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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

기본소득·주 15시간 노동은 꿈 아닌 현실

2017-10-18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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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전, 세계는 지금보다 열악했다. 인류는 가난했고 굶주렸으며 질병에 시달렸다. 두려움을 삼키며 짧은 삶을 영위해 가야했다. 프랑스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이 얘기한 대로 당시의 삶이란 ‘거대한 눈물의 골짜기’와도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지금은 ‘거의’ 모든 게 변했다. 수십억 인구가 부를 쌓고 영양분을 풍부하게 섭취하며 안전한 삶을 살아간다. 미국 경제저널 아메리카이코노믹리뷰의 조사 결과가 이를 대변한다. 1820년 전 세계 인구의 94%였던 극빈층(생활비가 하루 1.25달러 미만인 계층)은 1981년 그 비율이 44%까지 떨어졌고 현재는 10%미만도 되지 않는다. 2세기 만에 우리는 그토록 꿈꿨던 ‘풍요의 땅’이자 ‘무릉도원’, 즉 ‘코케뉴(Cockaigne)’에 근접한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유럽의 신흥 사상가 뤼트허르 브레흐만(30)은 신간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에서 이처럼 오늘날까지 세계 경제가 변화해 온 시간의 자취를 더듬어 간다. 그가 보기에 평균 수명, 질병, 굶주림, 교육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조상들이 자유분방하게 상상했던 꿈들은 ‘대체로’ 이뤄져 왔고 계속해서 이뤄지고 있다. “풍요의 땅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그의 서두 인사말은 바로 이런 믿음에 대한 확언이자 확증인 셈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풍요가 행복과 동의어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1980년대 이후 인류의 노동 시간은 계속해서 비약적으로 증가해왔고 시장과 상업적 이해집단은 무제한의 자유를 늘리며 소비자의 건강을 은연중에 앗아왔다. 첨단 산업은 일자리를 계속해서 파괴했으며, 광고산업은 과소비를 부추기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는 “심리치료사의 어깨에 기대 얼굴을 파묻고 울 뿐”이다. 그는 이런 점에서 우리가 사실은 “여전히 ‘디스토피아’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디스토피아적 서사를 종식시키기 위해 우리는 어떤 길을 가야 할까. ‘풍요의 땅’이란 과거의 꿈을 현실로 만들었듯,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방법은 없을까. 저자는 지금까지 이어져 온 자본주의 체제를 ‘삶의 질을 높이는 다른 방식’으로 전환시키면 가능하다고 본다. 그 세부적인 방안 중 하나는 최근 스위스와 핀란드, 캐나다 등에서 논의되고 있는 기본 소득에 관한 것이다.

기본 소득의 기본 개념은 재산, 노동의 유무와 상관 없이 모든 국민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지급하는 소득이다. 토머스 모어의 소설 ‘유토피아’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은 한 사회의 가치의 총합을 구성원들이 함께 누려야 한다는 데서 유래됐다. 이후 몇몇 국가에선 실제 이를 적용해 자본주의에서 발생한 불평등과 사회적 비용을 바로 잡아가는 모습들을 보여줬다.

2009년 5월 런던에서 노숙자 1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이 대표적이다. 당시 영국 정부는 이들을 위한 무료 급식소와 보호소를 운영하는 대신 각자에게 3000파운드를 무료로 제공하고 어디에 쓸지는 개인의 자유에 맡겼다. 1년 간의 추이를 조사한 결과 13명 전원은 약 800파운드 정도만 소비하며 요리를 배우거나 재활을 했고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우는데 돈을 투자했다. 실험 전 이들을 위해 연간 40만파운드가 소요되던 사회적 비용 역시 약 3만파운드 정도로 대폭 줄었다.

저자는 “2008년 우간다 정부 역시 1만2000명 청년들에게 무상으로 현금을 지급해 소득을 50% 이상 증가시켰다”며 “흔히 많은 이들은 ‘빈곤층은 게으르고 돈을 다룰 능력이 없다’는 케케묵은 주장을 펴지만 실제로 그들은 그렇지가 않음이 증명된 셈”이라고 말한다.

‘주 15시간 노동’ 달성은 기본 소득에 이어 저자가 책에서 가장 힘을 주어 말하는 부분이다. 그에 따르면 근무시간 감소, 여가시간 증가가 기업의 비약적인 수익 증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역사적으로 학습한 선험적 지식이다. 특히 20세기 초 헨리 포드나 켈로그는 여가시간 증대 캠페인의 선봉에 서며 자동차와 콘플레이크 판매 증가 수혜를 입은 대표 기업이었다.

저자는 “물론 40시간 이상인 현 근로 시간을 20시간이나 30시간으로 갑자기 줄이자는 것은 아니지만 남성의 육아 휴직과 보육을 뒷받침할 수 있는 등의 법적 제도를 바탕으로 단계적 근무시간 경감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풍요의 땅에 도달하자 마자 다시 한번 머나먼 수평선에 시선을 고정하고 닻을 끌어 올려 항해를 떠나야 한다.” 아일랜드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말은 책의 전체를 관통하는 그의 결론과 맞닿는다. 일부 회의론자들은 “여태껏 누려온 것보다 나은 세계를 상상할 수 없기에 지금까지 꾸어온 꿈을 대체할 새 꿈이 없다”고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상상하고 희망하라”고 외친다. 상상과 희망이 꿈틀거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황량한 현실로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오늘날 진정한 위기는 우리가 ‘더 바람직한 해결책’을 그리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을 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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