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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없는 자에게 가혹한 법

2018-01-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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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년 새해를 맞은 지 보름 정도 지났지만 우리의 삶은 여전히 지난해의 연장선상에 있다. 주어진 시간 속에 각자는 변함없이 삶의 전쟁을 치르느라 정신이 없다. 삶의 원리는 2018년이라고 해서 딱히 달라질 것도 없고 마냥 고달프고 힘들다. 그러나 이 고달픔의 농도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어떤 이들은 그나마 삶은 살아볼만한 것이라고 콧노래를 부르고, 어떤 이들은 그렇지 않다고 죽을상이다. 아마도 거리의 노숙자들은 후자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지난주 프랑스의 한 노숙자가 슈퍼마켓 쓰레기통을 뒤져 버려진 물건을 들고 나왔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유죄판결을 받았다. 프랑스 부르고뉴 프랑슈 콩테 지방의 뷔시(Buxy) 읍에서 일어난 일로 이 노숙자는 아타크(Atac) 슈퍼마켓 쓰레기통에서 음식과 식탁보를 훔쳤다는 죄목으로 징역과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24세의 이 청년은 3개월을 형무소에서 보내야 하고 210시간 동안 무보수 노역을 해야 한다.
 
이 청년은 지난 7년 간 길거리에서 노숙했고 전기와 통신조직 부분의 대학입학 자격증도 갖고 있었다. 조사과정에서 그는 마약밀매를 하다 그만 둔 사실도 고백했다. 그는 이 사건에 대해 “맞습니다. 저는 12월28일과 1월1일 아타크 창고에 들어갔고 쓰레기통에서 샌드위치와 미니 피자, 소다수 몇 캔, 그리고 추위를 막으려고 식탁보를 훔쳤습니다. 처음에는 17세의 두 소년과 함께 했고, 이번에는 혼자 했습니다. 저는 벽을 타고 창고에 들어갔습니다”고 자백했다.
 
변호사인 쥘리앙 마르소(Julien Marceau)는 설득력 있게 이 청년을 방어했다. 마르소 변호사는 “24세의 남자가 반바지 차림으로 인도되는 것을 보는 것은 심히 걱정스럽다. 우리는 그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사건에서 상점 지배인과 두 소년은 나의 고객보다 더 큰 도덕적 잘못을 저질렀다. 먼저 그들은 쓰레기통에 버린 샌드위치를 주기를 거부했다. 필요하지 않은 것을 그에게 주면 훔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는 (생존을 위해) 이것들이 필요했다…나는 무보수의 노역을 그에게 시키는 것이 최소한 타당하다고 본다. 우리나라(프랑스)는 불행하게도 세금을 포탈하는 부자나 사기꾼, 도둑에 비해 빈곤한 사람들에게 법정 판결이 너무 빨리 언도된다”며 법의 부당함을 고발했다.
 
3세기 전 우화 작가 장 드 라 퐁텐(Jean de la Fontaine)은 “당신이 강자인지 아니면 불쌍한 자인지에 따라 재판은 당신에게 희거나 검다고 결론을 내린다”는 말로 법의 논리를 비꼬았다. 300년이 지난 오늘날도 이 논리는 전혀 변함이 없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지난주 토요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감옥 생활 의혹을 추적했다. 프로그램 내용에 따르면 김 회장은 구치소 내에서 전담 도우미를 두고 하루 30분 주어진 야외 운동시간에 여유 있게 산책을 하는 등 일반 수감자와는 다른 생활을 했다. 또한 구속 수감 한 달 만에 우울증이라는 명목으로 10차례의 통원치료를 받았고 3개월 뒤에는 결국 입원했다. 법원은 건강이 악화돼 수감생활을 하기 어렵다는 김 회장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구속집행 정지 결정을 내렸고, 김 회장은 1년 3개월 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반면에 이 교도소에 수감된 다른 두 명의 재소자는 신부전증으로 혈액투석을 받다가 사망했다. 그들은 사망 전 몇 차례 쓰러지며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었고, 여러 차례 외부 진료를 요청했지만 교도소 측은 거절했다. 법이 과연 평등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하는 씁쓸함을 자아낸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들은 하나 같이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라는 문구를 헌법 전문에 적고 있다. 그리고 법정 정면에는 버젓이 균형 잡힌 천칭 저울 그림이 걸려 있다. 그러나 이는 한낱 장신구에 지나지 않을 때가 많다.
 
물론 법 자체도 맹점을 가지고 있다. 일찍이 아나톨 프랑스는 “평등하다는 법에서조차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똑같이 다리 밑에서 잠잘 수 없도록 하고, 거리에서 구걸을 하지 못하게 하며, 빵을 훔치지 못하게 한다”고 법의 역설을 꼬집었다.
 
법은 인간끼리 만든 약속이다. 법의 중요성을 강조한 순자는 “소청을 처리하는 대원칙은 선한 일을 가지고 온 자는 예로써 대접하고, 선하지 못한 일을 가지고 온 자는 형벌로 대접해야 한다”고 했다. 이 두 가지를 잘 분별하면 어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이가 섞이지 않고 옳고 그름이 혼돈되지 않는 법이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법을 운용하는 사람들이 군자의 길을 걸어야 한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아무리 세상이 부자의 논리로 돌아간다 하지만 법을 운용하는 사람만큼은 대의명분을 지키고 공정한 길을 걷는 군자의 도를 지켜야 한다. 그래야 없는 자들은 그나마 세상은 살아볼만한 것이라고 용기를 내고 한 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새해에는 적폐청산과 함께 사법부의 쇄신이 제대로 이루어지길 간절히 빌어본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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