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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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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의 각성한 네오처럼, 세상 모든 것을 재테크 기호로 풀어 전하겠습니다....
(분양아파트 계약기)그 비싼 철산자이더헤리티지 계약한 ‘호구’입니다만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 또 고민…청약 이유 분명하면 소음 차단해야

2023-01-26 06:30

조회수 : 38,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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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요즘 같은 때 아파트를 분양받는 건 제정신으론 할 수 없는 일이랍니다. 적어도 부동산 커뮤니티 의견의 절반은 그렇다고 말합니다. 호구를 뜻하는 ‘흑우’라고 부르더군요.
 
그걸 기자가 했습니다. 시장 하락기에 내 집 마련을 주저하는 이들이 많을 것 같아 그 얘길 옮겨보려 합니다.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 주공아파트 8단지와 9단지를 재건축한 철산자이더헤리티지가 지난달 26일 특별공급을 시작으로 일반분양을 진행했습니다. 봄이면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풍경이 예뻤던 저층 단지였습니다. 오래 전부터 많은 광명시민들이 이곳의 재건축에 관심이 컸습니다. 지하철 7호선 철산역 가깝고 안양천 건너면 가산디지털밸리이고 관공서 주변에다 아이들 학교 보내기도 좋으니까요. 그런데 하필이면, 시기가 나빴죠. 
 
당첨되자 고민거리 줄줄이
 
철산동 옆의 옆 동네에 살다가 이곳을 재건축해 분양한다는 소식에, 당첨될 거란 생각을 하지 않고 청약했습니다. 1주택자가 100% 청약가점제 평형을 청약했는데, 아무리 심리가 위축됐기로서니 대기수요 많은 단지에서 될 리 없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예상은 빗나갔고 지난 4일 당첨됐다는 문자가 날아왔습니다. 청약경쟁률에서 미달이 발생해 제게도 순서가 돌아온 겁니다. 이때부터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계약금은 이것저것 깨서 맞춘다고 해도 중도금 내려면 사는 집을 팔아야 하는데 요즘 같은 때 팔리기는 할까? 중도금 대출을 받으면 높은 금리에 이자가 감당될까? 25평 분양가가 (매도가격에 따라) 지금 사는 33평 아파트와 비슷하거나 자칫하면 더 비쌀 텐데 괜찮은가? 분양가가 주변의 신축 시세보다 1억여원 낮긴 한데 그렇다고 마이너스 프리미엄 가능성이 없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이런 시기엔 차라리 서울 진입을 노리는 게 낫지 않을까? 무엇보다 추가 하락을 예상하는 상황에서 너무 공격적인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에게 던진 이런 질문들이 아파트 계약 종료일까지 머릿속에 가득했습니다. 
 
결행하려면 각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2년이란 시간이 주어졌으니 일단 중도금 대출을 받고 천천히 팔아볼 생각입니다. 대출이자는 허리띠를 졸라매야겠죠. 그나마 이자 후불제여서 당장 부담이 돌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신축 작은 평형과 구축 큰 평형의 시세가 비슷한 것은 취재하면서 자주 목격한 광경입니다. 제가 작은 평형에서 사는 것이 불편하지 않은지가 문제인데 가족이 있는 것이 아니니까 괜찮겠죠.
 
‘마피’에 대한 우려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시세가 하락하면 어차피 지금 사는 집 시세도 하락할 거고 오르면 같이 오르겠죠. 그나마 분양가가 1억 정도 안전마진을 갖고 있어요. 또 시세가 하락해도 구축이 더 많이 빠질 거고, 오르면 신축이 더 오르겠죠. 새 아파트로 이사한다고 생각하라는 어느 분의 한 줄 조언을 보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지더군요. 변동성이 커진 시기에 서울 진입을 노리는 것은 욕심이 나긴 하는데 막상 종잣돈이 부족해서 당장 실행하기 어렵겠더군요. 
 
다행히 당첨 통보를 받기 하루 전에 정부의 1.3대책이 발표됐습니다. 누가 봐도 둔촌주공을 향한 도움의 손길이었는데 분양시기가 비슷한 덕분에 똑같은 혜택을 받게 됐어요. 전매제한이 완화돼 1년 지나면 분양권을 팔거나, 입주 때 바로 입주하지 않고 세를 놓아 부담을 줄일 수도 있게 됐어요. 중도금 대출도 5회분만 가능했었는데 6회분 전액을 대출받을 수 있게 됐죠. 물론 중도금 대출은 특례보금자리론과는 무관해 계속해서 금리 향방을 지켜봐야 하지만 최근엔 안정되는 분위기더군요. 
 
