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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의 밴드유랑)록 음악이 죽었다고?…캡틴락 ‘낭만’은 죽지 않아!

2018-07-05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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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인디씬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를 가득 메우는 대중 음악의 포화에 그들의 음악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종로구 신문로에 위치한 문화복합공간 ‘에무(Emu)’. 사진/조은채 뉴스토마토 인턴기자
 
지난달 26일 오후 4시 종로구 신문로에 위치한 문화복합공간 ‘에무(Emu)’. 1층 입구에 들어선 순간 이마에 빨간 스카프를 두르고 한 손에 맥주를 걸친 사나이가 눈에 들어왔다. 굵은 비가 쏟아지던 그 날 그 곳의 정취를 벗 삼아 그는 ‘낮맥’을 하며 동료들과 회의 중이었다.
 
“우리 그 영화 상영 안 하기로 했었지? 인스타 공지는 언제쯤 올릴까? 티셔츠 디자인은..아! 안녕하세요! 페스티벌이 얼마 안 남아서 회의 중이었어요. 술도 마시면서. 심각하게 ‘회의하자!’ 하면 누가 오겠어요. 술먹고 놀자! 그런 거죠. 뭐 있나요, 하하하”
 
크라잉넛 베이시스트 ‘캡틴락’(한경록)에게 에무는 특별한 공간이다. 공연을 하기 위해 종종 들르는데 끝나면 종종 플리마켓, 전시 등도 둘러 본다. 올 때 마다 비가 오니 덩달아 맥주도 술술. 고즈넉하니 낭만적인 인근 풍경은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다.
 
“여기에 낭만적인 ‘기’가 있나 여겨질 정도에요. 올 때 마다 비가 내리고, 올 때 마다 취해서 나가 거든요. 최근 홍대는 약간 소비적으로 변한 경향이 있는데 이 쪽은 아직 운치가 있다 생각해요.”
 
펑크록 밴드 크라잉넛의 베이시스트 ‘캡틴락’(한경록). 사진/조은채 뉴스토마토 인턴기자
 
오는 7월14일 그가 직접 기획한 ‘종로콜링’이 이 곳에서 열린다. 인디 음악 씬의 활력을 불어넣고 문화 예술의 장을 더 확장시켜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종로콜링’이란 명칭은 크라잉넛 특유의 낭만이 담긴 곡 ‘명동콜링’에서 따왔다.
 
“요즘 유난히 록 음악이 죽었다는 이야기가 많은 게 사실이잖아요. 대형 록 페스티벌마저 사라지는 추세기도 하고요. 물론 조금 줄어들 수는 있어요… 있지만, 록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분명 여전히 많은 것도 사실이거든요…”
 
“그런 소식들이 들려올 때마다 울컥하고 불끈하는 기분이 있었어요. ‘그래, 그럼 팬들과 공유할 수 있는 페스티벌을 한번 만들어 보자’, ‘인기 있는 몇 팀 말고 진짜 좋고 다양한 음악을 하는, 차별화가 제대로 된 페스티벌을 만들어 보자’ 생각했죠!”
 
현재 홍대 라이브 문화의 중추가 된 ‘경록절’에서 기획 아이디어를 얻었다. ‘경록절’은 그의 생일을 맞아 주변 동료 뮤지션과 문화계 인사들, 관객들이 함께 안부를 나누고 술을 마시며 잼을 하는 축제다. 인디씬에선 크리스마스, 할로윈과 더불어 이 날을 ‘홍대 3대 명절’로 부르기도 한다.
 
2000년대 중반 시점 100여명이 참석하는 소규모 행사로 시작했지만, 세월을 거치며 입소문을 타고 700~800명까지 늘었다. 김창완과 김수철, 최백호 등 관록 있는 뮤지션부터 후배 아티스트까지 이 곳을 거쳐갔다.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이 순수함과 낭만을 간직한 채 모이는 곳. 세월이 쌓이니 ‘사람’에 얽힌 에피소드도 한 보따리가 됐다.
 
“한 번은 라쎄 린드(스웨덴 싱어송라이터)가 온 적이 있어요, 저 한테 공연을 해도 되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무대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친구들을 보여줬어요. ‘응 해도 되는데, 아마 순서를 기다려야 할 거야! 줄이 길텐데 괜찮나?’라고 얘기해 줬죠. 하하.”
 
캡틴락의 주위엔 항상 인디씬 동료 선후배가 넘쳐난다. 지난해 솔로곡 '모르겠어' 뮤비 촬영 당시 평일 낮 시간 임에도 홍대 뮤지션 60명이 삽시간에 몰려 들어 촬영에 응해주었다. 사진/캡틴락컴퍼니·뉴시스
 
동료 뮤지션들과 모일 때면 “으쌰으쌰 해보자”, “재밌어야 한다”는 말을 스스럼 없이 건넨다. 스크린쿼터 등 권리를 위해 함께 싸우는 영화계에 비해 음악계는 뭉치기 쉽지 않지만 그는 먼저 나서서 동료들을 독려하는 편이다. 생일인 경록절엔 맥주 65만cc, 위스키와 고량주 100병이 공수되는데, 일정 부분 자신의 사비를 털어 베풀 정도로 배포가 크다.
 
