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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미쓰비시, 근로정신대에 1억~1억5천만원씩 배상"(종합)

"한·일 청구권협정에 개인 위자료 청구 포함 안돼…소멸시효 주장도 부당"

2018-11-29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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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일본 전범기업 미쓰비시는 일제 강점기 당시 강제 동원돼 노역한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여성근로정신대 피해자에 대한 첫 판결이다.
 
대법원 3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29일 여자근로정신 피해자인 양금덕(89) 할머니와 사망피해자 유족 등 5명의 유족이 미쓰비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피고는 원고들에게 각각 1억원에서 1억5000만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를 동원한 미쓰비시중공업이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할 책임이 있다고 대법원이 최종 결론을 내린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강제동원 피해자 김성주 할머니를 비롯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만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번 사건은 양 할머니 등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에 대해 갖는 손해배상 청구권이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포함되는지 여부가 쟁점이었다. 앞서 대법원전원합의체가 지난 10월30일 원고승소 판결한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 사건과 같다.
 
재판부는 "원고 등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으로서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미쓰비시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에 대해서도 "피고가 이 사건에서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해 원고들에 대한 채무 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고,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양 할머니 등은 1944년 5월 다니던 국민학교 교장이나 담임교사, 이웃조 애국반 반장으로부터 근로정신대에 지원하면 공부도 시켜주고 돈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지원했다. 이 때 양 할머니 등의 나이는 13~14세였다. 가족들이 말렸지만, 지원을 권유한 교장 등은 김 할머니 등이 지원하지 않으면 가족을 가만 안 두겠다며 협박했다. 그달 말쯤 다른 지역에서 온 근로정신대원들과 모여 함께 열차로 여수까지 간 양 할머니 등은 배를 타고 일본 시모노세키항까지 이동했다. 도착해서는 다시 기차를 타고 나고야에 있는 옛 미쓰비시 나고야항공기 제작소 도토쿠 공장으로 갔다. 
 
할머니들은 바로 비행기 생산 강제노역에 투입됐다. 일 하는 동안에는 곁을 보거나 얘기도 할 수 없었고 화장실도 허가를 받아야만 갈 수 있었다. 일본인 반장은 근로정신대원들을 수시로 폭행했다. 같이 끌려간 피해자들 중 김성주 할머니는 작업 도중 절단기에 왼쪽 집게손가락이 잘렸지만 치료를 받지 못했다. 작업은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계속됐다. 작업을 마치면 기숙사로 돌아갔으나  4평 정도의 좁은 방에서 6~8명이 함께 생활해야 했다. 식사도 형편없었다. 물론 교육이나 임금은 전혀 받지 못했다.
 
1944년 12월 동남해 지진이 발생했다. 김순례 할머니가 무너지는 공장 건물에 깔려 사망했고, 양 할머니는 쇠막대기에 옆구리를 관통당했다. 지진이 지나간 뒤 연합군 공습이 심해지면서 미쓰비시는 나고야공장 중 본부와 조립·부품 제작 부문을 도마야현에 있는 다이몽 공장으로 옮겼다. 생존 근로정신대원들도 같이 이동했다. 그 후 1년여 만인 1945년, 일본이 패망하면서야 피해 할머니들은 한국으로 귀국했다.
 
김 할머니 등은 귀국 후에도 일본에서 강제노역 당한 사실을 숨겨야 했다. 주변에서 근로정신대원을 위안부로 오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혼 뒤 이 사실을 알게 된 남편들은 피해 할머니들을 지속적으로 폭행하거나 가출했고, 혼인생활이 상당기간 유지된 경우도 결국에는 이혼에 이르렀다.   
 
양 할머니 등 피해 근로정신대원과 사망 피해자 유족들은 1993년 일본 나고야에서 미쓰비시를 상대로 1인당 3000만엔씩 지급하라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그러나 2008년 11월10일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패소가 확정됐다. 피해자들은 다시 2012년 10월 광주지법에서 미쓰비시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같은 해 5월에 대법원이 신일철주금 피해자들의 청구를 인용한 것에 대한 기대였다. 
 
1심은 양 할머니 등의 손을 들어주면서 손해배상금을 8000만원에서 1억5000만원까지 인정했다. 2심은 "정신대와 위안부 혼동에 따른 정신적 피해까지 고려해야 한다"면서 "피고는 원고들에게 1억208만원에서 1억5000만원까지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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