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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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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흥청망청, 순실망청, 쪽지망청

2016-12-07 14:08

조회수 : 5,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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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계동을 전라도에, 임숭재를 경상도·충청도에 보내 어채홍준사라 칭하여 좋은 말과 아름다운 계집을 간택해 오게 하라" <연산군일기 58>
 
술과 여자를 좋아했던 연산군은 전국에 신하들을 보내 각 지방의 미녀들을 뽑게 한 뒤 천 명의 기생을 둔다. 그중에 재주만 뛰어나면 '운평'이라 하고, 재주 뿐 아니라 미모가 아름다운 기생은 '흥청'이라 불렀다. 연산군은 흥청들과 놀고 즐기면서 국고는 텅텅 비게 되고, 나라가 망할 지경까지 이르며 자신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이렇게 흥청들과 놀아나다 망했다 해 백성들간에 생겨난 말이 '흥청망청'이다.
 
연산군의 기생들이 어원인 된 '흥청망청' 단어를 접하니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이 떠오른다. 우병우, 차은택, 장시호, 안종범, 김기춘, 조원동, 정호성 등 국가안보, 정책, 경제, 금융, 외교, 문화, 연설문, 인사 등 전 분야를 손에 거머쥐고 쥐락펴락 하다가 결국 경제가 파탄날 지경에 처한 점이 여지없이 똑같다.
 
그래서 내년도 예산안 심사는 최순실과 관련된 예산을 걸러내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그동안 흥청망청 쓰였을 비선실세들의 숨겨진 예산을 찾아내는데 주력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난 3일 새벽 내년 예산안이 통과될 때 최순실 예산으로 추정되는 문화예산 2000억원을 포함해 최대 4000여억원이 삭감됐다.
 
문제는 기껏 줄여놓은 최순실 예산이 구태로 정착된 '쪽지 예산'으로 반영됐다는 점이다. 정부가 4000억원 줄여놓은 사회간접투자(SOC) 예산을 국회 통과과정에서 다시 4000억원 증액시킨 것이다. 결국 최순실 예산이 힘있는 의원들의 지역구 사업 챙기기로 전용된 셈이다.
 
쪽지 예산은 통상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 예산이나 특정 사업예산의 편성 또는 증액을 위해 쪽지로 예결위나 예결위 소위 위원에게 청탁하는 것을 말한다. 사업 검토를 심도 있게 하지 않은 사업이나 사업타당성에서 우선순위에 밀려 삭감했던 예산이 막판에 반영된 것이다. 올해는 김영란법으로 쪽지예산이 없을 것이라 했지만 최순실 예산을 이용해 일부 의원들의 배불리기로 쓰여졌다.
 
실제 국회에서 확정된 2011~2017년 예산을 보면 매년 쪽지예산으로 반영된 SOC예산이 4000여억원씩 늘어났다. 쪽지예산 구태의 고리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쪽지 예산이 없다고 선을 긋고있다. 하지만 누가봐도 증액된 SOC예산은 각 당 의원들의 민원성 예산 챙기기다. 최순실 국정농단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 문제로 국정이 혼란스럽고, 김영란법이 시행됐음에도 쪽지예산 파티가 벌어진 셈이다.
 
이처럼 선심성 지역 예산이 크게 늘면서 민생·복지예산은 큰 폭으로 줄었다. 구직급여와 산재보험급여 예산, 기초수급생활자 취업 지원, 장애인 취업 지원, 지역아동센터 지원, 소녀보건사업 등의 예산도 줄었다.
 
쪽지 예산은 최순실 예산의 폐해를 자처한 것과 마찬가지다. 민원성 예산이 본인 지역에는 혜택을 줄 수 있지만 결국 꼭 필요한 데 돌아가지 못하고 세금만 축내는 꼴이기 때문이다. 흥청망청이 순실망청, 쪽지망청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김하늬 정경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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