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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정치, 청소년 호기심 자극하는 역동성 있어야

2017-10-31 06:00

조회수 : 4,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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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청소년들에게 대통령이란 존재는 과연 어떤 의미이며 그들이 바라보는 대통령의 이미지는 어떠할까. 그들이 꿈꾸는 직종 중에 대통령이란 직업은 존재할까. 프랑스처럼 30대 대통령이 탄생하는 것도 아니고, 30대 장관도 찾아볼 수 없는 한국의 정치 현실에서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을 직업으로 바라보는 청소년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역대 우리 대통령들은 대부분 노령에, 젊어서부터 정치를 직업으로 삼아온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 65세인 문 대통령은 정치 경험이 짧은 편이고, 상당수 장관들도 비슷하다. 장관들의 나이도 평균 60세를 넘고 있어 직업으로 치면 정년을 넘겼거나, 아니면 정년을 코앞에 두고 있다.
 
프랑스에 비해 한국의 정치인들이 나이가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정치를 직업으로 보지 않는 문화 때문일 것이다. 우리 정치인들은 젊은 시절 다른 직업에 종사하다가 말년에 정치권에 입문한 사람이 많다. 따라서 막스 베버가 말하는 ‘직업으로서의 소명의식’이 굉장히 부족하다. 정치인들의 직업윤리의식이 어느 정도로 결여되어 있는지는 요즘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와 서청원 의원 간 실랑이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들은 전문정치인으로서의 직업윤리의식은 고사하고, 국민을 대하는 최소한의 예의조차 갖추고 있지 않다. 이처럼 한국 정치인들이 직업윤리의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노령화 된 상황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한국정치는 프로화되기 어렵다.
 
우리와 달리 프랑스에서 대통령이나 정치인은 하나의 직업인이다. 청소년기부터 정치인을 꿈꾸고 정치기술을 익히고자 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39세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정치대학을 졸업하고 20대에 사회당 당원이 되어 전문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처럼 정치를 대하는 양국의 문화는 판이하게 다르다.
 
최근 프랑스 언론과 SNS를 뜨겁게 달군 하나의 사건을 봐도 이 같은 점을 알 수 있다. 지난주 14세의 한 소년이 마크롱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 엘리제궁에서 실습의 기회를 얻게 된 사연이 알려져 화제가 되었다. 브르타뉴 모르비앙(Morbihan) 지역 오레(Auray) 시에 있는 생 루이(Saint-Louis) 중학교 3학년 마티외 피카르다(Mitthieu Picarda)는 지난 6월말 가족들과 소파에 앉아 마크롱 대통령의 첫 TV연설을 듣고 있었다. 그 때 마티외는 마크롱 대통령이 국민에게 제안하는 내용을 듣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마크롱 대통령의 매력에 푹 빠진 이 소년은 엘리제궁에서 실습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순간 갖게 되었다.
 
프랑스의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은 직업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실습지를 찾아 떠나야 한다. 이 때문에 중3 학생들과 그들의 부모에게는 실습지를 찾는 일이 고역이다. 마티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어머니에게 마크롱 대통령의 관저인 엘리제궁에서 실습을 하고 싶다는 사실을 말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마티외의 어머니는 아들과 함께 원서를 준비해 마크롱 대통령에게 보냈다. 그러나 답신이 오리라는 것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예상을 깨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제궁으로부터 긍정적인 답신을 받았다. 마티외는 웨스트 프랑스(Ouest France)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어느 날 저녁 엄마가 편지를 들고 날 찾았다. 엄마는 승용차 안에서 내가 실습 승낙을 받은 편지봉투를 뜯으면서 글자그대로 껑충껑충 뛰었다. 우리는 너무 기쁜 나머지 펄쩍 뛰며 탄성을 질렀고 지나가던 행인들은 우리를 마치 미친 사람처럼 쳐다봤다”고 털어놨다.
 
엘리제궁 관리국에서 실습을 한다는 생각에 희열에 넘친다는 마티외는 여전히 충격에 휩싸여 있다. "나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게다가 나는 아직 우리 반 아이들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나는 초조함과 동시에 약간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의심의 여지없이 그의 실습 보고서는 생 루이 중학교 선생님들의 특별한 검토를 받을 것이다.
 
이처럼 한 중학생이 대통령의 연설에 매료되고, 엘리제궁에서 실습을 하고 싶어 하자 부모는 아들을 도와 편지를 쓰고, 대통령은 답신을 주는 드라마 같은 일련의 과정을 보며 프랑스 정치의 역동성을 느낄 수 있다. 반면 우리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을 할 때 우리 청소년들은 과연 얼마나 감동을 받고 청와대를 방문하고 싶어 하는지 궁금하다. 국가 최고권력을 가진 통치자로서의 대통령이 아닌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대통령을 우리는 언제쯤 맞이할 수 있을까.
 
1년 전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의 정치문화가 크게 변하고 것은 사실이다. 지난 보수정권들과 현 정권을 비교해 보면 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정치인이 하나의 직업으로 간주되고 있지 않다는 면에서는 오십보백보다. 우리 정치가 장족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이 프로페셔널리즘을 발휘하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
 
프로다운 정치인들이 나와 청소년들에게 귀감이 되고 닮고 싶은 모델이 될 때 우리 정치는 바야흐로 새 국면을 맞이할 수 있다. 프랑스의 한 소년이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을 듣고 엘리제궁에서 실습을 하고 싶은 욕망이 솟구쳤듯 우리의 정치인들도 청소년들에게 매력 있는 모습으로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 노령화된 한국정치의 회춘을 빌며.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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