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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영

(미드)자리가 사람을 만드나?

능력없는 사람이 자리에 앉으면 그거슨 재앙

2018-08-09 11:38

조회수 : 2,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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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생존자(designated survivor)’라는 미드가 있다. 제목부터 신박한데, 내용 또한 겁나 새롭다.
실제 미국에 있는 지정생존자 제도는 사전적 정의로 말하믄 중대한 재난이나 테러 등 비상사태로 대통령과 대통령직 승계자들이 한꺼번에 거시기 될 경우를 대비해 행해지는 조치다.
비상시 대통령직을 넘겨받을 자격이 있는 행정부 각료를 한 명 지정하고 대통령 참석 행사가 열리는 동안 워싱턴DC 외곽의 안전하고 은밀한 장소에 대기시키는 거다.
생각하보믄 겁나 시끄럽고 사람 많은 곳에서 대통령 연설에 맞춰 박수나 쳐야 하는 것보다 꿀일 듯.
설마 세계 최강 미국인디, 보안·경호 담당들이 전날 겁나게 술을 마셔블고 테러범이 10년이나 도망댕기다 사살된 오사마 빈라덴이 부럽지 않고서야 대통령을 비롯한 각료들을 모두 날려 버릴 수 있을까.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맞다. 미드 지정생존자는 주인공 톰 커크만(키퍼 서덜런드)이 지정생존자로 당직이던 날, 테러로 국회의사당이 날아가며 그곳에 참석한 대통령+정부각료+의원들이 모두 죽고 시작하는 내용이다.
사실 톰 커크만은 당직 당일, 현재 주택·도시개발 장관에서 보직변경 통지를 받고 마지막 당번을 서고 있었다.
말 그대로 눈뜨니까 세계최강 미국 대통령.
취임 시작부터 차포 떼고 대통령이 된 톰은 시즌 1 내내 테러와 내부 수습으로 시간을 보낸다. 테러를 자행한 대통령보다 더 거대한 세력을 맞서 싸우고, 서툰 대통령질 하느라 고군분투하는 부분이 매력적이다.
시즌2부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며 ‘결론은 그냥 미국 대통령 드라마’가 되블지만, 시즌2부터는 톰의 매력과 주변 보좌관들의 캐미를 보는 맛이 쏠쏠하다.
시즌 2 가운데, 톰이 누군가를 갑작스레 임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가 날린 대사는 "자리가 사람을 만듭니다. 저 또한 그랬듯이"

정말 자리가 사람을 만들까?
내 얘기를 풀자면, 극성맞은 부모를 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랬듯이 초등학교 시절 내내 학급임원을 맡았다. 반장, 회장, 가끔 부반장.
초 6때 집안 사정으로 졸업 직전 전학을 갔을 때, 학급임원이 아니라는 점은 꽤나 어색했다.
그리고 편했다.
그래서 중학교 때는 재야로 돌아가 3년 내내 나서는 일이 없었다. 편함을 넘어서 심심함을 느낀 고등학생 때는 3년간 반장, 학생회 임원, 동호회 회장 등을 맡으며 미친놈 널뛰듯 지냈다.
대학 때도 학교 최초로 편입생 출신으로 과대표를 맡으며 갈고 다녔다. 졸업 후에는 일반인 봉사동호회와 농구동호회에서 회장을 맡기도 했다.
이렇게 풀고 나니 정말 초등학생 때부터 익숙해진 대표격 자리가 사람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내 생각은 반대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자리, 그러면서도 대가를 바라면 안되는 것. 배려할 줄 아는 것. 그것이 리더의 덕목이라고 항상 생각해왔다. 그래서 언제 어디에서 리더가 되더라도 크게 흔들림 없이 수행할 수 있었다.

반대의 경우다.
나도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마쳤지만, 훈련소에 모였던 그들은 가관이었다. 지방에서 고급차를 타고 왔다가 이를 처분하고 결국 수천만원을 들고 입소해 한달간 이 돈을 보관해야 했던 행정병들을 멘붕에 빠뜨린 양아치, 손가락에 물집이 잡혔다며 피부병이라며 훈련 열외를 주장하고 실제로 열외됐던 모지리, 고작 한달인데 날마다 ‘엄마’로부터 편지를 받으며 질질 짜던 곰같은 덩치의 멍청이까지. 정말 대환장 파티였다.
그중 우리 분대장은 중학교를 중퇴(당시에는 중학교가 의무교육 대상이 아니었음)한 2살 많던 형. 겉보기에도 작고 비실비실하고 똑떨어지는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던 그는, 실제로도 머리를 쓰는 삶과 매우 거리가 멀었다.
그런 그가 분대장이 되자 점호시간마다 지옥이 펼쳐졌다. 무한도전의 박명수가 진짜사나이를 체험할때 보여준 그것처럼, 그는 서툰 점호보고로 우리의 수면시간을 줄여주는 데 일조했다. 한달이 거의 다 돼갈때 쯤에야 겨우 한번에 점호보고를 통과한 그를 보며 느낀 것은, 절대 자리가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의미가 통할 수 있는 것은 원래 그 사람에게 그 자리를 소화할 역량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 경우가 아닐 때 ‘자리’를 맡게 된다면 (어느 그분처럼)정말 우주의 기운이 필요할 것이다.
이는 주변에서도 볼 수 있다. 자신의 무능력으로 아랫사람들을 대동단결하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고서야, 능력 없는 리더는 그 팀에 재앙을 불러오는 존재다.
다시 미드로 돌아와서, 톰이 취임과 동시에 내세운 대통령 컨셉은 ‘정직’이다. 그가 알고 있는 비리와 문제점을 국민에게 숨기지 않고, 이를 파내려는 언론에 대한 견제 또한 각별히 주의한다. 시즌 1이 끝날 때 쯤이면 ‘세상 이런 대통령 어디 있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통령은 그에게 맞는 옷처럼 보인다.
이는 그가 주장하는 ‘정직’이 대통령이 된 후 생긴 신념이 아니라, 그의 일생이 그와 같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일은 없다. 그래선 안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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