“예전 음반시장 호황기 땐 크라잉넛이 앨범 내면 그래도 10만장 정도는 팔았거든요.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어서 환경이 어려워 졌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많이 들어요… 한 번은 후배 밴드 뒷풀이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다들 소주만 마시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왜 맥주를 안 마시냐 물었어요. 비싸서 그렇다는 거에요. 그 말을 듣자마자 진짜 ‘이모님 여기 맥주 100병 주세요!’ 소리가 절로 튀어 나왔어요. ‘배달하기 힘드니 50병만 먹어!’ 하고 구박받긴 했지만요. 하하. 제가 부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기타 둘러 메고 열심히 음악 하는 친구들 보면, 정말 한잔 사주고 싶어요.”
 
이번 페스티벌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 역시 ‘낭만’이다. 친구들과 함께 ‘놀이’하듯 꿈을 펼쳤고 그 꿈은 종로에 닿았다. ‘취향의 발견과 확장’이란 부제가 붙은 행사는 그야말로 뮤지션과 관객이 함께 노는 ‘문화 놀이터’다.
 
그를 포함해 크라잉넛, 차승우, 해리빅버튼, 로맨틱펀치, 위댄스, 최백호, 씨 없는 수박 김대중, ABTB 등 12팀의 라이브가 이어지고 강연, 전시, 영화 상영 등 각종 문화 행사가 동시에 열린다. 야외 뒤뜰부터 지하, 1, 2층, 옥상까지 에무 주변의 모든 공간을 적절히 활용할 계획이다.
 
“가볍게 공기 놀이도 하고, 보드 게임도 하고, 뮤지션들이 추천하는 음악도 함께 들어보고 그런 재밌는 자리가 될 거에요. 홍대 인디 문화를 주제로 한 영화 ‘아워네이션’ 상영도 있고, ‘밤의 궁전’이란 낭만과 관련된 전시도 있고요. 아 또 뭐가 있더라, 아! 옥상에서 바비큐도 구워먹을 거에요.”
 
문화복합시설 '에무'의 지하 공연장에서 포즈 취하는 캡틴락. '종로콜링' 때는 이 곳에서 크라잉넛, 로맨틱펀치, 해리빅버튼 등 밴드들의 무대가 펼쳐진다. 사진/조은채 뉴스토마토 인턴기자
 
지난해 22년 만에 ‘캡틴락’이란 이름으로 첫 솔로 앨범을 냈다면, 이번엔 23년 만에 첫 ‘문화기획자’로의 데뷔다. 두 영역 모두 크라잉넛으로서의 활동은 아니지만 여전히 주변 동료들과 도움을 주고 받으며 완성한 일이란 점에선 공통성을 획득하고 있다.
 
“23년 만에 처음으로 기획 일을 해보면서 가수 입장이 아닌 다른 영역의 입장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어요.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그만큼 주변의 도움도 많이 많았고요. 그렇게 하나의 ‘놀이’를 만들 수 있었어요.”
 
“사실 제가 모든 것을 잘하진 못해요. 그래도 전 제가 하고 싶은 걸 하는 추진력은 있어요. 피가 가만히 있지 못한 달까요. 가끔 어려운 일이 생길 때도 있는데 ‘그래도 나 이거 안 하면 죽어버리는 게 나아’ 란 생각이 들어서 결국 해요. 이번에도 ‘왜 하고 있지?’. ‘뭐가 남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추억이 남겠지’, ‘사람들에게 추억이 되겠지’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종로콜링' 행사 타임테이블. 사진/캡틴락컴퍼니
 
그는 ‘종로콜링’의 작은 씨앗이 음악계에 새로운 흐름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트렌드에 맞춰가기 보단 스스로가 지닌 색깔들이 빛을 발하는 축제였으면 해요. 참석자 모두에게 ‘각자 힙한 멋이 있다’, ‘다양하다’ 그렇게 얘기를 해주는 느낌으로요! 재밌으면 결국 사람들도 오지 않을까요? 뭐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끼리 논다면 그것 만으로도 사실 충분해요.”
 
솔로앨범, 축제기획 등 여러 일에 도전을 하고 있지만 그에게 여전한 1순위는 크라잉넛이다. 개인활동을 하면서도 쪽잠을 자거나 시간을 쪼개 새 앨범과 단독 공연 준비를 병행하고 있다. 오는 10월27일 브이홀에서 앨범 발매 기념 단독 공연을 열 예정이다.
 
“크라잉넛에 제 인생을 걸었거든요. 절대 포기할 수 없고 멤버들에게 피해를 줘선 안 된단 생각이 있어요. 함께 무대에 서는 것도 정말 재미 있고! 함께 연주할 땐 ‘세월이 쌓여야만 나오는 플레이’가 있거든요. 우리들끼리의 호흡이 관객과 교감이 되면 그것만큼 큰 쾌감이 없는 것 같아요. 어떤 초호화 세션을 쓴다고 해도 그렇게는 안 될 거에요.”
 
베이스를 둘러 메고 포즈를 취하는 캡틴락. 사진/조은채 뉴스토마토 인턴기자
 
마지막으로 이번 ‘종로콜링’을 여행지에 빗대 달라니, “‘즐거운 지옥’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가 농담이라며 금방 손사래 친다.
 
“특이한 거 생각하려다 보니까 그런 건데요. 하하. 사실은 ‘놀이동산’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회전 목마도 있고 꼭 기구를 타지 않더라도 낭만적이잖아요? 참석해주시는 분들 모두에게 지나고 나면 짜릿하고 아련한 추억이 되는 그런 여행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날도 비가 오면 어떨 것 같냐고요? 오히려 더 좋을 것 같은데요! 비에 젖고 음악에 젖고.. 낭만이 뭐 그런 거 아니겠어요?”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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