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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찬

(위기의 문구업계)①한해 1천개씩 사라지는 학교앞 문방구

대형마트·다이소 등 등쌀에 하루 매출 10만원도 어려워

2017-10-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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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이우찬 기자] #1. 경기 부천에서 22년째 문방구를 운영하는 이모(60)씨는 ‘투잡’을 한다. 본업은 문방구를 하는 소상공인이지만 그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부업으로 아파트 경비를 나갈 수밖에 없다. 격일제로 아파트 경비를 서는데, 경비 일을 쉬는 날 문방구가 등교시간에 바쁘면 문방구를 보는 아내를 돕는다. 이씨는 “문방구는 문달을 시기만 저울질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도 한 시절 잘 나가던 때가 있었다. 이씨는 지난 1996년 IMF 외환위기 직전 한 대기업에서 명예퇴직을 한 뒤 문방구를 차렸다.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문방구를 이용하는 학생수도 많았고 대형마트는 지금처럼 문구류를 취급하지 않았다. 90년대 문방구는 전국 3만개 이상으로 추산된다. 잘 될 때는 하루 70만~100만원의 매출도 올렸다. 33㎡(10평) 남짓으로 시작한 이씨의 문방구는 66㎡(20평)까지 확장했지만 이제는 빛바랜 과거가 됐다. 문방구에서 하루 10만원 매출을 올리기 어렵다. 하루 매출 10만원으로 꼬박 한 달을 벌어도 손에 쥐는 돈은 100만원 남짓이다. 
 
#2. 충남 천안에서 18년째 문방구를 하고 있는 권모(59)씨도 이씨처럼 폐업을 고민 중이다. 권씨가 운영하던 문방구는 인근에 초·중·고를 끼고 있고, 99㎡(30평) 규모로 커 비교적 경쟁력이 있었다. 하지만 업계 상황이 악화되면서 최근 39㎡(12평)를 줄였다. 권씨는 “하루에 10만원도 팔지 못한다. 월세를 내면 벌써 장사를 접었을 것”이라며 “점포가 우리 가게라 그나마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권씨는 내년 신학기까지 상황을 보고 나아지지 않으면 다른 업종으로 바꿀 것이라고 했다. 그는 “다른 업종으로 바꾸기에도 겁나는 나이”라며 “그래도 이대로 안 좋은 상태로 계속 가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권씨는 대형마트와 다이소를 겨냥하기도 했다. 그는 “문구소매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대형마트에서 취급하는 문구류를 줄이는가 싶었지만 다이소가 문구시장까지 끼어들며 무분별하게 점포수를 늘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문구업계가 위기다. 저출산 고착화, 대형마트와 다이소의 급성장, 문구 수요 감소 등 위기의 실타래는 여러 갈래로 얽혀있다. 가장 영세한 학교 앞 문방구는 요즘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다이소뿐만 아니라 대형마트, 편의점 등 문구류를 팔지 않는 곳이 없어 영세 문구상인들의 설 자리가 사라진 지 오래다. 중간 유통·도매상인들도 단체 행동에 나서며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가장 영세한 소매상점이 무너지자 생태계 중간에 있는 문구업자들도 위기에 처했다.
 
23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15년 문구용품 소매업의 사업체수는 1만1735개, 종사자수는 2만1810명이다. 2007년 1만9617개를 기록했던 문구용품 소매점포는 매년 1000개가량 사라지고 있다. 2007년 종사자수 3만2647명에서 8년 만에 1만명이 업계에서 떠났다. 업계에서는 가장 영세한 학교 앞 문방구는 전체 문구 소매점 가운데 절반 수준인 6000개가량로 파악하고 있다.
 
문구산업의 무역수지 또한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어 산업 전반이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한국문구공업협동조합에 따르면 문구산업은 2000년 2억9000만달러 무역수지 흑자에서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2014년 1억달러 흑자를 기록해 3분의 1가량 축소됐다. 수출은 중국 등 후발 저임금 경쟁국과의 가격경쟁에서 밀려 2000년대 2.8%의 감소세를 기록했고, 수입은 6.8% 증가세를 보여 흑자규모가 지속적으로 축소됐다.
 
학교 앞 문방구 등 영세 소매상점을 대변하는 단체인 전국학용문구협동조합의 이성원 사무국장은 “지금 학교 앞 문방구는 하루 매출 10만원이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그나마 매출 절반 이상은 문구류가 아닌 먹거리 판매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무국장은 “문구업계에서 가장 영세한 소매점들이 무너지다보니까 저희 단체는 문방구 살리기 운동을 해왔다”며 “생태계 중 가장 취약한 곳이 사라지니까 조금 더 덩치가 큰 문구 유통·도매상인들도 위기를 체감하고 단체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으로 보면 된다”고 최근 문구업계 상황을 설명했다.
  
문구업은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단위 상품의 단가가 다른 업종 품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낮은 전형적인 중소기업 업종으로 꼽힌다. 생계유지를 위해 버티는 학교 앞 문구뿐 아니라 중소·중견 문구업체들마저 그 여파를 실감하고 있는 등 업계 전반이 신음하고 있는 가운데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업계에선 문구업계 위기엔 저출산이라는 사회구조적 문제와 덩치 큰 대형마트, 다이소의 등장 등 복합적인 이유가 얽혀 있어 해결이 쉽지 않다며 지원책과 육성책 모두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우찬 기자 iamrainshin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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