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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토마토칼럼)법원, '법정 알박기' 방관 더 이상 안 된다

2017-07-24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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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용어이지만 재판에서도 ‘알 박기’가 있다. 주로 형사재판에서 많이 목격되는데, 피고인 측에서 자기 사람들을 법정 방청석에 대거 들어앉혀 자리를 선점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되면 출입기자들은 물론, 피해자나 이해관계인도 방청할 기회를 빼앗기게 된다.
 
재판이 오전이든 오후든, ‘법정 알 박기’에 동원된 ‘방청객’들은 이른 아침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없다. ‘나는 피고인 편’이라는 이름표도 없어 출입기자들 눈도 쉽게 속일 수 있다. 합법적이고 깔끔하다. 그만큼 재판을 받는 재벌기업 총수들이 애용하는 전략이다. 또 ‘알’을 많이 박을수록 공판내용은 언론 등을 통해 공개될 여지가 적다. 재벌기업의 막대한 인력은 신성한 법정에서도 이렇게 그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정확히 언제부터 재벌총수들이 법정에 ‘알 박기’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서 각종 비리로 기소돼 재판을 받은 재벌기업 총수들은 대부분, 그리고 적극적으로 이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SK 최태원 회장이 그랬고, 한화 김승연 회장과 효성 조석래 회장도 같았다. 물론 당사자 측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극구 부인한다.
 
최근에는 재벌총수들과 함께 정치적 이해 집단이 ‘법정 알 박기’로 재미를 보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등 국정농단 사범 공판에서는 상식을 벗어난 극우 단체 인사들과 반대파 인사들이 일찌감치 방청석을 차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방청객’들은 공판 중 자신의 생각과에 반하는 발언이 나오면 갑자기 일어나 소란을 피워 재판을 중단시킨다. 재판장이 상황을 수습하고 재판을 속개하지만 떨어진 집중력을 되찾기는 쉽지 않다. 재판이 공전되고 길어지면서 득을 보는 사람은 박 전 대통령 등 피고인들이다.
 
이런 일이 빈발하다 보니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나 이 부회장 등 주요 공판이 열릴 때면 사전에 방청권을 배부해 아예 일반 방청인들의 법정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이에 대한 법원의 입장은 매우 엄격하다.
 
문제는 이런 방청제한을 역이용하는 사례가 번번히 발생하고 있지만 법원이 전혀 손을 못 쓰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14일 서울법원종합청사 서관 311호 중법정에서 열린 이 부회장 공판이다. 311호 중법정 총 방청석 수는 102개다. 이 중 외신을 포함한 언론사별 각 1석씩 배정한 뒤 남은 방청석 50석 중 10석은 삼성이 가져갔다.
 
이날 법원에서 만난 삼성 관계자는 자사 법무팀 인원 5명과 홍보팀 인원 5명이 공판에 방청객으로 참석했다고 말했다. 그는 홍보팀 인원을 5명이나 부른 이유에 대해 "공판을 방청하지 못하는 삼성전자 출입기자들이 재판에 대한 질문을 할 경우 답변해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감동적인 대언론 서비스다. 그러나 그 다섯석을 차라리 자사 출입기자들을 위해 비워뒀더라면 어땠을까. 공판에 참석 못한 기자들은 삼성 측의 설명에만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결국 이날 법정에 입장한 일반 방청객은 아무리 많이 잡아도 40명에 불과했다. 이들도 아침부터 줄을 서 선착순으로 방청권을 받았다. 그러나 공판이 시작되면서 방청석에 빈자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적게는 3~4석, 많게는 10석 가까이 비었다. 심지어 아침에 방청권을 받고 법정에 들어갔던 방청객 중에는 저녁때까지 자리를 비운 사람들도 서너명 있었다. 그러는 사이 법정으로 들어가는 5번 게이트 앞에는 10여명의 일반 방청객들이 혹시나 공석이 날까 하여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방청권을 받은 사람이 방청권을 반납해야지만 공석이 나기 때문에 이들의 기다림에는 기약이 없었다. 법원 관계자들과 출입기자들, 방청객들에 따르면 이런 일은 비단 이날 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헌법은 ‘재판공개의 원칙’을 명시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이는 직접적으로는 피고인을 위한 것이지만, 간접적으로는 재판의 공정성과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취지도 갖고 있다. 지금 국정농단 사건 공판에서 벌어지는 이른바 '법정 알박기'는 헌법상 재판공개의 원칙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다. 그러나 법원 관계자는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필자에게 “재판공개라는 것이 물적인 시설의 한계를 뛰어넘는 경우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조심스럽게 접근해야한다”고 주의를 줬다.
 
물론 소송지휘권을 가진 법원이 재판의 효율성을 위해 필요할 경우 방청을 제한해야 함은 당연하다. 이를 무조건적으로 비판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형식적이고 경직된 법원의 방청제한은 헌법상 재판공개의 원칙을 침해하는 재벌총수들의 '꼼수'나 정치적 이익집단의 ‘난동’을 방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재판 방청권 ‘제한’이라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보다는 방청권 ‘보장’이라는 적극적인 태도로 해법을 진지하게 고민하기를 법원에게 촉구한다.  
 
최기철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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