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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배성우의 ‘지푸라기’
“거절했던 배역, 너무 재미 없게 느껴진 인물…소설 읽고 생각 바꿔”
“영화처럼 돈가방 생긴다면…난 신고 뒤 경찰 올 때까지 가방 지켜”
2020-02-28 00:00:00 2020-02-28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서 배성우는 ‘짐승’이라기 보단 ‘지푸라기’에 가깝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여러 짐승들 속에서 그는 가장 가냘프다. 몸매 얘기가 아니다. 삶에 대한 얘기다. 그가 연기한 ‘중만’은 우리와 가장 닮아 있다. 삶을 살아가는 소시민이다. 그 삶이 닮은 것은 아니다. 어렵다. 치매를 앓는 노모(윤여정)를 부양 중이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운영하던 횟집은 망했다. 그는 빚을 지고 산다. 동네 목욕탕에서 허드렛일로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아내(진경)의 고생은 이만 저만이 아니다. 딸에게도 무시를 당한다. 집안 모두가 그의 무책임하고 무능력함을 무시한다. 그럼에도 그는 대책 없이 착하고 대책 없이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 그런 그의 눈 앞에 가방 하나가 나타났다. 5만 원짜리 돈다발이 가득 들어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 돈이면 모든 것을 한 방에 역전시킬 수 있다. 중만은 돈 가방을 손에 넣고 어쩔 줄 몰라 한다. 배우 배성우가 만들어 낸 ‘중만’의 삶이다. 그 모습 그대로가 이 영화 속 제목의 한 켠을 차지했다.
 
배우 배성우.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영화 개봉을 앞두고 서울 삼청동 카페 ‘보드레안다미로’에서 만난 배성우다. 관객들에게 그는 가장 감정 이입이 쉽고 가장 평범하며 가장 현실적인 인물 ‘중만’으로 보여진다. 기존 여러 영화에서 배성우는 코믹한 이미지와 강렬한 악역을 오가며 카리스마와 웃음을 모두 책임져 온 배우였다. 그에게 오히려 이번 영화 속 배역은 밋밋하게 재미없게 다가왔을 수도 있다.
 
“배우들이 정말 많이 출연하잖아요. 제가 제일 마지막으로 캐스팅이 됐어요. 전체적인 얘기는 재미가 있는데, 제 배역이 너무 재미가 없어서 사실 고사했던 작품이에요. 감독님과 다시 만났고 원작 소설을 읽어봤죠. 소설을 보니깐 ‘중만’ 캐릭터가 좀 더 와 닿더라고요. 사실 이 영화 제작자와 제가 좀 친해요. 나중에 출연을 결정하고 제작자를 통해 ‘윤여정 선생님이 아들로 배성우가 확정됐다’는 말에 너무 좋아하셨단 말을 듣고 뿌듯했죠.”
 
그가 고사를 했지만 결국 출연을 결정한 이유는 많다. 하지만 반대로 처음 출연을 거절했던 이유가 더 중요하게 들렸다. 배성우는 지금까지 여러 영화에 단골 조연으로 출연해 오며 임팩트 강한 존재감을 선보여 왔다. 그에게 배역의 기준점은 ‘특징적인 무엇’이 있어야 한 단 점이다. 반면 이번 영화에서 ‘중만’은 너무도 평범한 소시민이었다. 그게 문제였던 것이다.
 
배우 배성우.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전 이런 평범하고 밋밋한 배역을 해 본적이 거의 없어요(웃음). 매력도 못 느끼고요. 근데 원작 소설을 읽고 다시 시나리오를 보니 되게 중요한 인물로 다시 보이는 거에요. 퍼즐처럼 조각난 얘기의 키 포인트라고 할까. 중만을 통해서 사건이 급속도로 빠르게 흘러가잖아요. 그걸 좀 살리면서 저 나름의 재미를 주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그럼에도 선은 절대 넘지 말자는 원칙을 만들고 접근했죠.”
 
