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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권일

‘죽은 청년들의 사회’, 누구의 책임인가

2018-10-23 14:29

조회수 :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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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청년이 있다. 아니 있었다. 고 김선웅(20)이다. 제주한라대 1년생이었다. 그는 새벽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중 차량에 치었다. 겨레의 하늘이 처음 열린날이었다. 개천절 새벽 3시였다. 그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중 무거운 손수레를 끌고 힘들게 오르막길을 오르던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의 수레를 같이 끌고, 함께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러다 차량에 치였다.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중태였다. 뇌사 판정을 받았다. 슬픔에 빠진 가족들이 놀라운 결심을 했다. 고인의 약속대로 장기 기증에 선선히 동의했다. 
 
한글날, 그는 환자 7명에게 새 생명을 나누어 주었다. 그의 한 생을 그렇게 마감했다. 새벽 거친 바람에 꽃 한송이가 졌다. 음악을 좋아하던 청년 김선웅의 고귀한 죽음에 LG복지재단이 뒤늦게 의인상을 주었다. 그는 고귀한 죽음을 맞았다. 개천절에 겨레의 제단에 목숨을 던진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하지만 막을 수 있었던, 참으로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여기 또 한 청년이 있다. 서울 강서구의 한 PC방에서 살해당한 신모(21)군. 그 역시 아르바이트생이었다. 모델지망생이었다. 키 193cm에 88kg의 준수한 외모였다. 취업을 앞둔 아르바이트 마지막날, 그는 죽고 말았다.       
 
살인용의자 김성수(31)는 PC방 앉을 자리에 담배꽁초가 있어 신 군에게 치워달라고 했다고 했다. 화장실에 갔다 왔는데도 그대로여서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신군과 말다툼이 벌어졌다. 파출소에서 경찰이 출동했다. 경찰이 가고 난뒤 김성수는 신군에게 게임 비용 1000원을 환불해달라고 했다. 환불이 어렵다고 하자 “그 난리를 치고 돈까지 받지 못해 억울하고 분했다”고 했다.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르면서 죽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가서 흉기를 가져온 그는 피해자의 얼굴을 향해 무자비하게 칼을 휘둘렀다. 학창시절, 이지매당한 상처가, 아침 일찍부터 PC방을 전전해야 했던 소외감이 무고한 피해자의 얼굴에 칼질로 쏟아졌다. 무시받은 분노를 그렇게 고인에게 대놓고 분풀이했다. 잔혹한 범죄가 끝난 뒤에야 그도 자신의 행위에 놀랐다. 그의 오른 손은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PC방 엘리베이터 앞은 신군이 쏟아낸 핏물이 가득 흘렀다. 
  
신군을 응급실에서 치료한 이대목동병원 의사 남궁인은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그는 침대가 모자랄 정도로 키가 크고 체격이 좋았다. 검은 티셔츠와 청바지에 더 이상 묻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피투성이였다. 그를 본 모든 의료진은 전부 뛰어나갔다. 상처를 파악하기 위해 옷을 탈의하고 붕대를 풀었다.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잘생기고 훤칠한 얼굴이었지만 찰나의 인상이었다. 파악해야 할 것은 그게 아니었다. 상처가 너무 많았다. 게다가 복부와 흉부에는 한 개도 없었고, 모든 상처는 목과 얼굴, 칼을 막기 위했던 손에 있었다.....하나하나가 형태를 파괴할 정도로 깊었다. 피범벅을 닦아내자 얼굴에만 칼자국이 삼 십 개 정도 보였다.....보통 사람이 사람을 찔러도 칼을 사람의 몸으로 전부 넣지 않는다. 인간이 인간에게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모든 상처는 칼이 뼈에 닿고서야 멈췄다.... 미친 새끼라고 생각했다. 어떤 일인지는 모르지만, 어쨌건 미친 새끼라고 생각했다. 피를 막으면서 솔직히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평생을 둔 뿌리 깊은 원한 없이 이런 짓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스무 살 청년이 도대체 누구에게 이런 원한을 진단 말인가.” 
 
이른 아침 몰아친 난데없는 광풍에 꽃 한송이가 졌다. 비명횡사였다. 순간적 분노를 참지못해 벌어진 참사였다. 국민적 공분에 청와대게시판에는 80만명 넘는 국민청원이 이어졌고, 가해자 김성수의 이름과 얼굴이 공개되었다. 
 
           강서 PC방 살해용의자 김성수 / 사진 뉴시스 
 
대한민국이 어렵게 키운 꽃다운 청년들이 채 피지도 못하고 죽어가고 있다. 두 청년은 공교롭게도 청년실업난의 이 고통의 시기에 자기 힘으로 돈을 벌던, 아르바이트를 하던 젊은이들이었다. 그런데 한 순간 운전자 실수로,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한 분노조절 장애자의 무참한 범죄행위로 덧없이 죽고 말았다. 두 청년을 누가 죽였는가. 가만히, 우리 사회를 조용히 들여다보자. 가해자만 피해자를 죽인 게 아니다. 범죄에 취약한 안전하지 못한 나라의 법규가, 우리 사회의 냉혹함이, 앞만 보고 달려온 무한경쟁이, 따뜻함과 배려없는 우리의 거친 마음이 그들을 죽게 한게 아닐까. 
도산 안창호는 조국의 미래는 청년의 눈빛에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청년들이 덧없이 죽어간다. 도시에서, PC방에서, 강남역 화장실에서 허무하게 죽임을 당하고 있다. “나도 그런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청년들을, 여성들을, 거리의 시위대에 너도나도 합류하게 만든다. 우리는 묻는다. 대한민국은 살만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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