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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협

(사회책임)“최선의 장애인복지는 장애인 스스로 정책과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것”

양원태 한국장애인인권포럼 대표

2017-08-07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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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대구시가 기존의 ‘탈시설’ 약속을 저버리고 시내 장애인 거주시설의 신규 설립을 허가해 논란을 빚고 있다. 2014년 후보 시절 권영진 대구시장은 지역 장애인단체와 ‘신규시설 설립금지’ 등의 탈시설·자립지원 정책 등을 추진키로 협의한 바 있다. 게다가 지난 해 인권유린·시설비리 문제가 불거진 대구시립희망원의 혁신대책이 마련되기도 전에 새로운 시설설립을 허가함에 따라 장애인단체들과 지역 시민단체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대구시립희망원 사태는 문재인 정부가 이번 대선 공약에서 해결을 약속할 정도로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장애인인권포럼의 양원태 대표를 만나 장애인 복지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과 현 정부의 장애인 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는 지난 4일 서울 영등포구 에이블허브 한국장애인인권포럼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장애인 정책 현안과 관련해 목소리를 내는 일을 하고 있다. 활동하면서 역점을 두는 사항은.
 
그동안 장애인 문제는 잔여적 복지의 개념으로 시혜, 동정의 차원으로 얘기가 되어져 왔다. 장애인 정책을 고민해 만들고 집행하는 일은 사회복지나 의료 전문가들, 행정 관료들의 몫이었다. 이러한 접근은 장애인 당사자들에게 시급한 필요를 은근히 채워 주긴 하지만, 당사자의 실질적인 욕구와의 부합성에서는 굉장히 미흡한 편이다. 사회와 장애인 간의 중간 전달체계로서 ‘시설’, ‘법인’에 집중하는 태도는 특히 당사자들에게 체감도가 떨어지는 정책방향이라고 본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출발점은 장애인 스스로 자신이 관련된 정책들에 대해서 발언하고, 나아가 정책 형성에 참여해 원하는 서비스를 직접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첫째로 장애인의 정책역량을 강화하고 이들을 둘러싼 정책환경을 이해한 뒤, 둘째로 당사자로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기본적인 절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장애인이 사회의 수혜자가 아닌 정책형성과 집행의 파트너로 기존 역할을 바꾸는 것을 우리 활동의 취지로 삼고 있다.
 
-장애인 정책강화와 관련된 주요 사업에는 무엇이 있나.
 
장애인 당사자의 정치참여에서 가장 기본적인 단계로 정책 및 의정 활동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별도의 부설기관으로 장애인 정책 모니터링 센터를 두어 중앙정부와 지자체 단위까지 장애 관련 조례들, 예산 등을 연구한다. 대체적으로 의회에서 장애인 정책에 대한 논의가 굉장히 부족한 편이다. 그래서 시작 단계에서는 관련 분야 활동이 많은 우수 의원을 시상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지속적으로는 모범 조례를 발굴하거나 차별사례를 피드백하는 활동을 해왔다. 국내 조례 중에는 여전히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녹아 있는 사례가 많다. 장애인을 ‘타인에게 혐오감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규정하여 각종 경범죄 행위 대상으로 차별하는 경우가 있다. 의회에 입장을 금지한다든지 하는 사례도 존재한다.
 
의회와의 협치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연구조사나 토론회도 진행한다. 올해는 최근 수해도 극심했고, 경주 지진 사태도 있었다. 빈번히 발생하는 화재 등을 대비해서도 재난 시 장애인의 안전에 대한 매뉴얼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일반 시민들도 이러한 매뉴얼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장애인 재난안전 교육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토론회를 구상하고 있다.
 
-그 성과를 가지고 장애인 문제에 직접 대안을 제시하는 활동도 있는가.
 
대표적으로 국내에서 유일하게 ‘유니버셜 디자인(UD) 공모전’을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UD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노인이나 임산부 등 사회적 약자들이 제품, 건축, 서비스 등을 보다 편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말한다. 장애가 개인의 육체적, 정신적 결함이나 기능 상실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개인이 겪게 되는 장벽의 문제로 보는 시각을 토대로 한다.
 
장애인이 편하면 모두가 편하다는 말이 있지 않나. 굳이 장애의 문제로 국한하지 않지만, 사회적 장벽을 가장 체감하고 있는 장애인들의 감수성을 통해서 더 많은 사람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설계를 구상한다. 공모전 과정에서 전문가들의 기획과 결과 심사에 소비자로서 장애인의 참여가 두드러진다. 앞서 말한 장애인 정책 패러다임의 변화와도 맞닿아 있는 셈이다.
 
-제도적인 시도가 부족하다는 점이 아쉽다. 문재인 정부가 얼마 전 출범 100일째를 맞았는데, 그런 의미에서 현 정부의 장애인 정책 방향을 평가한다면.
 
