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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살아있다’가 벗겨 낸 유아인의 두터운 껍질
“좋아했던 좀비 장르였다. ‘#살아있다’ 많이 다른 지점 보였다”
“진지하고 ‘딮’한 얘기 좋지만, 내가 그린 내 모습도 보여줄 때”
2020-06-28 00:00:00 2020-06-28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언제나 배우 유아인은 청춘의 고달픔, 힘듦, 상처를 그려내 왔다. 그의 얼굴은 청춘들의 고통을 담기에 아주 좋은 감정의 거울이었나 보다. 그를 필요로 하는 감독들의 요구는 그래서인지 비슷하고, 에둘러 얘기를 해도 언제나 같은 자리였다. 그에게 요구한 청춘의 얼굴은 공감하기에 무겁고, 이해하기에 어렵고, 소통하기에 고생스런 어떤 무엇이 있었다. 물론 유아인이 그런 얼굴로만 소비돼 온 또 다른 감정의 거울은 아니다. 그를 수식하는 단어는 참 많다. 생각이 깊고, 또 바른 말 잘하는 의식 있는 연예인, 한 편으론 주류의 안일함을 거북스럽게 생각하는 영원한 자발적 아웃사이더 정도. 그래서 유아인이 ‘#살아있다’ 속 노랗게 짧은 헤어스타일로 등장한 모습을 보고 있자면 ‘뭔가 또 세상을 향해 던지는 삐뚜름한 야수성’을 예감케 한다. 물론 그 예상을 빗나갔고, 그 빗나감이 놀라운 게 아니었다. 유아인도 일상의 평범함으로 살아날 수 있는 그저 똑 같은 청춘일 수도 있단 점이 눈에 들어왔다. 물론 그를 청춘이란 단어로 묶어 두기엔 35세란 나이가 조금은 무색해 진다. ‘#살아있다’로 살아 있음을 다시 한 번 증명한 유아인과의 대화다.
 
배우 유아인. 사진/UAA
 
‘베테랑’이란 상업 영화 끝판왕도 있었다. 하지만 유아인이라면 뭔가 의식 있고, 심도 깊고, 어떤 함의를 담고 있는 ‘그런 영화에 출연해야 하는 것 아닌가’란 대중들의 착각이 형성되기도 한다. 이런 질문에 유아인은 특유의 너털 웃음으로 화답한다. 결코 그렇지 않은 평범하고 그저 똑 같은 연기를 하는 직업인일 뿐이라며 웃는다. 그래도 유아인이라면 다른 시각으로 최소한 ‘#살아있다’를 바라봤을 것 같다.
 
“절 너무 과대평가 하시는 것 아닌가요(웃음). 그리 대단한 사람 아닙니다. 하하하. 그냥 이번 영화는 좀비 장르를 좋아했기에 참여했어요. 사실 좋아하지만 하고 싶단 생각은 못해봤죠. 국내에선 흔한 소재도 아니었고. 이 영화는 좀비 장르의 장점도 있고, 인물이 끌고 가는 지점에서의 차별화된 측면도 강했어요. 좀비 영화라면 물고 뜯고 도망치고. 뭔가 아주 심플하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는 아주 독특한 지점이 보였죠.”
 
우선 유아인이 말한 독특한 지점은 출연 배우가 극히 제한돼 있단 점이다. 좀비로 출연한 보조 출연자는 100여명이나 된다. 하지만 영화의 시작부터 초반 40분까진 오롯이 유아인 혼자 이 영화를 끌고 간다. 유아인의 표정과 대사 행동 그리고 감정이 만들어 내는 지점이 ‘#살아있다’는 초반 동력이다. 이런 색깔은 천하의 유아인도 불안하고 당황하게 만들긴 마찬가지였다.
 
배우 유아인. 사진/UAA
 
“아마 지금까지 출연했던 모든 영화 가운데 현장 편집본을 제일 많이 본 것 같아요. 전 현장에서도 모니터링을 잘 안 하는 배우 중 한 명이에요. 그런데 이번 영화는 저도 불안했죠. 혼자 끌고 가는 게 결코 쉽지 않단 건 누구나 다 아시는 점이고. 이게 자칫 잘못하면 루즈해지고, 흥미를 떨어트리고 재미를 해치는 효과가 나올 수 있단 위험이 크니까요. 한 배우의 얼굴만 40분을 보고 있는 게 재미보단 솔직히 지루함이 크죠(웃음). 그 시간 동안 흡인력을 만들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런 흡인력을 위해 우선 외모부터 파격적으로 변신을 했다. 노란 헤어스타일로 염색을 했다. 헤어 길이도 아주 짧은 스포츠 스타일이다. 사실 이 모습은 감독의 머리와 시나리오 속에 담긴 지점은 아니었다. 유아인이 이 영화를 촬영하기 전 촬영을 끝마친 ‘소리도 없이’란 영화 속 모습이다. ‘#살아있다’를 촬영할 당시에는 가발을 쓰고 실제로 2~3회차 정도까지 진행을 했었다고. 물론 나중에는 촬영된 분량을 모두 폐기했단다.
 
