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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호

통상도 '美치광이 전략'

2017-10-10 10:22

조회수 : 3,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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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철강과 태양광에 이어 세탁기까지 전방위적 통상압력을 가하면서 우리 기업들이 사면초가에 직면했다.



미국이 업종과 제품을 가리지 않은 고강도 통상압력을 지렛대로 한국·미국 자유무역협적(FTA) 개정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는 '미치광이 전략'에 나서고 있어서다.



북미 핵협상과 관련한 미치광이 전략을 통상에까지 끌어들여 긴급수입제한(세이프가드)으로 대표되는 극단적 조치가 실제로 내려질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미치광이 전략은 상대가 자신을 미치광이로 보게 해 협상을 유리하게 이끄는 전략을 일컫는다.



통상압력은 이미 국가 대 국가 차원의 파워게임으로 본격화돼 기업들이 직접 해법을 모색할 여지가 좁아졌다는 반응도 나온다.



9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세탁기가 자국산업에 심각한 피해를 미치고 있다’고 판정하며 미국의 통상압력 범위는 철강과 태양광, 화학, 변압기를 넘어 가전으로까지 확산됐다.



전방위적 업종에 예고된 실질적 조치는 세이프가드일 정도로 극단적이다.



세탁기 관련, 19일(현지시간) 열리는 2차 공청회(구제조치 공청회)에 이어 ITC가 연말 트럼프 대통령에게 구체적인 조치 내용을 건의하면 내년 초쯤에는 세이프가드 발동 여부가 정해진다.



태양광 전지는 이르면 다음 달 세이프가드 적용 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미국은 한국산 철강 제품 수입이 자국 안보를 침해하는지 여부(무역확장법 232조 적용 여부)도 조사 중이다. 이 역시 조사 결과에 따라 한국산 철강재에 세이프가드가 발동될 수 있는 사안이다.



반덤핑 관세를 통한 통상압박도 진행된다. ITC는 지난달 한국산 페트 수지에 대한 반덤핑 조사에 돌입했으며 올해 말까지 한국산 전력 변압기에 부과하기로 한 반덤핑 관세 기간 연장 검토에도 나섰다. 이미 일부 한국산 철강재에는 최대 65%의 반덤핑관세가 적용됐으며 현대일렉트릭이 미국에 수출하는 대형 변압기에도 61% 반덤핑 관세가 부과됐다.



재계와 통상 전문가들은 세이프가드가 한국산 제품에 실제로 적용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지난 4일 한미 양국이 FTA 개정협상 돌입에 합의한 직후 통상압박 범위가 가전까지 확대됐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동복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은 "전방위적 통상압박을 지렛대로 FTA 개정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고자 하는 것이 미국의 전략"이라며 "더 이상 세이프가드 발동 등 예고가 허언이 아닌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대책 마련에 나섰다. 포스코와 한화큐셀은 미국 현지 네트워크를 풀가동해 실시간 상황 파악에 나섰으며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가전업계는 WTO(세계무역기구) 제소까지 검토한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이 같은 업종별 대응 노력이 미국의 통상 압력 수위를 낮추는데 별다른 효과가 없을 수 있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제 미국의 통상 압력은 개별 제품과 업종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확실해졌다"며 "개별 대응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통상 압력 범위가 지금보다 더 넓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A 가전업체 관계자는 "세탁기에 세이프가드가 발동된다면 다른 가전 제품도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기업이 미국 정부를 상대하기는 힘든 상황이어서 정부 차원의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이프가드 발동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지역별, 사업별 매출을 다각화하는 '플랜B' 마련 움직임도 포착된다.



한 태양광업계 관계자는 "한화큐셀 등은 시장 규모에 비해 현지 매출비중이 낮은 유럽 공략 강화에 나선 상태"라며 "모듈 제품 공급을 넘어 직접 발전소를 운영하는 종합 태양광 회사로 거듭나 수익구조를 다각화하는 움직임도 엿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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