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2004년 3월9일. 새천년민주당 유용태 의원, 한나라당 홍사덕 의원을 포함한 국회의원 159명이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발의했다. 17대 4.15 총선을 목전에 앞둔, 헌정사상 대통령에 대한 첫 탄핵소추안 발의였다.
사유는 크게 국법질서문란, 권력형 부정부패, 국정파탄 등 세가지였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이 문제삼은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국법질서 문란행위 중 '특정정당을 지지한 행위'였다. 노 전 대통령이 같은 해 2월 경인지역 6개 언론사 합동기자회견과 방송기자클럽 초청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 줄 것을 기대한다”, “대통령이 뭘 잘 해서 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고 말한 것이 꼬투리가 된 것이다.
권력형 부정부패로 ‘썬앤문 관련 불법정치자금 수수사건’, ‘대선캠프 관련 불법정치자금 수수 사건’, ‘최도술 청와대 총무비서관 금품수수 사건’ 등이 사유가 됐지만, 본질은 그게 아니었다. 심지어 국정파탄의 근거로는 “대통령 못 해 먹겠다"는 발언도 적시됐다. 이 발언은 2003년 5월21일 청와대에서 5.18 기념재단 이사장인 강신석 목사 등 5.18행사 추진위원회 간부들 5명을 만난 자리에서 나온 얘기다. 당시 한총련 사태와 NEIS를 둘러싼 전교조 반발이 위험수위에 있었고 노 전 대통령은 이에 대한 우려를 참석자들에게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정확한 워딩은 "자기 행동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전부 힘으로 하려고 하니 대통령이 다 양보할 수도 없고, 이러다 대통령직을 못해먹겠다는 생각이, 위기감이 든다”였다.
발의안은 사흘 뒤인 3월12일 제246회 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재적의원 271인 중 193인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김기춘 당시 국회법제사법위원장이 같은 날 오후 4시5분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안가결을 통보하면서 헌법에 따라 고건 당시 국무총리의 권한대행 체제로 들어갔다. 고 총리의 정식명칭은 `대통령권한대행국무총리`였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탄핵소추사유를 16개 항목으로 쪼개 심리에 들어갔고 5월14일 결정이 나왔다.기각이었다. 윤영철 헌법재판소장은 당일 오전 대심판정에서 열린 탄핵심판 최종선고에서, 가장 핵심 쟁점이었던 특정정당 지지행위에 대해 “특정정당 지지발언이 중립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선거운동에 해당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권력형 부정부패에 해당하는 ‘썬앤문 및 대선캠프 관련 불법정치자금 수수 등’에 대해서는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전에 일어난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어서 대통령으로서의 직무집행과 무관함이 명백하므로 나아가 피청구인이 그러한 불법자금 수수 등에 관여한 사실이 있는지 여부를 살필 것 없이 탄핵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최 비서관 등 측근 비리 부분에 대해서도 “모든 증거에 의하더라도 노 대통령이 최 비서관 등의 불법자금 수수 등 행위를 지시·방조했다거나 기타 불법적으로 관여했다는 사실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청구를 기각하고 “나머지 소추사유들은 노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전에 일어난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어서 대통령으로서의 직무집행과 무관해 탄핵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한편, 윤 소장은 “대통령을 파면할 정도로 중대한 법위반이라는 것은 더 이상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거나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배신해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한 경우로, 이에 한해 대통령에 대한 파면결정은 정당화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사건에서 인정되는 대통령의 법 위반이 헌법질서에 미치는 효과를 종합해 본다면, 대통령의 구체적인 법위반행위에 있어서 헌법질서에 역행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사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평가될 수 없다”지적했다.
윤 소장은 최종적으로 “파면결정을 통해 헌법을 수호하고 손상된 헌법질서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 요청될 정도로 대통령의 법위반행위가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없고, 또한 대통령에게 부여한 국민의 신임을 임기 중 다시 박탈해야 할 정도로 국민의 신임을 저버린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대통령에 대한 파면결정을 정당화하는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2004년 5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 청구를 기각한 윤영철 선법재판소장이 대심판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