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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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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와 닮은꼴…국민의힘, 이태원 참사 '경찰 책임론'으로 급선회

112신고 묵살한 경찰에 "응당한 책임 물어야"…세월호 참사 때는 해경 해체

2022-11-0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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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유근윤 기자] 국민의힘이 156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를 경찰 책임으로 몰아가고 있다. 경찰이 이태원 참사 당일 '압사' 우려에 관한 112 신고를 받고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자 이번 참사의 책임을 경찰 탓으로 돌렸다. 이는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정부가 해양경찰을 해체, 정부 책임론을 차단한 것과 비슷한 접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에 휘청이다, 결국 국정농단으로 탄핵됐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2일 비대위 회의에서 "4번이나 현장 출동했던 경찰의 현장 판단이 왜 잘못됐는지, 기동대 병력 충원 등 충분한 현장 조치가 왜 취해지지 않았는지 그 원인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면서 "응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정 비대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서울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조문할 때만 해도 "지금은 추궁의 시간이라기보다 추모의 시간"이라며 정부의 수습에 힘을 실었다. 정부를 향한 책임론이 번지는 것을 경계한 사전 차단의 의미로 읽혔다. 
 
국민의힘이 경찰 책임을 제기하고 나선 데에는 참사 당일인 지난달 29일 11차례의 112 신고를 받고도 경찰이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경찰은 전날 이태원 참사 당일 112 신고 내역과 녹취록을 자진 공개했다. 공개 배경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고 정 비대위원장은 전했다. 신고 내역과 녹취록을 보면 참사 발생 4시간여 전부터 이태원 일대에서 압사를 우려하는 긴급 신고가 빗발쳤다. 첫 신고 접수 시간은 오후 6시34분이었다. 신고자는 "압사 당할 것 같다"며 경찰의 통제를 요청했다. 장소도 "해밀턴 호텔 골목 이마트24"라고 특정했다. 하지만 경찰은 11번의 신고 중 4번만 현장에 출동했을 뿐 별다른 예방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사전 대응에 손을 놓았던 경찰은 정권을 위해서는 민첩하게 움직였다. 경찰청 정보국은 이태원 참사 직후인 지난달 30일 주요 시민단체 동향을 파악해 '정책 참고자료'를 만들었다. 이번 참사가 제2의 세월호 참사로 연결될 경우 '정권퇴진운동'으로 사태가 비화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문건에는 구체적으로 "정부 책임론이 부각될 조짐이 있다"는 분석과 함께 세월호 참사와 이번 이태원 참사를 비교·분석, 특정 시민단체들의 동향 보고를 담았다. 경찰은 "일부 진보 성향 단체들은 세월호 이후 최대 참사로, 정권 퇴진 운동으로까지 끌고 갈 수 있을 만한 대형 이슈라며 긴급회의 개최 등 대응 계획을 논의 중"이라고 적었다. 
 
이에 국민의힘 유력 당권주자 중 한 명인 안철수 의원은 "정책 참고자료로 위장된 정치 문건"이라며 "(민간인)사찰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동시에 "112 신고 녹취록을 보면 조금도 변명할 여지가 없다"며 "윤희근 경찰청장을 즉시 경질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다른 당권주자인 조경태 의원도 이날 한 라디오에 출연해 "경찰의 무능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장동혁 원내대변인도 "경찰의 대응이 미흡했던 부분이 있다"고 경찰 책임을 물었다. 집권여당이 참사의 책임을 경찰에게 묻자, 경찰청은 이날 오후 이임재 용산경찰서장을 대기발령 조치했다. 
 
지난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시민들이 놓은 국화꽃이 놓여 있다. (사진=뉴시스)
  
일각에선 모든 흐름이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와 유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박근혜정부는 책임의 화살이 최종적으로 대통령에게 향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과 구원파로 언론의 관심을 돌렸고, 해양경찰 해체로 사태를 서둘러 종료시키려고 했다. 박근혜정부는 세월호 참사 한 달여 뒤인 5월19일 후속 대책으로 해양경찰청을 해체하겠다고 밝혔다.  
 
2014년 4월16일 오전 8시49분 세월호가 크게 기울기 시작했고, 4분 뒤인 8시52분부터 세월호에서 소방방재청(119)과 해양경찰청(122)으로 걸려온 신고 전화는 모두 18통이었다. 9시23분 마지막 신고 때까지 해경은 현장에 도착하지 못했다. 해경 지휘부는 골든타임을 한참 놓친 9시45분 무렵부터야 본격적인 선내 진입 구조를 지시했다. 또 세월호 참사 이후 국정원이 정부 책임론 확산을 막아야 한다며 유가족과 언론, 법원, 시민단체 등을 사찰하고, 내부 문건을 통해 민심과 여론을 관리할 방안을 자세히 적은 사실이 지난해 1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공개로 확인되기도 했다. 
 
유근윤 기자 9nyo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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