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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설경구 조차 ‘숨 막히게’ 했던 ‘킹메이커’ 속 그 분
“원래 배역 이름 ‘김대중’…도저히 못하겠다 감독에게 출연 거절했다”
“목포 연설 장면, 촬영 두 달 전부터 스트레스…정말 힘들었던 촬영”
2022-01-27 01:02:00 2022-01-27 01:02: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연기력에 대해서 결단코 의문을 갖게 하는 배우가 아닌 설경구에겐 이 작품 속 이 배역은 ?’가 필요 없었다. ‘누구인지가 중요했다. 보통 그리고 일반적으로 배우들은 ?’가 필요하다. 그 인물이 왜 그랬고, 왜 그런 행동을 하고,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배우들은 ?’를 통해 인물을 창조해 내는 동기를 찾게 된다. 그런데 설경구에게 이 배역만큼은 그게 안됐다. 이 영화보다 늦게 촬영했지만 먼저 개봉한 자산어보에서도 실존 인물 정약전을 연기한 바 있다. 조선시대 최고 실학자이자 천재였던 정약용의 친형. 어쩌면 그보다 더 뛰어난 천재였던 정약전. 그때도 설경구는 ?’가 필요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 영화 킹메이커에선 그게 안됐다. 이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선 ?’란 당위성은 사실 큰 의미가 없었다. 너무도 거대했던 그 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연기해야 했다. 도저히 못하겠다고 거절했다. 오죽했으면 설경구가 그랬을까 싶었다. 결국 이름을 바꿨다. ‘김운범이란 가상의 인물. 그럼에도 킹메이커속 김운범은 고 김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설경구는 이번엔 누구인지가 그렇게 중요했다. 이런 이유에서였다.
 
배우 설경구.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설경구가 연기한 킹메이커김운범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인물이다. 사실 모티브정도가 아니었다. 원래 설경구가 전달 받은 첫 시나리오에는 배역 이름이 김대중이라고 적혀 있었단다. 깜짝 놀라는 정도가 아니었다. 설경구는 친분이 두터운 변성현 감독이 미친 것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고. 눈앞이 깜깜하고 머리가 어지러웠단다.
 
숨이 막힐 정도였어요. ‘나 도저히 못하겠다라면서 감독에게 이름 바꾸자고 졸랐어요. 사실 이름 바꾸기 전부터 두 번 정도 거절했어요. 도저히 못하겠더라고요. 배역의 거대함도 있었지만 사실 배우로서 뭘 할 게 거의 없었어요. 주도적으로 뭘 끌고는 가지만 너무 크게 자리를 지키는 인물이라 오히려 평면적으로 보였죠. 그래도 어찌어찌 해서 촬영을 끝냈죠. 시사회 때 김 전 대통령님 차남인 김홍업 이사장님이 가족분들과 함께 오셨는데 눈을 못 마주치겠더라고요(웃음)”
 
배우 설경구.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연기력에선 대한민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설경구다. 그런 그가 김운범캐릭터에 경기를 일으킬 정도였단다. 그래서 캐릭터를 구축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고. 고 김 전 대통령은 영화에서도 그리고 방송에서도 너무도 많은 연기자가 연기를 해왔던 배역이다. 그래서 섣불리 다가섰다간 그저 모사를 하는 수준에 머물 것 같아서 고민이 정말 많았단다.
 
“‘자산어보킹메이커보다 먼저 찍었어요. 두 작품 속 인물 모두 실존 인물이죠. 근데 자산어보정약전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았기에 시나리오와 이준익 감독 디렉션과 연출에 맡겨서 움직이면 됐어요. 근데 김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중심이잖아요. 너무 거대한 분이라 뭘 해도 모사수준에서 벗어날 것 같지 않았죠. 또 너무 특징적이셔서. 감독과 의견 교환을 정말 많이 했어요. 그 고민의 결과가 영화 속 김운범이에요.”
 
