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기자
닫기
최기철

(특별기고)19세 청년의 죽음에 사법부는 자유로운가?

2017-06-14 09:42

조회수 : 1,162

크게 작게
URL 프린트 페이스북

이번 구의역 스크린도어 작업노동자 사망 앞에 가장 부끄러워해야 할 주체는 어쩌면 사법부일지 모른다그 동안 산업현장에서 수많은 사망사고가 발생했지만그 책임자들에 대한 수사 결과는 무혐의 내지 벌금형이 대부분이었다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 참사세월호 참사의 경우는 그 피해규모나 국민적 분노가 워낙 큰 대형사건이라 조금은 예외였다하지만산업현장에서 일어나는 안전사고에 관한 검찰의 수사와 법원 판결의 근본적인 흐름은 변하지 않았다. 2013년 성수역 스크린도어 사고는 무혐의로 종결되었고, 2015년 강남역 사고는 사고발생일로부터 약 10개월간 수사를 지연하다가 이번 구의역 사고 직후 활발히 수사를 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사고 당시 CCTV분석을 하는 데 왜 10개월이 걸린 것일까?


그동안 검찰은 사람이 죽어도 그 원인을 말없는 망인의 과실로 정리하여 무혐의 처분으로 종결하면서구조적이고 체계적인 사망원인 규명을 애써 외면해왔다설령 사업주의 과실이 인정되더라도 고작 벌금 몇백만원이 전부였다대부분 과실범이기에 형량은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법리다성수대교 붕괴참사에서는 세계적으로 거의 유일하게 과실범의 공동정범이라는 법리를 대법원이 개발했을 정도이다.


법원은 사망사건에서 죽은 자와 그 가족들이 겪는 슬픔의 가격을 내부문건으로 정해 재판을 운영했다. 그격은 상당기간 동안 5000만원이 한도였다가 최근 8000만원으로 올렸다는 소문 정도가 돌고 있을 뿐이다일반 국민은 아무도 그 기준을 모른다노동자와 국민의 생명은 그렇게 비용 내지 가격표로만 평가되어왔다많은 시민단체와 국민들이 산업현장에서의 안타까운 죽음을 방지하기 위해 법과 제도를 고쳐달라고 요청했던 것이 어디 한 두 해 되었던가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어린이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사망했지만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수사에 반영되기까지는 약 5년 이상이 걸렸다.


작년 어느 학술대회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10)를 도입하자고 발표했더니며칠 뒤 판사출신 어느 로스쿨 교수가 주최 측 신문사에 정면으로 반박기고문을 올렸다. 기고문은 '우리민사법제는 미국과 달리 실제 발생한 손해만 배상하는 구조이며민사법을 잘 모르는 시민단체 등에서 함부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주장하지 말라'는 훈계를 담았다그분은 우리나라의 인권을 책임지는 국가인권위원이기도 했다그 분의 법리 속에는 오직 민사법체계만 존재하고 사람은 없는 듯했다민사법체계가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법은 사람그리고 국민이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 산업현장 사망자가 연평균 약 1500~2000명에 이르고최근 10년 동안 전혀 줄지 않고 있다.여기에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수를 감안하면산업현장에서 매일 벌어지는 희생자의 수는 훨씬 클 것이다산업현장은 이익과 비용을 최우선적으로 계산하는 곳이다사업주에게 사람의 생명과 안전은 비용에 불과하다그들에게 법 위반을 통해 얻는 기대이익이 그 위반으로 인해 받을 불이익보다 훨씬 크다면법을 지킬 이유가 없어진다단순한 산수와 계산만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이런 '계산의 법칙'을 지닌 사업주가 있는 한 산업현장의 죽음과 슬픔은 반복된다그리고 지하철·철도·배 위에서의 국민의 안전도 위협받는다.


이러한 이익과 비용의 방정식그리고 목숨 값 계산법을 가르쳐준 곳이 바로 사법부다검찰과 법원은 사람의 목숨 값,그리고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에 대한 처벌과 배상 수준에 관해 지속적으로 시그널을 주고 있었다. ‘산업현장에서 구조적인 문제로 노동자가 사망해도 망인의 과실로혹은 책임자에게 고작 벌금 몇백만원이 전부다라는 신호를 지속적으로 보낸 곳이 바로 사법부다검찰과 법원이 한 몸이 되어 매일 5명 이상 죽어나가는 산업현장그리고 생활 곳곳에서의 안전사고 희생을 외면해왔다이 길고도 긴 침묵의 사법카르텔이 언제쯤 바뀔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오영중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 최기철

  • 뉴스카페
  •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