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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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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면을 보는 저주

2024-04-19 18:12

조회수 : 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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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파이, 고정간첩, 밀정, 두 얼굴의 남자입니다. 모든 일의 양면을 보는 저주를 받았죠."
 
2016년 퓰리처상 수상작으로 박찬욱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쿠팡플레이가 독점 공급한 HBO 드라마 '동조자'의 첫 대사입니다. 원작 소설 속 첫 문장에 '저주 받았다'는 표현을 추가해 강렬함을 더했습니다.
 
이에 대해 박찬욱 감독은 삼성동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보통 어떤 사안을 반대되는 두 개의 관점에서 동시에 볼 수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하면 축복인 것처럼 말할 때가 많지만 축복일 수도, 저주일 수도 있다"고 답했습니다. 종합적 관점을 가질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분열되기 쉽다는 건데요. 결국 양쪽 입장을 다 이해한다는 것은 어느 쪽에도 설 수 없다는 의미이며, 명쾌하게 하나의 입장을 취해, 쉽게 어느 편을 들거나 만족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이쪽도 저쪽도 이해되면 양쪽이 극단 투쟁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이건 저주가 됩니다. 이념 대립일 수도 있고, 분단 됐을 때 전쟁 상황을 의미할 수도 있고, 동서양 갈등을 말할 수도 있죠. 소설이 가진 레이어를 다 아우르는 표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베트남과 미국의 역사물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박 감독은 "작가가 소재를 취할 때 꼭 그 집단에 속해야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관찰자의 관점으로 역사 속 인물들에 대한 존중을 영화적으로 표현했다"고 말했습니다. 드라마를 보니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박찬욱 감독의 고뇌가 엿보였는데요. 양쪽을 다 이해해 고통받는 주인공과 달리, 양쪽 모두에 속하지 않아 오히려 거리두기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1인 다역을 맡은 점도 이색적이었습니다. 한 명의 배우가 여러 명의 배역으로 등장하는 캐스팅은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요. 박 감독은 "교수, 감독, CIA 요원 등 미국 주류 사회에서 성공해 자리잡은 백인 남성은 결국 하나의 존재라는 것을 느꼈다"며 "미국 시스템, 미국식 자본주의, 미국이라는 나라가 동일하다는 것을 단박에 시청자가 알게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영화 감독이 드라마에 도전한 이유에 대해서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습니다. "드라마는 감질나는 절정의 순간에 가차없이 끊어버리는 맛이 있으니 음미하며 봐 달라"는 겁니다. OTT 시대가 되면서 드라마 '몰아보기'가 하나의 트렌드처럼 자리잡았는데요. 인내심을 잃은 시청자들에 대한 일침으로 들렸습니다. 
 
드라마는 거장의 작품답게 시종일관 지루할 틈없이 진행됩니다. 비극과 희극의 오묘한 조화, 아이러니, 패러독스, 부조리를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박찬욱 감독 특유의 영상 미학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특히 박찬욱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유사 이미지를 이어 붙이는 편집 방식도 여전했는데요. 베트남을 배경으로 미국 할리우드 톱스타를 만나는 도중에 한국의 표상을 발견한 것 같은 반가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박찬욱 감독이 1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HBO 오리지널 시리즈 '동조자' 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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