배우 설경구.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그가 연기한 김운범은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정치 거인이다. 후에 대한민국 대통령까지 오른다. 판을 주도하고 판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 인물이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선 한 발 빠져 나가 있어야 한다. 이 영화 제목은 킹메이커. 왕을 만들어 주는 사람이 주인공인 셈이다. 그의 반대 편에 있는 이선균이 연기한 서창대가 곧 킹메이커. 결과적으로 설경구는 판을 깔고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했다.
 
“영화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김운범은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 인물이잖아요. 흩어진 의견들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서 있어야 하는. 제가 중심으로 서 있으면 그 주변에서 서창대인 이선균이 놀아야 하잖아요. 그 역할에 충실했어요. 사실 그럼에도 김운범’, 정말 쉽진 않았어요. 스트레스 많았죠. 정신적으로 물리적으로 정말 스트레스 많이 받았어요. 이런 스트레스 진짜 오랜만이었어요.”
 
그가 말한 스트레스는 영화 속 몇 차례 등장한 김운범의 연설 장면 때문이다. 설경구를 잘 아는 주변 사람들이라면 연기이기에 그럴 수 있지 연기를 안 할 때의 설경구는 결코 다른 사람 앞에 나서서 분위기를 주도하거나 큰 소리를 내는 인물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래서 킹메이커속 연설 장면은 연기이지만 설경구에겐 너무 큰 스트레스였단다.
 
배우 설경구.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4번인가 5번인가 연설하는 장면이 나와요. 특히 영화에서 목포역 앞 연설 장면은 감독이 진짜 중요한 장면이라고 해서 연습을 정말 많이 했어요. 대충 두 달 전부터 스트레스가 밀려오는데(웃음). 그 장면이 생각보다 정말 많은 걸 고려해야 했어요. CG가 어떻게 들어갈지, 카메라가 언제 들어오고 언제 나가는지. 그 타이밍에 맞춰서 연설 장면을 시작과 끝을 맺어야 하고. 무엇보다 그 장면 찍을 때 정말 더웠어요. 상상을 초월하게 더웠어요.”
 
설경구는 킹메이커서창대처럼 자신의 배우 인생에서 도움을 주는 조력자가 있을까 싶었다. 언제나 자신의 옆에서 도움을 주는 조력자가 될 수도 있지만 배우 설경구로서 어떤 영감과 도움을 주는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 있을까 싶었다. 이번 작품을 한정적으로 그런 존재를 묻는다면 설경구는 누구 한 명을 꼽을 수는 없다. 모든 동료가 내겐 영감을 주는 좋은 조력자들이다고 전했다.
 
모든 동료들 그리고 모든 스태프들이 나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영감을 주며 작업을 하는 것 아닐까 싶어요. 촬영장에 도착하면 모든 스태프들은 오롯이 배우들만 기다리고 있어요. 배우들을 위해 조명을 치고 배우들의 얼굴과 몸을 담기 위해 카메라 앵글을 잡아 주고. 배우가 어떤 의견을 내면 그걸 듣고 어떻게 해서든 그 의견을 맞춰 주려는 스태프들. 그 모든 스태프들에게 난 판타지였어요. 반대로 날 판타지로 만들어 준 모든 스태프와 동료들이 내겐 판타지였죠.”
 
배우 설경구.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설경구는 변성현 감독과 전작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에 이어 킹메이커그리고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도 함께 하고 있다. 어느덧 변성현 페르소나라고 불리고 있다. 그는 앞으로 변성현 감독에게 자신과 함께 할 생각이면 이렇게 하라고 약간의 협박까지 했다고 웃는다. 그만큼 변 감독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듬뿍 담긴 얘기였다.
 
변성현 감독은 다음 작품을 궁금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어요. ‘킹메이커도 실제 현대사에 존재했던 얘기인데 이걸 어떻게 풀어갈까 싶었죠. 지금 함께 촬영하는 길복순도 되게 궁금했어요. 분량은 그렇게 많지 않은 데 만족합니다(웃음). 제가 변 감독에게 앞으로 나와 함께 하려면 내 나이 대 배역은 무조건 나로 해야 한다. 안 그럼 나와 다시는 못한다라고 협박을 해 놨죠. 하하하. 조만간 좋은 작품으로 또 인사 드리겠습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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