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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프랑스 부자와 한국 부자
2019-12-10 06:00:00 2019-12-10 06:00:00
뉴욕에서 새로운 모드가 유행하면 6개월 후에는 서울에서 똑같은 현상이 벌어지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인터넷의 보급으로 이 과정은 더욱 짧아져 일주일도 채 안 걸린다. 그만큼 한국인들은 이문화(異文化)를 빨리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한국에 이식되지 않는 서구문화가 있다. 그것은 기부문화다. 밥 사주는 것을 너무나 잘하는 한국인들이 기부를 안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1차집단의 연결고리가 강해서일까. 얼굴도 모르는 2·3차 집단을 위한 기부는 생색이 잘 안 나니까.
 
기업도 마찬가지다. 우리 기업들은 기부에 너무 인색하다. 그 증거를 보자. 지난 4일 'CEO 스코어'는 국내 500대 기업의 기부금 내역을 발표했다. 이들이 2018년 낸 기부금은 총 3조 628억원이었다. 이는 전년 3조2277억원에 비해 5.1%(1648억원) 감소했다. 
 
20대 대기업의 기부금도 2016년 이후 감소하고 있다. 이들이 2016년 낸 기부금은 1조1456억원에서 2017년 9762억원으로 14.8%(1694억원) 줄었고, 2018년(9708억원)에는  15.3%(1748억원) 줄었다. 이처럼 기부금이 감소하고 있는 이유는 기업들의 기부 투명성을 위한 기부금 집행 과정이 까다로워졌고, 단순 금액 전달보다 기업들이 직접 나서 하는 사회공헌 활동이 늘었기 때문이다.
 
그럼 프랑스의 경우는 우리와 어떻게 다른가. 지난달 7일 토탈(TOTAL) 재단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파격적인 금액을 노트르담 재건축을 위해 내놓았다. 프랑스 제1의 에너지 회사인 토탈은 지난 4월 노트르담이 불타자 1억유로(한화 약 1277억원)를 기부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 약속을 실행하기 위해 토탈 그룹 회장 파트리크 뿌야네(Patrick Pouyanne)와 국가 문화재 재단 회장 기욤 뿌아트리날(Guillaume Poitrinal)은 지난 7일 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으로 토탈은 1억 유로를 2020년부터 5년간 분납한다. 
 
그렇다면 왜 토탈은 거액의 돈을 기부하는 것일까. 뿌아네 회장은 "토탈이 태어난 곳은 프랑스이고, 프랑스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기부금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토탈의 기부금은 전부 노트르담 재건축을 위해 사용해야 하고 다른 데 써서는 안 된다. 나는 일단 성당을 이전의 모습과 비슷하게 복구하는 것을 상상한다"라고 덧붙였다.   
 
토탈그룹은 13년 전부터 잠재적 관광 가치가 큰 건축물뿐만 아니라 지방의 소형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 프랑스 국가 문화재 재단을 후원하고 있다. 따라서 13년 동안 2800만유로(한화 3700억원)를 기부했고 이 기부금으로 13개 지방에서 232개 문화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는 토탈그룹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프랑스 일등 부호이자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 그룹 회장인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도 노트르담 재건비로 2억 유로(한화 약 2639억원)를 내겠다고 협정을 체결했다. 베르나르 회장은 "우리는 국가가 세운 스케줄에 따라 재건축 비용을 일부 조달해 특별한 이 유적의 개축을 도울 것이다. 노트르담은 언제나 노트르담으로 남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베르나르 회장의 라이벌이자 구치, 이브 생로랑, 부세롱 등 명품 옷과 엑세서리, 스포츠용품, 장식품을 유통하는 아르테미스와 케링(Artemis et Kering) 그룹 회장 프랑수아 피노(Francois Pinault) 역시 1억 유로의 기부 약속을 공식화하는 협정에 사인했다. 노트르담이 불탄지 6개월이 지난 지금 재건축을 위한 기부금이 9조유로 넘게 걷혔다고 프랑스 문화부장관 프랑크 리에스테르(Franck Riester)는 말한다. 
 
프랑스의 평범한 사람들도 기부를 하는 건 마찬가지다. 프랑스인 절반이 매년 기부를 하고 있고, 그들이 각자 내는 평균 기부금은 매년 400유로(한화 53만원). 합계는 20억유로(한화 2조6000억원)다. 그렇다면 프랑스인들은 우리와 달리 기부 DNA가 강한 것일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다만 그들이 기부를 하는 데는 기부 캠페인이 큰 몫을 한다. 적십자사와 같은 자선단체와 언론은 전국적으로 모금 캠페인을 벌인다. 'France 2TV'의 한 기자는 "기부는 아름답고 올해만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프랑스인들을 계몽한다. 게다가 해마다 연말이면 정부가 나서 유전성 질환자들을 위한 텔레통(Telethon·텔레비전 마라톤) 행사를 대대적으로 벌인다. 지난 8일 텔레통으로 모은 기부금은 7억4600만(한화 약 9845억원) 유로다.
 
남대문이 불탔을 때 한국의 대기업들은 얼마를 기부했을까. 연말연시 외롭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그들은 기부에 동참하고 있는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모르는 그들이라고 비난하기 이전에 그들이 자각할 수 있게 철학적 교육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요즘 TV를 보면 먹고 마시고 웃는 프로그램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계몽을 통한 의식교육이 선행돼야 한다. 기부문화도 마찬가지다. 연말연시 정부와 언론, 그리고 단체들은 솔선수범해서 자선행사를 대대적으로 벌이고 나눔의 미학이 주는 의미를 국민이 자각하게 하라.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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