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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홍양 죽음 앞에 인화는 없었다

2017-03-22 14:51

조회수 : 6,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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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적 의미로 사람 사이의 화합을 뜻하는 ‘인화’(人和)는 LG그룹의 경영이념이자, 근간이다. 구씨(LG)와 허씨(GS) 간 57년 동업이라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화합에도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인화가 있었다. 때로는 경상도 특유의 가부장적 유교문화가 한계로 지적되기도 했지만, 국내 재벌그룹들 가운데 유일하게 오너 리스크를 겪지 않는 기반이 된 것 또한 인화였다. 인화의 뿌리는 사람이었으며, 인간에 대한 존중은 격식을 갖춘 ‘예’로 표현됐다.
 
지난 1월 전주 LG유플러스 고객센터에서 일하던 현장실습생 홍모(19)양이 숨진 채 발견됐다. 사건 초반 경찰이 단순 자살로 판단했다가, 유가족과 시민단체들이 실적 압박과 폭언 등이 원인이었다고 주장하면서 뒤늦게 쟁점화 됐다. 홍양은 고객 해지를 방어하는 세이브 부서에서 일했다. 고객의 해지 요구를 막아내야 실적이 쌓인다. 홍양이 부모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등을 보면 과도한 업무 부담을 이기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면계약을 통한 근로기준법과 직업교육법 위반 의혹도 불거졌다. 진상규명 공동대책위원회에 따르면,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1일 7시간이 넘는 초과근무가 이어졌지만 손에 쥐어지는 월급은 110만원 남짓이었다. 그렇게 홍양은 열아홉의 나이에 사회를 비관하며 스스로에게 등을 돌렸다. 졸업을 불과 보름 앞두고였다. 앞서 2014년 10월에도 같은 센터에서 실적 압박을 이기지 못해 근로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있었다.
 
이달 17일 LG유플러스 본사. 주주총회 직후 몇몇 기자들이 권영수 부회장에게 홍양 사건 관련해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묻자 되돌아온 답은 "나는 몰라요”였다. 회사 측은 “개선 대책에 대해 아직 아는 바 없다는 의미”라고 즉각 진화에 나섰지만, 그의 무책임하고 성의 없는 발언은 유가족에게 비수가 돼 돌아갔다. 해당 사건이 연일 지면을 장식하고, 지역 시민사회의 거센 비판이 있었지만 LG유플러스는 현재까지 그 어떤 사과도 내놓지 않고 있다.
 
권 부회장은 2015년 12월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LG유플러스로 자리를 옮겼다. 1979년 LG전자에 입사, 40년 가까이 LG에만 몸담은 순수 혈통으로 LG디스플레이와 LG화학 등 그의 손이 닿은 계열사들 모두 실적 반전을 이루며 글로벌 시장을 누볐다. LG유플러스 대표이사 취임 첫 해 매출액 11조4510억원, 영업이익 7465억원을 기록하며 이름값을 해냈다. 특히 수익성 지표인 영업이익을 전년 대비 18.1% 끌어올리며 경쟁사들을 압도했다.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 무산 등 수치로 드러나지 않는 성과도 있었다. 특유의 다단계영업도 고수했지만, 불법의 온상이 됐다는 국회의 추궁 앞에 국감장에서 ‘철회’를 약속해야만 했다. 이 역시 약속은 아직 지켜지지 않았다.
 
실적만을 향해 달려가는 그의 모습에서 사람은 보이질 않는다. "모른다"는 짧은 한마디는 어린 고등학생의 죽음 앞에서 비통해하며 자기책임을 탓하는 자성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든다. 안팎에서는 인화의 LG가 실적의 괴물을 키워냈다는 수군거림도 적질 않다. 신입사원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된 인화원에서 LG 경영이념부터 다시 첫 장을 펼치길 조언해 본다. 사람이 없으면 기업도 결국 쓰러진다.
 
산업1부장 김기성 kisung012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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