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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리치 코첸, 관객과 '교감'으로 이태원 밤 시원하게 적셨다

90분간 진행된 코첸의 솔로 내한공연…기타연주·허스키 보이스 속 인생과 철학 함축돼

2017-08-20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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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권익도기자] “레이디스 앤 젠틀맨, 푸쳐핸접! 베이스 기타 독주 차례입니다. 딜런 윌슨!”
 
미국 싱어송라이터 리치 코첸이 ‘소셜라이트'(Socialite)를 부르다 멘트를 던지자 관객들은 일제히 손을 들고 있는 힘껏 환호를 내지른다. 곧이어 박수갈채 속에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펼쳐지는 윌슨의 베이스기타 속주. 코첸은 웃으며 건반으로 그의 속주를 돕더니 말한다. “윌슨에게 박수를 쳐주세요”, 관객들 “와! 짝짝짝”
 
리치 코첸이 19일 서울 이태원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열린 단독 공연에서 전자 키보드에 앉아 노래하고 있다. 사진/권익도 기자
 
지난 19일 서울 이태원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UNDERSTAGE)에서 열린 코첸의 단독 내한공연. 오후 7시부터 90여분 동안 진행된 공연은 시작부터 관객과 함께 호흡하려는 코첸, 세션들의 열정과 그에 화답하는 객석의 열기로 빛났다.
 
이날 ‘엔드 오브 얼스’(End of Earth)로 공연의 포문을 연 코첸은 ‘소셜라이트’(Socialite), ‘메즈’(Meds), ‘고 패스터’(Go Faster), ‘유어 엔터테이너’(Your Entertainer) 등 전자 기타와 베이스 기타, 드럼 삼 박자가 어우진, 다소 빠르면서도 시원한 로큰롤 음악들을 초반부터 선보였다. 
  
대체로 그의 가사는 삶의 경험에서 느낀 철학적 메시지들이 주를 이룬다. ‘나’나 ‘너’를 주어로 한 단문에 삶이 응축돼 있는 느낌이다. 이날도 그런 정서들이 록앤롤의 시원한 사운드에 임팩트있게 전달됐다.
 
그래 난 15살 이후로 계속해서 달려왔어/
아무도 나를 따라잡을 수 없도록/
질주했었고 돈도 많이 벌었었지/
누군가에게는 아주 쉬운 것처럼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지
(‘고 패스터’ 가사 중 일부)
 
난 너의 회사를 원하지 않아, 너의 돈을 원하지 않아/
너가 가진 것을 원하지 않아, 아무것도 내게 넌 줄 수가 없어/
너의 동정을 원하지 않아, 너는 나를 바보로 만들 수 없어. (‘소셜라이트’ 가사 중 일부)
 
공연 중반 부에는 어쿠스틱 버전의 발라드나 블루스, 재즈 곡들을 선보이기도 했다. 코첸은 일렉기타 대신 건반에 앉아서, 윌슨은 베이스기타 대신 활로 켜는 현 베이스를, 드러머 마이크 베냇은 드럼 대신 카혼을 두드렸다. 셋은 마침 비가 내리던 이날 이태원의 촉촉한 밤을 노래하는 듯했다.
 
“감사합니다. 아주 감사해요. 좋은 시간 보내고 있습니까? 이번에는 가장 최근에 발표한 곡을 들려줄게요. ‘마이 락’(My rock) 이라는 곡입니다.”
 
너는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줬지/
너는 나의 바위야(바위, 바위야)/
너는 나를 바닥에서 위로 끌어올려주는 존재/
내 스스로 포기하려 할 때 나를 바닥에서 위로 끌어올려주는 존재/
너는 나의 바위, 바위, 바위 같은 존재야
('마이 락' 가사 중 일부)
 
전자 키보드를 치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가사를 읊자 모두가 후렴구를 따라했다.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들어 줬다’는 노랫말에서 사랑에 대한 그의 진심이 진하게 배어 나왔다. 그건 누군가로부터 고귀하고 진실된 사랑을 받아 성장한 그 자신의 이야기였다.
 
‘아이 우드’(I would), ‘하이’(High) 등 어쿠스틱 버전으로 새롭게 편곡한 곡들도 노랗거나 파란 조명에 어우러져 따뜻하게 흘렀다. ‘왓 이즈’(What is)의 후렴구에선 잠깐 멈추는 편곡을 하기도 했는데 몇몇 관객이 이를 모르고 크게 부르자 객석과 밴드 구성원 모두 함박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어쿠스틱 연주를 끝낸 후 다시 셋은 ‘피어(Fear)’, ‘헬프 미(Help me)’, ‘디스 이즈 라이프(This is Life)’ 등의 빠른 곡을 연주했다. “디스 이즈 라이프였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밤 보내세요” 다소 짧은 인사를 건네고 들어가니 당연한 듯 터져 나오는 ‘앙코르’. 2분여 만에 당연한듯, 한편으론 멋쩍은듯 다시 나온 이들은 ‘유 캔 세이브 미’(You can't save me)를 부르고 정식으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마지막으로 다시 소개합니다. 저와 함께한 베이스 기타의 윌슨, 그리고 드럼의 베냇이었습니다. 저는 코첸이었고요. 감사합니다.”
 
끝까지 함께 한 동료들을 챙기는 코첸, 세 사람은 어깨 동무를 하고 고개를 숙였고 관객들은 일제히 박수를 보내며 화답했다. 저녁 8시30분, 그렇게 좋은 공연 하나가 끝났다.
 
이번 공연은 올해 데뷔 29주년을 맞은 그가 솔로 21집 ‘솔팅 어스’(Salting Earth)를 발매한 기념으로 이뤄진 월드투어의 일환이었다. 밴드 포이즌(Poison), 미스터빅(MR.BIG), 와이너리 독스(The Winery Dogs)를 거치며 자신만의 기타 주법을 확립해 온 그의 음악 세계를 한 눈에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난 매일 연습을 통해 나를 찾는다”고 했던 그의 말처럼 그는 공연 시간 내내 기타로, 보이스로 그동안의 축적물들을 울부짖듯 쏟아냈다. 그리고 끊임없는 관객과의 소통은 그의 온 몸에서 은은하게 흘러나온 음악 인생, 철학에 대한 잔향을 더 깊게 느끼게 해주었다. 비를 뚫고 모인 수십명 관객들의 입가에는 하나 같이 비슷한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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