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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검경 수사권 조정…재판에 약이냐, 독이냐?

법조계, '갑론을박'…법원 중심으로 논의 본격 시작

2018-06-25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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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 발표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는 가운데 향후 법정의 소송진행에는 어떤 변화가 올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동안 검·경수사권 조정 문제는 검찰과 경찰의 '밥그릇 싸움'으로 치부돼 왔지만 국민의 인권과 재산권 관계를 결정 짓는 재판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사안이 간단치 않다. 법원과 검찰, 변호사 등 법조계와 학계에서도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본격적인 공론화를 앞두고 있어 논거들이 아직 여물지는 않았지만 이번 수사권 조정 합의안이 공판중심주의 실현에 기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후퇴시킬 것이라는 의견이 법조계를 중심으로 엇갈리고 있다. 공판중심주의는 법관이 형사사건을 심리할 때 법정에서 모든 증거를 조사해 실체적인 진실을 밝히겠다는 원칙으로, 우리나라 법원은 이를 지향하고 있다.
 
24일 법조계 일각에서는 법정에서도 경찰이 직접 진술을 하고, 검찰이 공판에 집중함으로써 공판중심주의를 지향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찰이 직접 법정 나와 진술
 
검경 수사권 조정에서 두드러지는 가장 큰 변화는 경찰이 부패·선거범죄를 제외한 모든 사건의 1차 수사권과 수사종결권을 갖게 되는 것이다. 김태명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향후에는 수사를 담당하는 경찰이 법정에 나와 진술할 것”이라며 “피고인이 진술 조서 내용을 부인하거나 자백하지 않는 사건에 대해 직접 법정에 나가 진술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이어 “2007년 사법 개혁 당시 공판중심주의를 위해 경찰의 법정 진술이 도입되며 경찰들이 진술하는 연습도 했었다”면서도 “조서를 증거로 제출할 수 있으니 굳이 법정에 나가 진술할 이유가 없었고 실효성이 없던 부분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제 피고인이 진술조서 내용을 부인하거나 자백하지 않는 사건에 대해 경찰이 법정에서 진술하는 상황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검사들, 공소유지에 전념할 것"
 
또 검경이 기존 이중 수사로 인한 행정력 낭비를 줄이고, 나아가 수사를 위한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법원 내부에서도 검경 수사권 조정이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대화를 많이 하고 있다”며 “기존에 수사에 치우쳐 공판 준비에 소홀했던 검사들이 앞으로는 공판에 더욱 전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른 판사 역시 “드루킹 사건의 경우에도 기소를 하는데 집중하다 정작 공판에서 증거조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점이 지적됐다”며 “이럴 경우 재판도 지연되고 국민인 피고인이 피해를 고스란히 보게 된다. 공판에 집중해 더 나은 재판이 진행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법원 부담 가중으로 실체적 진실 규명 방해"
 
이에 대한 반론 역시 만만치 않다. 현재 진행되는 형사사건 중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 같은 경우, 검찰은 공판검사 외에 수사검사를 반드시 출석시켜 공소유지를 하고 있다. 그러나 수사권 조정 합의안에 따르면, 특수수사 외 강력사건·형사사건에 대한 수사권이 검찰에 없기 때문에 수사검사는 빠지게 된다.
 
대검찰청의 한 중견 검사는 "지금까지 재판은 법률가인 재판장과 검사가 법적 쟁점이나 증거조사, 증인 채택 등에 대한 협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실무적인 부분을 포함해 적지 않은 부분을 수사검사가 책임져 왔다"면서 "수사검사가 빠지게 될 경우 재판장은 소송지휘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돼 피고인이나 증인, 참고인 등의 진술을 충분히 청취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 봤다. 지방에서 근무하는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권 조정 합의안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검찰은 그렇다 치더라도 법원은 폭주하는 업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경찰 진술, 지금도 가능…소송경제에도 반해"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수사권 조정합의안이 공판중심주의 강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보는 입장에서는 단순히 수사를 직접 한 경찰관이 법정에 나와 진술할 기회가 많아질 것이라는 논리지만 이는 문제를 단순논리로 보고 있는 것으로, 지금도 필요한 경우 수사경찰이 나와 조사자 진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검사는 이어 "지금까지 검사가 수사단계에서의 오류나 절차상 위법사항을 걸러 공판을 진행시켜왔는데 사건마다 수사경찰을 법정에 출석시켜 진술을 듣는다면, 소송의 경제성이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데 오히려 방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러 변호사들도 비슷한 지적을 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간부를 역임한 한 중견 변호사는 "대부분의 경찰은 그렇지 않겠지만, 피고인들과 유착돼 있는 경찰의 경우 수사지휘검사가 없기 때문에 법정에서만 무사히 넘어가면 증거 인멸이나 조작, 범인 도피가 오히려 수월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증거조작 등 경찰 위법행위 가능성 커져"
 
이 변호사는 "지방에서 피의자나 피고인을 변호하다 보면, 지역사회의 특성 상 경찰과 피의자·피고인이 유착돼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지금이야 검사가 한번 거르지만, 검사가 이런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될 경우 수사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어떻게 담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경찰청의 한 중견간부는 "검사가 법률전문가로서 공소유지에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맞지만, 법원으로서도 조서에만 의존하기 보다는 직접 수사한 경찰의 진술을 듣는 것이 사건에 대한 불필요한 선입견이나 오판을 방지하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담화 및 서명식'에서 참석자들이 합의문 서명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이낙연 국무총리, 박상기 법무부 장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사진/뉴시스

최영지·최기철 기자 yj113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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