게 상처는 웃을 수 밖에 없기에 숨길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상처를 가릴 수 있던 웃음과 잠시 이별을 선택한다. 그 웃음이 현우였다.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스틸. 사진/CGV 아트하우스
 
현우도 웃고 싶었다. 웃어야만 했다. 친구의 죽음에 사로 잡힌 그의 기억은 이미 과거다. 현우의 친구들은 지금도 그 기억에 사로 잡혀 살고 있다. 현우도 괴롭다. 기억이 다가올 자신의 추억을 밀어 내며 과거에 머물게 하고 있다. 그저 한 발짝 앞으로 나가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미수가 고맙고 보고 싶고 사랑스러웠다. 미수와 함께 있으면 그의 기억은 추억에 밀려 나갈 뿐이었다. 현실이 추억이 될지언정 잃고 싶지 않았기에 사진으로 한 장 한 장 남겨 두고 있었다. 현우는 정말 미수를 잡고 싶었다. 미수와 함께 하고 싶었지만 기억은 언제나 그를 잡아 두고 놓아주지 않았다. 친구의 죽음 이후 소년원에서 보낸 시간, 그리고 세상에 나올 때 무언가 한 가지만이라도 바뀌었길 바란 그의 소망은 라디오 프로그램 유열의 음악앨범뿐이다. 그 순간 눈앞에서 자신을 보고 있던 미수의 얼굴이 기억을 밀어내고 추억을 만들게 해 준 힘이었다.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스틸. 사진/CGV 아트하우스
 
유열의 음악앨범은 단순하다. 멜로 드라마다. 하지만 멜로 드라마가 아니다. 상처에 대한 얘기다. 만남고 헤어짐에 대한 반복의 스토리가 아니다. 상처를 입고 있었지만 그 상처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 채 기억에 사로 잡힌 한 여자와 한 남자의 얘기이다. 그 안에서 사랑이란 감정은 추억을 만들어 내는 현재가 된다. 현재는 추억이 될 수 있지만 지금 이 순간은 바로 다음 순간의 추억이 된다. 그래서 기억이 추억보다 아름답고, 너무 아프지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또 웃을 밖에 없기에 너무 아픈 기억을 두 사람은 각자 가슴에 담고 있었다.
 
영화는 시간의 흐름을 사진으로 남기며 두 사람이 갖고 있던 기억의 상처를 추억으로 치환시켜 준다. 그 안에서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조금씩 상처를 치유해 나간다. 서로에게 기억이 아닌 이름으로 불리며, 이름이 아닌 현실 속 미수와 현우로 존재하고, 지금도 추억이지만 바로 다음 순간에도 추억으로 남아 아프기에 웃을 수 있는 그 순간을 바라보고 싶어한다.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스틸. 사진/CGV 아트하우스
 
숨이 목구멍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뛰어가 미수를 잡은 현우. 그런 현우에게 뛰지마, 그러다 다쳐라며 끝내는 울음을 터트리는 미수. 이 영화에서 미수와 현우가 서로에게 각자의 기억이자 상처를 드러내는 유일한 순간이다. 너무 아프지만 웃을 수 없던 두 사람의 모습은 아련하고 아프다. 상처를 보듬던 서로의 웃음이 기억의 저편으로 숨어 버린 단 한 순간이기에 안타까울 뿐이다.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스틸. 사진/CGV 아트하우스
 
그럼에도 영화는 말한다. ‘유열의 음악앨범이다. 음악은 기억을 소환한다. 소환된 기억은 되짚고 곱씹으며 추억으로 되새김질 된다. 그것은 앨범에 하나하나 켜켜이 쌓여간다. 정지우 감독의 멜로 감성이 바라보는 추억은 분명히 아름다웠다. 단 한 번이라도 뜨겁게 사랑했던 남녀에겐 눈물보단 행복했던 추억을 선물한다. 정지우 감독은 가슴을 흔드는 추억이란 마법을 이번 영화에 오롯이 담아냈다. 아무리 아픈 기억도 추억을 통해 반드시 치유될 수 있다. 개봉은 오는 28.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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