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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중고차사기단, 범죄단체죄 적용" 첫 판결

2020-08-20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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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중고자동차를 헐값에 판다고 광고해놓고 구매자들이 찾아오면 차에 흠이 있다고 겁을 줘 다른 차를 비싸게 팔아 넘긴 사기범 일당에게 대법원이 범죄집단죄를 적용해 유죄 취지로 판결했다. 2013년 형법에 범죄집단죄가 추가된 이후 최초로 나온 대법원 판결로써, 현재 진행 중인 'n번방 사건 등' 디지털성범죄 사범 재판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20일 범죄단체조직·활동 및 사기, 자동차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전모씨 등 22명에 대한 상고심에서, 범죄단체조직죄의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다시 판단하라며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이에 따라 전씨 등 21명은 파기환송심에서 더 중한 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대법원 청사 전경. 사진/대법원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형법 114조에서 정한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집단’이란 특정 다수인이 사형, 무기 또는 장기 4년 이상의 범죄를 수행한다는 공동목적 아래 구성원들이 정해진 역할분담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범죄를 반복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조직체계를 갖춘 계속적인 결합체를 의미"한다"면서 "'범죄단체'에서 요구되는 '최소한의 통솔체계'를 갖출 필요는 없지만, 범죄의 계획과 실행을 용이하게 할 정도의 조직적 구조를 갖추면 성립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사건에서 외부사무실은 특정 다수인이 사기범행을 수행한다는 공동목적 아래 구성원들이 대표, 팀장, 출동조, 전화상담원 등 정해진 역할분담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사기범행을 반복적으로 실행하는 체계를 갖춘 결합체, 즉 형법 114조의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집단'에 해당한다"면서 "이와 달리 외부사무실이 범죄집단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에서 무죄로 판단한 원심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법원에 따르면, 전씨 등은 인천 시내에 이른바 '외부사무실'을 차려놓고 인터넷에 중고차 판매 광고를 올린 뒤 이를 보고 찾아오는 구매자들을 속여 중고차를 실제 가격보다 높은 값에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구매자가 특정 자동차를 지목하면 광고에 올린 가격으로 계약을 체결한 직후 있지도 않은 흠을 잡아 해당 구매자에게만 알려준다는 식으로 겁을 줘 비슷한 종류의 다른 차량을 비싸게 팔았다. 광고는 미끼였던 셈이다. 
 
경찰과 검찰 조사결과 이들은 전씨를 외무사무실 대표로, 팀장, 딜러, TM 등의 역할을 분배해 이른바 '뜯플(뜯고 플레이)', '쌩플(쌩 플레이) 수법으로 범죄를 저질렀다. 조직원들은 '뜯풀' 등 범죄수법을 매뉴얼을 통한 이론과 함께 실전을 통해 익혔고, 전씨는 매일 실적 체크를 통해 조직원을 관리했다. 탈퇴하려는 조직원이 있으면 다시는 중고차 관련일을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등 협박했다.
 
검찰은 '범죄단체죄'를 적용했지만, 1심은 사기 또는 사기방조 등 혐의만 유죄로 인정했다. 결속 상태가 비교적 유연하고 느슨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대표 전씨에게는 징역 1년 4개월이, 나머지 조직원들에게는 집행유예와 벌금형이 선고됐다. 이에 검찰은 예비적으로 범죄집단죄를 적용해 항소했으나 항소심 역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검찰이 상고했다.
 
형법 114조(범죄단체 등의 조직)는 "사형, 무기 또는 장기 4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 또는 '집단'을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 또는 그 구성원으로 활동한 사람은 그 목적한 죄에 정한 형으로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여기에서의 단체에 대해 '특정다수인이 일정한 범죄를 수행한다는 공동목적 아래 이루어진 계속적인 결합체로서 그 단체를 주도하는 최소한의 통솔체계를 갖추고 있을 것'을 요구하지만 '집단'에 대해서는 '일정한 체계 내지 구조'를 갖고 있으면 성립하는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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