철산자이더헤리티지 계약 종료일이었던 18일 오후 계약이 진행되는 모델하우스 현장의 모습. (사진=김창경 기자)
 
계약자 체크리스트 ‘휑~’
 
이렇게 생각하고서도 계약기간의 마지막 날까지 계약을 미뤘습니다. 막판에 마음을 바꿀 무언가가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계약 마지막 날인 18일, 일을 서둘러 마치고 모델하우스로 향했습니다. 예약한 오후 3시보다 한 시간 일찍 도착했어요. 계약률이 높을 것 같진 않은데 마지막 날까지도 계약을 독려하는 전화가 없다는 게 의아했는데 거의 다 도착했을 때 전화가 걸려오더군요. 
 
주차장은 거의 만차입니다. 직원들 차량이 적지 않을 테니 이걸로 분위기를 가늠할 순 없습니다. 그런데 모델하우스 입구에서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습니다. 계약자만 입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신분증을 제시하고 확인을 하거든요. A4용지에 빼곡히 적힌 명단 중에 방문했음을 의미하는 형광펜을 칠한 칸이 얼마 안 되는 걸 발견했습니다. 
 
계약서류는 모두 준비했습니다. 계약금 송금만 남겨둔 상태였어요. 안내하는 직원에게 송금 전이라는 핑계로 대기석에 앉아 다시 생각에 빠졌습니다. 20분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결국 실거주할 목적으로 청약했다는 기본적인 목적에 집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완판이 되든 말든 건설사와 조합의 문제이니 내가 신경 쓸 건 아니라고 결론 내렸죠. 폰뱅킹으로 계약금을 송금했습니다. 
 
16개 부스는 모두 서류 작성 중이었습니다. 제 차례가 올 때까지 20분 정도 기다렸어요, 계약서를 작성하면서 이것저것 물었습니다. 계약률이 엄청 낮을 것 같다고 떠보자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답하네요. 일요일과 월요일엔 방문객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마지막 날 분위기를 보면 계약률이 높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혹시 대규모 미분양이 발생해 각종 혜택을 제공하며 잔량을 판매할 경우 기계약자에게 동일한 혜택을 주게 되는지 묻자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무순위 ‘줍줍’ 단계에서 대부분 판매될 거고, 그러지 못해도 재건축 사업장의 경우 조합의 이익을 할애해야 하는 부분이라 동일한 혜택을 주는 사례는 드물다는군요. 그러면서도 계약률에 자신이 없어서인지 옵션 계약 일정은 미정이라고 합니다. ‘줍줍’을 몇 번 진행하느냐에 따라 일정이 미뤄질 수도 있겠죠. 
 
계약을 마치고 모델하우스에 한 번 더 방문해 옵션을 꼼꼼히 살핀 후 모델하우스를 나서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옷소매를 잡네요. 이곳에도 ‘떴다방’이? 잠깐 기대했는데 아주머니 말씀에 쓴웃음이 났습니다. 몇 동 몇 호인지, 얼마를 원하는지 같은 말은 없고, 그저 정보를 줄 테니 전화번호를 달라는 말이었습니다. 나중을 위해 일단 받아두자는 심산이겠죠. 한꺼번에 건넨 여러 장의 명함을 보니 전부 관외 중개업소였습니다. 
 
실수요자 ‘멘탈 잡으세요’
 
계약서에 사인하고 또 일주일이 지나갔습니다. 여전히 부동산 커뮤니티 게시판은 지역별로 ‘○○아파트 ○○만원 하락’ 소식을 실어 나르는 게시글이 가득합니다. 둔촌주공의 지표 역할을 하는 헬리오시티 시세가 특히 뜨겁습니다. 
 
계약자들을 향한 놀림도 여전합니다. 요즘 같은 시기에 시세 차익 목적으로 투자하는 청약자는 거의 없을 것 같은데, 오래 준비했다가 청약한 실수요자들도 멘탈이 흔들릴 것 같습니다. 
 
성장기업의 주식을 매수하는 것과 갭투자로 아파트를 사는 것과 아파트 청약은 엄연히 다른 행위입니다. 내 집 마련은 주가 바닥 잡기가 아니죠. 내가 (준비)하려는 일이 무엇인지 어떤 목적인지를 명확히 한다면 소음으로부터 조금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겁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 김창경

<매트릭스>의 각성한 네오처럼, 세상 모든 것을 재테크 기호로 풀어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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