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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고요 속 '귀를 위한 시'…밥 딜런이라 가능한 레퍼토리

2018-07-29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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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표식’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흔한 포스터조차 보이지 않았고, 무대 안엔 스크린도 없었다. ‘귀를 위한 시’가 고요 속에서 담백하게 흘러갈 뿐이었다.
 
27일 저녁 8시 무렵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8년 만에 열린 밥 딜런의 내한 공연. 노란 빛 조명이 켜짐과 동시에 ‘잼(즉흥연주)’ 식의 자유분방한 연주가 그 시작을 알렸다. 기타를 메고 그의 밴드와 등장한 딜런은 ‘올 어롱 더 워치타워(All Along the Watchtower)’와 ‘돈트 씽크 트와이스, 잇츠 올 라이트(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를 읊조리며 인사를 대신했다.
 
세 번째 곡 ‘하이웨이 61 리비지티드(Highway 61 Revisited)’부터 딜런은 앉아 건반을 치며 12곡을 연달아 노래하기 시작했다. ‘트라잉 투 겟 투 헤븐(Tryin' to Get to Heaven), ‘러브 식(Love Sick)’ 등에서는 장내가 떠나갈 듯 울려 퍼지는 하모니카 애드립에 관객들의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8년 만의 내한공연을 연 밥 딜런은 사진 촬영을 허하지 않았다. 201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공연 당시의 모습. 사진/뉴시스·AP
 
회색 빛 곱슬머리와 거친 음색으로 툭툭 뱉어내는 단어들, 음정이나 박자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함은 딜런의 몇 안 되는 표식이었다. 그는 드럼과 바이올린, 콘트라베이스, 기타를 중심으로 한 편곡으로 원곡을 숨바꼭질하듯 변주하고 있었고, 관객들은 그가 들려주는 노랫말에 숨 죽여 귀 기울였다.
 
팝 가수 아델이 리메이크한 ‘메이크 유 필 마이 러브(Make You Feel My Love)’의 경우 원곡과 크게 다르지 않은 선율이 울려 퍼지자 객석에선 동요가 일기도 했다.
 
한 시간 반쯤 지났을 무렵, 딜런은 벌떡 일어나는 파격을 감행하기도 했다. 마이크 스탠드를 45도 각도로 기울여 잡은 그는 이브 몽땅의 샹송 ‘오텀 리브스(Autum Leaves)’를 본인의 방식대로 불렀다. 세레나데를 들려주 듯이 부르는 그의 변칙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곡을 마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앉아 3곡을 내리 불렀고, 밴드와 9시50분 쯤 무대를 내려갔다.
 
2011년 중국 베이징에서 밴드와 함께 공연하는 밥 딜런. 사진/뉴시스·신화
 
5분여간 앵콜 요청과 박수 소리가 마르지 않을 때쯤,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과 함께 그는 시를 노래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봐야 사람은 진정한 인생을 깨닫게 될까”
 
클래식컬 하게 편곡된 ‘블로잉 인더 윈드(Blowin' in the Wind)’의 음율에서 그는 거칠고도 자유롭게 삶과 세상을 읊었다. 잠시 동명의 자서전에서 읽은 시적이고 열정적이며 인간답던 딜런이 스쳤다.
 
자동차 뒤 범퍼를 잡고 눈 위를 달리는 ‘범퍼 잡기’ 놀이를 하는 어린이가, 21살의 나이에 뮤지션의 꿈을 안고 뉴욕을 찾던 무명가수가, 사회 전면에 나서라고 외치는 반전시위대로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해 총까지 준비하던 가장이 그 노랫말 안에 모두 있었다.
 
1966년 프랑스 파리에서 기자회견 하던 젊은 시절의 밥 딜런. 사진/뉴시스·AP
 
10시가 조금 넘어 마지막 앵콜 곡 ‘발라드 오브 어 씬 맨(Ballad of a Thin Man)’이 끝났다. 그는 밴드와 함께 무대 앞으로 나와 잠시 서서 객석을 바라보는 것으로 작별인사를 대신했다.
 
‘라이크 어 롤링 스톤(Like a Rolling Stone)’,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g’ On Heaven’s Door)’ 같은 명곡들이나 활발한 소통을 기대했던 이들이라면 줄창 노래만 부르다 간 그에게 다소 아쉬움을 느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 것은 밥 딜런 만의 스타일이었고, 그가 살아온 세월이었다. 딜런은 스스로가 축조한 ‘예술 세계’에서 자신 만의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놓고 있었다.
 
시간을 천천히 두고 곱씹다 보면 그가 2시간 내내 어둠과 고요 속에서 ’귀를 위한 시’를 흘린 이유를 알게 될지 모를 일이다. 딜런이기에, 딜런이라서 가능했던 레퍼토리였는지도 모른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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