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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아내를 죽였다’, 모든 게 나쁘진 않았지만…
강력한 오프닝 시퀀스, 관객 끌고 가는 스토리 동력?흥미↑
영화적 재료?설정 ‘우수’…문제는 매체 특성 희석된 결과물
2019-12-10 00:00:00 2019-12-10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좋은 재료다. 하지만 방식 문제다. 드라마와 영화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한 잘못된 선택이다. 저예산 영화 한계로 내몰기엔 변명과 변호가 너무도 명확한 한계에 부딪친다. 영화 아내를 죽였다는 포털사이트 다음 평점 9.4점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끈 동명 웹툰을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다. 원작 분위기와 장르적 아우라는 국내 상업 영화 시장에서 기준점 이상 흥행력을 보장하는 스릴러 외피를 쓰고 있다. 하지만 영화로 변주된 이번 작품은 드라마 요소가 강했다. 여기서 드라마는 서사가 아니다. 매체로서 개념이다. 영화와 드라마 구분은 화면과 장면을 구분하는 방식이다. 최근 상업 영화에선 사라진 플래시백을 주요 동력으로 사용한다. 인물들 감정 전달 방식으로 클로즈업을 자주 사용한다. 상업 영화로선 가장 배제시켜야 할 모든 동력을 끌어 온다. 이 두 가지만으로도 문제가 크지만 이 영화의 진짜 문제는 안정된 재료와 보장된 장르적 특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전개 방식이다. ‘블랙아웃이란 필름 끊김현상을 드러내는 대 플래시백을 난발한 것은 둘째다. 고민을 하지 않은 지점이다. 영화는 장르적 한계를 넘어설 가능성을 담은 매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장르 안에 구성을 가둬 버렸다. 장르 안에서 발휘할 상상력을 최대한 눌러버렸다. ‘아내를 죽였다는 딱 두 가지다. ‘아내를 죽였다는 명제 하나, 그리고 아내를 죽인 남편 정호(이시언)의 안타까운 고군분투뿐이다.
 
 
 
오프닝은 흥미롭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농밀한 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하지만 이 장면은 일종의 맥거핀’, 즉 떡밥이다. 농밀한 것으로 보인 이 장면은 사실 살인의 순간이다. 그리고 남자는 기억을 잃는다. 이 첫 스타트는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 잡고 끌고 가는 동력으로서의 역할은 충분했고 또 충실했다.
 
기억을 잃은 남자는 죽은 여자의 남편 정호다. 그는 아내를 죽였다. 하지만 죽이지 않았다. 정호는 결백하다. 그럼에도 기억은 없다. 죽인 것 같다. 그런데 죽였다고 하기엔 정황과 증거가 명확함에도 의심의 여지는 많다. 의심의 시작은 기억이 없단 점이다. 그는 이제 자신의 기억을 쫓는다.
 
영화 '아내를 죽였다' 스틸.
 
사건 발생과 함께 그는 경찰 최대연 경위(안내상)의 의심과 추적을 받는다. 필사적으로 도망을 치는 정호는 기억을 쫓아 자신의 과거를 하나 둘 되짚어 간다. 죽은 아내 미영(왕지혜)과 별거 중이지만 애틋한 사이였기에 그 죽음이 더 믿기지 않는다. 금전적으로 문제가 많은 정호는 사채업자 김실장(서지영)의 추적까지 받는다. 사면초가다. 그럼에도 밝혀야 할 것은 밝혀야 한다. 이대로 나락으로 떨어질 수는 없다. 이 과정에서 하나 둘씩 드러나는 정호 주변의 의혹, 그리고 정호 주변 인물들의 미묘한 변화와 행동들이 관객들의 눈과 머리를 흔들기 시작한다.
 
정호가 아내 미영을 죽였을까. 아니면 진짜 범인 따로 있을까. 이 두 가지 의문이 러닝타임 내내 이어진다. 앞서 언급한 오프닝에서의 강렬함은 이 질문의 함정에 걸려 든 관객들을 끌고 가는 것은 성공한다. 그리고 진실을 향해 달려가는 정호의 질주를 따라가는 것에도 함께 한다. 숨이 가쁘고 오감이 흔들린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영화 시작 초반까지다.

영화 '아내를 죽였다' 스틸.
 
과정에서 드러나는 이질적인 구성과 방식이 의외로 이 영화의 장르성을 희석시킨다. 플래시백과 클로즈업이 연이어 화면을 가득 채우면서 관람의 호흡을 끊어 버린다. 스릴러적인 장르 특성과 추적이란 코드는 의외로 흥미롭게 그려진다. 하지만 질주하는 본능을 연출에서 수시로 끊어 버리니 스토리의 맥이 저절로 단절된다.
 
제작 여건의 문제였을 수도 있고, 후반작업의 문제였을 수도 있다. 화면 질감의 이질적인 요소도 이 영화의 완성도를 끌어 내리는 지점이다. 디지털 상영 방식에 최적화시키는 후반 작업에서의 D.I(색보정)가 관람의 질감을 상당히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흡사 TV화면을 디지털 영사기로 투영시키는 느낌이 강하다. 결과적으로 TV 드라마와 영화 상영 포맷을 이해하지 못한 제작진의 미숙함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영화 '아내를 죽였다' 스틸.
 
정호의 혼란을 위해 곳곳에 배치한 인물의 맥거핀도 난발한 느낌이 적지 않다. 일부는 장치적으로도 활용되지 못한 느낌이 강하다. 메시지까지 담으려 했으니 과유불급이다.
 
재료는 의외로 괜찮다. 설정은 더욱 더 흥미롭다. 배우들의 고군분투가 안타깝지만 관람의 질감을 떨어트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영화 자체 문제다. 영화란 매체 인식이 부족한 제작진의 오류다. 고민을 하지 않았다면 기술적으로 그 한계를 덮어야 했다. 물론 그것도 모자랐다. 이 재료와 설정을 담기에 완성된 아내를 죽였다는 너무도 작은 찻잔이었다. 12 11일 개봉.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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