문재인 정부가 2012년 대선부터 장애인 문제에 관해 고민을 해왔던 것은 있다. 그때 착실히 준비했던 공약들을 그대로 가지고 나오지 않았나 싶다. 올해 대선이 워낙 급박하기도 했으니까. 복지의 보편성과 공공성을 강화한다는 커다란 흐름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다른 경쟁후보들보다 앞서간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장애계에서 요구하는 정책 패러다임에 부응한 정책들이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다. 당사자의 주도적 요구에 맞는 복지보단 여전히 전문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규정되는 정책들이 많다.
 
이에 대안으로 90년대 말부터 우리나라에서도 ‘탈시설’이라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일반적으로 연간 장애인 1인당 1000만~2000만원씩 주어지는 정부 지원이 시설을 거치지 않고 장애인 개인에게 직접 주어진다면 어떨까. 장애인들이 지원금을 가지고 자신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직접 구매하게 하자는 것이다.
 
더불어 시설에서 나온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자립하기 위해 필요한 서비스들이 장애유형별로 직접 선택할 수 있을 만큼 마련된다면 어떨까. 개인마다 물론 더 필요하고 덜 필요한 편차는 있을 것이다. 결국 장애인을 돌봄이 필요한 집단, 유형별로 묶어서 바라보는 집단이 아니라 더욱 한명 한명의 개인으로 바라보고 정책을 짜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는 복지의 공공성과 함께 개인이 자기 선택에 따라 원하는 서비스를 소비할 수 있게 하는, ‘복지의 자기결정권’이란 두 가지 측면에서 고민되어야 한다. 후자의 경우 장애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서비스들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일례로 장애인의 건강권 문제가 있다. 올해 대선에서도 ‘장애인건강주치의’ 등의 공약이 있었지만, 우린 장애인의 건강권을 실현하는 방식이 탈의료기관, 즉 의사들이 빠진 방식이어야 한다고 본다. 의료는 의료 문제로 두고 건강의 문제는 의료 밖에서 장애인들이 스스로 자기 삶을 건강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정부나 시장에서 알맞은 서비스를 지원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도권과의 협치를 통해 함께 고민할 수 있지 않을까. 2012년에는 장애계를 대표하여 서울시 명예부시장으로 위촉이 되었는데.
 
서울시 명예부시장의 경우 처음 시작할 때는 나를 포함해 세 명이었다. 지금은 각기 다른 분야를 대표하는 16명으로 늘어났다고 하더라. 명예부시장 역할은 사실 임명장을 받고 난 뒤에는 아무런 권한도 책임도 예산도 없었다(웃음). 하지만 분명히 한 분야를 대표해 시민(단체)과 지자체 간의 창구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당시 행정부 진행사항 등을 자료로 받아 시민들과 공유하거나, 행정부처와 시민들 간의 간담회를 많이 가졌다. 흔히 말하는 거버넌스(협치)가 사실 그런 것 아니겠나. 권한을 배분해 공유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 박원순 시장이 당시 그런 부분에서 좋은 시도들을 했다고 생각하고, 그 과정에서 명예부시장 임기 마무리에는 ‘희망서울 장애인대책종합계획’을 발표하는 등 운 좋게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었다.
 
-시민단체가 정책의 동반자로서 지자체와 맺는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권위주의적인 지자체 시절에는 거버넌스라는 개념 자체가 거의 없기도 했지만, 시민사회의 정치참여란 사실상 관변단체 구조로 이루어졌다. 지금도 일부는 대략 정해진 틀 안에서 형식적 참여만 이루어지는 형식적 협치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시민단체들이 이전처럼 단순하게 공공영역과의 긴장 속에서 대결적 관계를 유지하기보다 얼마간의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나. 시민사회의 역량이 커지고 성숙해진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실질적 거버넌스 구축과 가동을 위한 실험들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장애인 인권단체 대표로서 올해 목표는 무엇인가.
 
2006년부터 만 12년 간 한국장애인인권포럼에서 활동을 해왔고, 벌써 5년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이쯤 되면 머리도 굵고, 아래 사람들도 성장해서 대표직을 물려줘야 할 시점이다. 다른 시민단체들도 그렇듯 새로운 활동가 수급에 어려움도 있고, 내가 책임져야 할 부분도 남아 있어 아직 직책을 못 물려주고 있다. 내부의 활동가들이나 지역 역량들을 잘 정리해서 이후의 조직을 만드는 것이 올해 목표였다. 벌써 8월인데 아직 미진하다.
 
-그 이후에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그날이 오면 생각해 보려고 한다. 항상 ‘뭔가를 해야겠다’ 할 때보다는 ‘놀아야겠다’ 생각하고 다니다가 붙잡혀서 새로운 일을 해왔다. 특별히 인생을 미리 설계하고 계획할 생각은 없다.
 
사진설명: 양원태 한국장애인인권포럼 대표는 장애인 스스로 정책에 대해서 발언하고, 정책 형성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진/KSRN
 
KSRN 정윤하 기자
편집 KSRN집행위원회(www.ksr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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