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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호

‘라면왕’ 영원히 잠들다…흙으로 돌아간 신춘호 회장

경남 밀양 선영에 안치...용산 자택에 이어 농심 본사 둘러본 뒤 영면

2021-03-30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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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전 서울 동작구 농심 본사에서 열린 고 신춘호 회장 영결식에서 유족 대표 신동원 부회장이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사진/농심
 
[뉴스토마토 유승호 기자] “아버님의 소박하면서도 위대한 정신적 유산인 농심 철학을 이어 나가겠다”
 
‘라면왕’ 고 신춘호 회장이 용산 자택에 이어 농심 본사를 둘러본 뒤 영면에 들었다. 고 신 회장은 경상남도 밀양시 선영에 안치된다.
 
29일 오전 5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을 마친 운구 행렬을 고 신 회장의 서울 용산구 자택으로 향했다. 이후 운구 차량은 서울 동작구 농심 본사로 향했다.
 
오전 7시 농심 본사에서 영결식이 엄수됐다.
 
영결식에는 고 신 회장의 장남인 신동원 농심 부회장을 비롯해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 신동익 메가마트 부회장, 신현주 농심기획 부회장,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과 부인인 차녀 신윤경 씨, 고인의 동생인 신준호 푸르밀 회장 등이 참석했다.
 
30일 오전 서울 동작구 농심 본사에서 고 신춘호 회장의 손자인 신상열 부장이 영정을 들고 영결식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농심
 
고 신 회장의 손자인 신상열 농심 부장이 영정 사진을 들고 영결식장에 입장했다. 이어 그 뒤를 신동원 부회장, 고 신 회장의 부인 김낙양 여사, 서경배 회장 등이 뒤따랐다.
 
박준 농심 부회장은 추모사를 통해 “막상 회장님께서 곁에 안 계시다 생각하니 허전한 마음이 물결처럼 밀려온다”며 “회장님께 배운 창조정신과 이웃을 이롭게 하는 농심철학, 그리고 한 발 더 발전하려는 도전정신을 잊지 않겠다”고 애도했다.
 
이어 고 신 회장의 장남인 신동원 농심 부회장은 “흙은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흙은 뿌린대로, 가꾸는대로 수확을 한다”며 “그리고 농부는 자신이 노력한 것 이상의 결실을 욕심내어 바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이것이 아버님이 가지고 계셨던 철학이며 저를 비롯한 후손들이 늘 잊지 않고 새기는 정신”이라며 “아버님의 소박하면서도 위대한 정신적 유산을 고스란히 받들어 이어가겠다”고 추모했다.
 
이외에도 신선호 일본 산사스식품 회장과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주정부, 이탈리아의 PVM, 일본 닛신 등은 추도서신을 보내 고 신 회장의 영면을 애도했다.
 
30일 오전 영결식을 마치고 고 신춘호 회장을 태운 운구 차량이 동작구 농심 사옥을 나서고 있다. 사진/농심
 
영결식이 끝나자 신춘호 회장을 태운 운구차량과 유가족을 태운 버스는 농심 사옥을 떠나 장지인 경상남도 밀양시 선영으로 향했다. 롯데그룹 창업주인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둘째 동생이자 신라면으로 세계를 울린 ‘라면왕’ 신춘호 회장은 92년의 생을 마치고 흙으로 돌아갔다.
 
고 신 회장은 1930년 12월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에서 태어났다. 부친 신진수 공과 모친 김필순 여사의 5남 5녀중 셋째 아들이다. 1958년 대학교 졸업 후 일본에서 성공한 고 신격호 회장을 도와 제과사업을 시작했으나 1963년부터 독자적인 사업을 모색했다.
 
고 신 회장은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전되던 일본에서 쉽고 빠르게 조리할 수 있는 라면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 1965년 농심의 전신인 롯데공업을 세우고 라면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어 1975년 농심라면 출시하고 1978년 농심으로 사명을 바꿨다.
 
1982년 사발면 출시 시식 회의 중인 고 신춘호 농심 회장(가운데)의 모습. 사진/농심
 
고 신 회장의 대표작은 신라면이다. 당시 브랜드는 대부분 회사명을 중심으로 정해졌으나 신 회장은 신라면으로 임원들을 설득했다. 발음이 편하고 소비자가 쉽게 주목할 수 있으면서 제품 속성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는 네이밍이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고 신 회장은 1986년 신라면을 출시하며 “나의 성(姓)을 이용해 라면 팔아보자는 게 아니다”며 “매우니까 간결하게 ‘매울 신(辛)’으로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라면은 1991년부터 국내시장을 석권하면서 국민라면으로 등극했다. 이어 고 신 회장은 신라면을 수출하고 1996년 상해공장 준공, 2005년 미국 LA 공장 준공을 통해 세계시장을 공략했다.
 
고 신 회장은 해외진출 초기부터 신라면의 세계화를 꿈꿨다. 한국의 맛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 당시 신 회장은 “농심 브랜드를 그대로 해외에 가져간다. 얼큰한 맛을 순화시키지도 말고 포장디자인도 바꾸지 말자”며 최고의 품질인 만큼 프리미엄의 이미지를 확보하자. 한국의 맛을 온전히 세계에 전하는 것하자”고 강조했다.
 
신라면. 사진/농심
 
고 신 회장의 대표작인 신라면은 현재 미국 등 전 세계 100여 국에 팔리고 있다. 특히 2018년 중국의 인민일보가 선정한 ‘중국인이 사랑하는 한국 명품’에 올랐으며 2020년 미국 뉴욕타임즈는 신라면블랙을 세계 최고의 라면 1위로 뽑았다.
 
한편 농심은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12.6% 증가한 2조6398억원, 영업이익은 103.4% 오른 1603억원을 달성했다. 게다가 지난해 해외 매출은 사상 처음으로 1조원을 넘었다.
 
유승호 기자 peter@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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