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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향

장자처럼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2017-05-10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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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보내는 것이 너무나 무거워 도망가고 싶지만 그럼에도 용기를 내어 이 하루를 살아가줘서 고마워요” - 김지훈 <있는 그대로 참 소중한 너라서>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숨이 푹 나온다. 걱정이 담긴 한숨이 아니라 하루가 무사히 지나갔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나오는 한숨이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였던 사람들은 자신을 위로해 줄 것을 찾는다. 사랑하는 친구와 수다를 떨거나 엄마 목소리를 듣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사람에게 위로받기 힘든 날에는 책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도 한다. 그런데 가끔 책 속의 구절들이 가소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어설픈 공감과 과도한 위로에 반발심이 든다.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아프면 병원에나 가라는 식의 패러디를 낳은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차경남의 <장자, 영혼의 치유자> 속 장자는 위로하거나 위무하지 않는다. 호접몽과 같은 우화로 인간 중심적인 사고나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인간 사회를 풍자하고 비판한다. 삶이라는 여행은 무슨 목적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그 자체가 목적이니 이 여행 자체를 즐기라고 말한다. 모든 것에 목적과 쓸모를 찾는 실용주의 관점에서 벗어나라고 한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보고 유연한 마음을 가지라고 강조한다. 현실의 고통을 정신적으로 승화시키는 장자 철학이 한편으로는 루쉰 <아큐정전>의 정신 승리법처럼 보일 수도 있다. <장자, 영혼의 치유자>를 읽으며 인상 깊었던 내용을 소개하니 스스로 판단해 보길 바란다.


1. 나는 붕이 될 곤일까?


곤은 북극 먼 바다에 사는 물고기였는데 새가 되었다. 그 이름을 붕이라 하며 길이가 몇 천리나 되는 지 알 수가 없다. 한번 힘차게 날아오르면 그 날개가 마치 하늘에 드리운 구름 같다. 만약 물고기가 물고기인 채 살다 죽었다면 무난한 인생을 산 것뿐이다. 하지만 곤은 존재의 변형을 감행하여 새가 됨으로써 비로소 본래의 자기 자신이 되었다. 누구는 현실에 매몰되어 본래의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누구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본래의 자신이 누구인지를 끝없이 찾아 노력한다. 당신은 붕이 될 곤인가, 아니면 현실에 만족하는 물고기인가? 




2. ()는 멀리 있지 않다.


노나라 임금이 귀신같은 솜씨를 가진 목수에게 기술의 비법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먼저 재계하여 마음을 고요하게 만든다. 재계한 지 3일이 되면 상이나 녹봉에 대한 생각을 버리게 된다. 5일이 되면 사람들의 칭찬, 비난에 대한 생각도 버리게 된다. 7일이 되면 내게 팔다리와 같은 형체가 있다는 생각도 버리게 된다. 이때 숲으로 들어가면 나무의 천성(天性)을 관찰하여 좋은 것을 찾게 된다. 나의 천성과 나무의 천성을 합치시키는 것이다. 장자는 인위(人爲)의 배격을 강조한다. 참된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은 자연을 따르고 사물의 본성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다. 평범한 목수의 입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현실을 도피해야만 도를 깨우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현실의 시련 속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3. 나의 주인은 눈과 귀가 아니라 마음이다.


공자의 제자 상계는 궁금했다. 외발 병신인 왕태에게 공자와 맞먹을 만큼의 제자가 몰려드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공자는 상계에게 이렇게 알려주었다. “그 분은 죽고 사는 것이 중대한 일이지만 그러한 변화에 동요하지 않는다. 진리를 깨닫고 있는 까닭에 사물의 변화를 운명으로 여기고 도의 근본을 지킨다. 만물은 모두 하나다. 귀나 눈이 즐거워하는 것 따위에는 상관하지 않으며 마음을 덕의 조화된 경지에서 노닐게 한다.” 우리는 어떠한가. 맛있는 음식으로 입을 즐겁게 하고 귀와 눈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가. 욕망과 집착을 버려 마음이 감각기관을 제압하면 내면의 고요함이 번져 나와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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