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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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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2017년 8월, '풀리지 않는 한'을 기억하며

2017-08-18 06:00

조회수 : 2,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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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15일,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장마기간에 내리던 비보다 더 많이 퍼부었다. 계속된 열대야로 타들어가는 이 도시의 갈증을 풀어주고 싶었을까. 아니면 풀리지 않는 역사의 갈증을 풀어주고 싶었을까. 비는 작심하고 내리는 듯 했다. 그러던 중, 내 휴대전화는 친구로부터 한 장의 사진을 전송받고 있었다. 151번 버스 내부를 찍은 사진이었다. 버스에는 ‘평화의 소녀상’이 타고 있었다. 그 소녀상을 태운 버스는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일본대사관과 가까운 안국동 구간을 지날 때는 안내방송과 함께 영화 ‘귀향’의 OST ‘아리랑’을 방송한다고 했다.
 
하얀 저고리에 까만 치마를 곱게 차려 입고 반듯하게 앉은 그 소녀는 그 ‘아리랑’을 들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삼각산 자락의 우이동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서울의 중심지를 거쳐 동작구 흑석동까지의 여정을 함께 하는 소녀는 비 내리는 서울의 거리를 보면서 무엇을 느꼈을까. 일제 강점기의 서울과 비교하면 강산이 변해도 몇 번은 변했을 풍경에 적잖이 놀랐겠지만, 소녀의 표정은 여전히 밝지 않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가슴에 남아 있는 기억은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 같은 것이며, 아직도 계속되는 구슬픈 타령 같은 것이다. 삼각산에서 날아온 듯한 파란 빛깔을 띤 새 한 마리가 소녀의 왼쪽 어깨에 동승하여 소녀의 아픔을 달래주는 듯 했다.
 
또한 그 시각, 한 지상파 방송은 일제강점기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해간 고려인의 자손인 고려인 3세들이 광주광역시에 있는 ‘고려인 마을’을 찾았다는 소식을 전하며, 그들이 함께 ‘고향의 봄’을 합창하고 있다는 장면을 내보내고 있었다. 그 노래 가사가 내리는 빗줄기처럼 시청자들의 가슴으로 촉촉이 젖어들고 있었다.
 
한편, 광복절 하루 전날인 8월 14일에는, 소녀상 오백 점이 서울의 청계광장 한 가운데에 전시되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하나하나의 소녀상은 손바닥만한 크기의 자그마한 것이었지만, 사람들의 가슴에 파도를 일으킬만한 물결로 일렁이고 있었다. 오백 점은 우리나라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9분에 북한 등에 있는 미등록 피해자 예상 인원을 합한 숫자다. 지나가는 바람이 소녀상에 적힌 이름들을 빠짐없이 읽어주고 있었다. 흘러가는 청계천의 물결도 소녀상들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것 같았다. 모두에게 적잖은 감동으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이번 전시는 다섯 번째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을 맞아 기획된 것으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정의·기억재단이 마련했다고 한다. 참고로, ‘위안부 기림일’은 지난 1991년 8월 14일, 고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 증언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위안부 아시아연대회의가 지난 2012년 제정한 것이다.
 
여기에 지난 7월 26일 개봉된 영화 ‘군함도’가 8월 중순까지 650만 명의 관객을 상영관으로 불러 모았다는 뉴스도 가슴 뭉클한 것이었다. 영화는 일제강점기에 일본 하시마섬으로 강제 징용되어 목숨 걸고 탈출을 시도한 400여 명의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의 질적 우수성이나 흥행의 성공 여부를 떠나, 대한민국 국민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으리라 본다. ‘군함도’를 잊지 말자며, 일제에 의해 강제 징용 당한 한국인 노동자상을 세운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그 외에도 8월 8일 ‘위안부 피해 할머니 닥종이 인형전’이 강원도 강릉시청 로비에서 열리는 등, 광복 72주년이 되는 2017년 8월의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를 겪어오며 아물지 않은 상처와 한을 곳곳에서 표출하느라 뜨겁다. 국토 여기저기에 세워진 수많은 소녀상의 슬픔도 짙어지고만 있다. 물론 그것은 일본의 반성과 사과가 성숙되지 못하고 진실 되지 못한 것에서 연유한다. 여전히 귀천하지 못하는 영혼들의 슬픈 노래가 우리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허공을 떠돌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일본의 전쟁 패전일인 8월 15일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추도식에서, “과거를 돌이켜보며 깊은 반성과 함께 앞으로 전쟁의 참화가 재차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는 말과 함께 “전쟁터에 흩어져 전화에 쓰러진 사람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애도의 뜻을 표한다”며 사과의 뜻을 나타냈다. 부디 이 표현이 평화를 지향하는 아시아인들의 가슴에서 영원히 꽃으로 피어나길 기대한다. 2017년 8월 15일, 풀리지 않는 우리의 한처럼, 밤늦게까지 장대비 같은 빗줄기가 그치지 않았다.
 
오석륜 시인/인덕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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