“원래는 이 머리가 아니었어요. 되게 컬이 있는 긴 머리인데(웃음). 뭔가 안 어울리는 느낌이었죠. 제가 전작 ‘소리도 없이’에서 짧게 자르고 나와서 지금의 짧은 머리인데, 촬영을 끝나고 가발을 벗었는데 제작사 대표님이 뭔가 괜찮은 것 같다고 하시고, 감독님도 고개를 갸우뚱하시고, 거기에 제가 짧은 머리에 탈색을 해 볼까 싶어서 했고,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금의 헤어스타일이 나와서 촬영을 해보니 스태프들도 다들 괜찮다고 하고(웃음). 안 그랬으면 ‘#살아있다’의 준우는 긴 머리의 샤방샤방한 모습이었을 겁니다. 하하하.”
 
배우 유아인. 사진/UAA
 
‘버닝’의 이창동 감독처럼 거장과의 작업도 해봤고, ‘베테랑’의 류승완 감독처럼 흥행 마술사로 불리는 연출자와의 작업도 해봤다. ‘#살아있다’는 ‘소리도 없이’와 함께 작년에 모두 촬영을 마친 영화다. 두 편 모두 데뷔 신인 감독이다. 현장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잘 내지 않는 편인 유아인이지만 이번 영화에선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감독과 함께 호흡하는 시도를 먼저 했다.
 
“이번 영화에는 비교적 의견을 많이 냈어요. 데뷔 이후 단 한 번도 신인 감독님과 작업한 적이 없는데 올해는 공교롭게도 두 편이 연달아 개봉을 하네요. 그래서인지 이전과는 다른 적극성이 좀 생겨 난 거 같아요. 기본적인 내 이미지 탓에 ‘싸가지 없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의견을 많이 내보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실제로 감독님이 수용을 하시고 최종 상영본에 적용을 한 것도 많으세요. 시나리오에는 있었는데 빼버린 장면도 있고. 감독님께 정말 감사드릴 지점이 많아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유아인은 의외로 감정적으로 깊은 작품들을 많이 했다. ‘베테랑’처럼 상업성이 짙은 영화도 있었지만 그 영화 속 악역은 충무로에서 또래 배우들이 출연을 꺼리기로 유명했던 배역이었다. 이렇듯 유아인은 장르 속에서 조금은 벗어난 색깔의 작품들을 많이 선택해 왔다. ‘#살아있다’는 사실상 유아인이 데뷔 이후 처음 선택한 거의 완벽한 장르물의 출발이다.
 
배우 유아인. 사진/UAA
 
“저? 진지한 거 좋아해요. 괜히 허세 부리려고 하는 게 아니라 감정적으로 깊은 작품도 좋아하고. 하지만 유아인이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걸 보여줘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느꼈죠. 진지하고 딮(deep)한 것만 좋아하는 유아인이 아니라, 유아인 스스로가 그리는 유아인은 이런 면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오히려 요즘 힘을 빼고 편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게 아니라, 30대 중반의 힘을 주고 보여 드리는 편한 모습도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작품에 다가서고 있어요.”
 
진지한 유아인에서 편한 유아인으로의 변신을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데뷔 이후 처음으로 자신의 집을 공개했다. 요즘은 예능에서 연예인들의 집을 공개하는 게 트랜드이지만 그 주인공이 유아인이면 얘기가 다르다.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하고, 아웃사이더의 개념이 강했던 그의 이미지는 이제 주류가 아닌 대중과의 소통 접점을 더 높이려는 그의 마음가짐이 더 강하게 담겨 있는 행동이다.
 
배우 유아인. 사진/UAA
 
“‘나 혼자 산다’를 통해 처음 집을 공개해요. 출연 제안을 제가 먼저 했어요. 이젠 그래도 될 것 같은 시기가 아닐까 싶었죠. ‘#살아있다’ 촬영하면서 먼저 출연하면 어떠냐고 제안했어요. 준우 같은 캐릭터면 예능에 출연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너무 꽁꽁 싸매서 숨겨서 갈 필요 없겠다 생각했어요. 준우는 관객과 대중과 함께 호흡하면서 어떤 지점을 만들어갈 배역이니. 이 영화 성격상 ‘나 혼자 산다’가 너무 적절한 연결고리 같았어요. 이번 예능 출연처럼 이젠 좀 너무 가리는 게 아니라 수용도 하면서 지내 보려고요(웃음)”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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