예고편에도 등장했지만 그의 애드리브 연기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스크린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돼 있다. 배성우 특유의 전매특허인 엇박자 호흡과 목소리 톤만으로도 관객 들의 웃음과 이야기 흐름 속에서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는 쉼표 역할도 한다. 그게 배성우만이 할 수 있는 애드리브의 힘이고, 타이밍이다.
 
“하하하, 너무 과찬이세요(웃음). 사실 제 분량만 놓고 보면 처음부터 중반까지는 되게 그냥 그렇잖아요. 하하하. 근데 중반 이후부턴 쫄깃해지죠(웃음). 그걸 좀 살려보려고 군데군데 애드리브를 넣었어요. 예고편에 등장한 ‘버릇이 없네’라고 하는 어색한 장면도 그날 현장에서 고민을 하다가 즉석에서 넣은 거에요. 에피소드라면 영화에서 제가 일하는 목욕탕 주인으로 나오는 허동원 배우가 제 애드리브를 듣고 눈물을 흘렸어요. 저한테 ‘형, 나 아버지 생각이 났어’하면서. 하하하.”
 
배우 배성우.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중만’의 평범하지만 돌출적이고, 밋밋하지만 불쑥 튀어나오는 존재감은 영화 속 그의 집안에서 더욱 불거진다. 어머니로 나오는 윤여정의 연기와 아내로 등장한 배우 진경과의 호흡은 명불허전이었다. 세 사람 모두 충무로에서 연기력 둘째가라면 서러울 실력파들이다. 그는 각각 대선배와 동료인 두 사람에게 큰 공을 돌렸다.
 
“사실 전 윤여정 선생님 연기를 보면서 ‘정말 엄마가 치매일까’ 싶은 의구심까지 들었어요. 전 현장에서 연기를 봤잖아요. 선생님의 그 미묘한 연기가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였어요. 전도연씨까지 선생님 연기를 보고 그랬다고 하니. 진경씨하고는 연극에서 부부로 두 번을 경험했죠. 아마 8년 만일 거에요. 동갑내기고 연극시절부터 워낙 친했어요. 호흡을 맞출 것도 없었죠. 하하하.”
 
배성우는 장르별로 색깔이 뚜렷해지는 배우 중에서 가장 대표적이다. 코미디 장르에선 웃음의 미학을 완벽하게 이해한 호흡과 타이밍으로 모든 흐름을 조율한다. 반대로 강렬한 장르 속에서의 악역으로 등장할 경우 서슬 퍼런 악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려낸다. 인간미 넘치는 순박한 이야기에서의 소시민을 연기할 땐 배성우 자체가 원래 그런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어 버린다.
 
배우 배성우.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어떤 장르던 어떤 인물이든 어떤 성격을 갖고 있든 사실 특별할 것은 없다고 봐요. 분석을 하고 현장에서 촬영에 들어가면 감정적으로 유기적인 움직임이 필요한데, 그 힘의 바탕은 결국 연기잖아요. 뭐 오래 이 일을 해왔으니 그냥 하는 거죠(웃음).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재미도 좀 다르긴 해요. 당연히 강한 엣지가 있는 인물이라면 더 재미가 있죠. 하지만 평범한 인물을 연기할 때도 또 다른 맛은 분명히 있어요.”
 
인터뷰 마지막에 인간 배성우와 배우 배성우로서의 선택을 물었다. 이번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속 중만처럼 눈 앞에 감당하기 힘든 일확천금이 떨어진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인간 배성우로서, 그리고 지금의 인지도 갖고 있는 배우 배성우로서의 두 가지 선택이 궁금했다. 그는 박장대소를 하면서 웃었다.
 
배우 배성우.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인간 배성우든 배우 배성우든 제 선택은 한 가지입니다. 제가 보기보다 쫄보에요. 하하하. 전 무조건 경찰에 신고할 겁니다. 신고해야죠. 당연히. 하하하. 글쎄요. 이번 영화를 찍어서 그런지 몰라도, 사람이 분수에 맞지 않게 뭘 공짜로 가지려고 하다 보면 탈이 나게 되요(웃음). 전 신고를 한 뒤 경찰이 올 때까지 그 자리에서 돈가방을 지키겠습니다. 하하하.”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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