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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훈

‘수상’한 음악감독 A씨 이야기②-희망고문

2019-11-08 11:12

조회수 :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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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의 ‘음안 안하기’ 및 취재원들의 이야기를 참고해 작성하는 글입니다.
 
작곡가 C는 A의 손아귀에서 탈출할 결심을 합니다. 남 몰래 투자자를 만났고 노래를 만들어 우여곡절 끝에 아이돌 그룹을 제작합니다. 이 그룹의 데뷔 무대는 KBS2 ‘뮤직뱅크’였습니다. 이 사실을 안 A가 가만히 있을 리 없죠. KBS의 음악감독이었던 A는 이 아이돌 그룹의 무대를 망쳐 놓았습니다. C의 꿈은 물거품이 됐습니다. 결국 쿵엔터테인먼트를 퇴사하고 작곡가의 꿈도 접었습니다. 그 자리는 D가 대신했습니다.
 
D는 C가 강의에 나가서 섭외했던 20여 명의 유령 작곡가가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D는 홍대에서 밴드 활동을 했었고, 작곡가가 되기 위해 학교에서 실용음악을 공부하고 있었죠. “니 음악을 유명한 방송 프로그램에 내 보내줄 게”라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한마디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에는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 있습니다. 바로 ‘돈’입니다. 얼마를 주겠다는 말은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무급에 저작권 수입을 5대 5로 나눠야 했습니다. D는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당장은 투 잡을 뛰어야 하지만, 조금 참다 보면 회사 없이 혼자서도 방송 음악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으니까요.
 
무급, 저작권료는 20만원 남짓. 새로운 사운드와 프로그램을 사야 하는 작곡가들에게는 터무니 없게 적은 돈입니다. D는 호프집, 편의점 등 할 수 있는 일은 다했습니다. 한 동료는 국토해양부에서 지질검사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습니다. 드릴로 땅을 파야 하는 일이었죠. “낮에 드릴로 땅을 파니까 손이 너무 떨려서 피아노를 못 치겠더라. 그래서 양 손을 포개서 작업하고 있다”는 동료의 푸념은 한 편의 블랙 코미디였습니다.
 
D는 A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1년이 넘는 근무 기간동안 A를 본 적이 없었고, 이 착취 시스템을 한 사람이 만들었을 리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A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해도 그는 아무 것도 모른 채 방송국에 음악을 넣기 위해 영업을 뛰는 선량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진짜 나쁜 사람은 A와 우리 사이에서 돈을 가로채는 중간 관리자라고 말이죠.
 
하지만 D는 어느 날 A에게 문자를 받게 됩니다. 노래에 대한 피드백이었죠.
“이 노래 조금 더 ‘샤랄라’ 하게 바꿔봐.”
D는 이 이상한 피드백의 정체가 무엇인지 고민 끝에 피치카토 스트링을 손봅니다.
“조금 더 야 하게.”
상상의 나래를 펼친 끝에 클라리넷 노트를 두개 수정했습니다.
“은하수처럼 삘릴리를 추가”
윈드 차임을 추가했습니다.
“조금 더 쌈마이하게.”
D는 화가 치밀었습니다. 이렇게 음악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을 대표라고, 그리고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요. D는 A를 시험해보기로 하고, 수정 전 원곡을 보내줬습니다.
“잘 하네. 진작 이렇게 하지 그랬어.”
A의 답변이었습니다.
 
회사 회식이 있던 어느 날. 회식 장소 앞에 BMW차량 한 대가 등장합니다. 20명의 유령 작곡가와 A가 처음으로 대면하는 순간이었습니다. A는 특별한 건배를 제안합니다. 모두 잔에 쏘맥을 따르고, 잔으로 테이블을 칠 때마다 ‘쿵’이라고 반복적으로 외치며, ‘쿵’ 소리는 점점 커져 10번째에 가장 큰 소리를 낼 때 모두 함께 원샷을 하는 것이었죠.
 
쏘맥을 한 잔 들이켠 A는 작곡가들에게 말합니다. “자네들 수고가 많네. 이번 달부터 자네들에게 월급을 주도록 하지.” 이날부터 20명의 유령 작곡가들은 매달 30만원이라는 월급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쿵엔터테인먼트는 탈세를 위해 작곡가들의 연봉이 5000만원이라고 신고했습니다. 음악 하는 사람들이 주로 혼자 작업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니까, 세상 물정에 어둡거든요. 작곡가들은 원래 건강보험료라는 게 그렇게 많이 내야 하는 줄로만 알았다고 합니다.
 
JTBC ‘송곳’ OST를 작업했던 게 이때 즈음이었습니다. A는 음악을 납품하게 될 작품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송곳’이라는 작품이 쿵엔터테인먼트에 어떤 균열을 만들게 될지 알지 못했습니다. “노조에 우호적인 프랑스 회사가 왜 한국에서는 노조를 거부하냐”는 질문에 대한 구고신의 답변이 유행이었던 것 기억하시나요. ‘송곳’ OST를 만들던 작곡가들 사이에서도 이 대사가 유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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