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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석의 재계시각)포스코와 아이폰…9년만에 뒤바뀐 풍경
2018-10-21 08:00:00 2018-10-21 08:00:00
[뉴스토마토 채명석 기자] 9년 전의 일이다. 당시 포스코 수장에 오른 정준양 회장은 모바일 오피스 확산을 위해 전 직원들에게 스마트폰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신세계이동통신(포스코의 자회사였다)을 사들였던 SK텔레콤과 제휴를 맺고 모바일 오피스 시스템을 구축, 캐나다 림(RIM)의 블랙베리폰 1300여대를 제공한 포스코는 그해 6월 현장근무자 2700명에게 삼성전자의 갤럭시S를 지급했다. 이후 지급 대상을 전 임직원으로 확대했는데, 특정 이동통신사 또는 특정 스마트폰만 제공하는 것은 직원들의 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일자 KT가 들여오기로 한 아이폰4도 지급하기로 했다.
 
지난 9월12일(현지시간) 필 쉴러 애플 수석 부사장이 미국 캘리포니아 주 쿠퍼티노 스티브 잡스 극장에서 열리고 있는 신형 아이폰 공개 행사에서 아이폰 XS와 XS맥스를 소개하고 있다. 포스코는 올해 처음으로 아이폰 부품 공급사 명단에 이름을 올렸는데, 제품 옆면에 적용된 금속소재를, 계열사인 포스코켐텍은 배터리에 사용되는 양음극재를 공급한다. 사진/뉴시스
 
개별 회사가 임직원들에게 스마트폰을 지급하는 게 왜 이슈가 됐는지는 당시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 아이폰의 대성공에 긴장한 삼성전자는 국내 최초 스마트폰인 옴니아를 내놨지만 시장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다. LG전자는 맥킨지 컨설팅의 잘못된 보고서를 믿고 피처폰에만 매달려 있었다. 절치부심하던 삼성전자는 아이폰이 국내에 들어오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 새 제품을 만들어 대응 체계를 갖춰야 했다. 그래서 내놓은 게 갤럭시S였다. 문제는 소비자들이 스마트폰으로 바꿔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는 것. 당시만 해도 모바일 인터넷이 매력적이지 않았고, 앱 생태계에 대해서도 무지했다.
 
삼성전자는 기업용(B2B)시장을 치고 들어왔다. 이통사와 손잡고 대기업 임직원들에게 갤럭시S를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대기업은 물론 중견·중소기업, 심지어 언론사들에까지 스마트폰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외환위기(IMF) 당시 펼쳐졌던 금 모으기 운동처럼 애사심, 애국심을 발휘해야 한다는 반강제적 정서가 더해지면서 임직원들은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을 구입해야 했다. 한국 스마트폰 시장은 이렇게 태동했다.
 
이런 가운데 포스코가 전 직원들에게 스마트폰을 제공하겠다고 했으니, 이통사나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본사 직원 수만 2만명에 육박했고, 그룹 전체로 보면 훨씬 많은 수의 계열사와 협력사 임직원들이 있었던 재계 6위 포스코는 엄청난 시장이었다. 그런 포스코가 임직원들에게 갤럭시S와 아이폰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으니 이슈가 되는 건 당연했다. 비슷한 시기 얼리 어답터를 자처하며 아이폰을 국내에 소개한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전 임직원들에게 이를 지급하겠다고 했다가 삼성전자와 SK텔레콤 등으로부터 항의를 받아 철회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포스코 임직원의 선택 결과는 재계 전체가 주목하는 사안이 됐다.
 
뜻하지 않게 부담이 컸는지 한 달여 신청기간이 지난 뒤 포스코는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당시 취재 결과, 90% 넘는 임직원들이 갤럭시S를 선택한 것으로 확인됐다. 애사심, 애국심 마케팅의 승리였다. 재미있는 점은 아이폰을 선택한 극소수의 임직원들은 눈치를 보느라 사무실에서 폰을 꺼내지도 못하는 등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야만 했다는 것. 포스코 홍보실에서 유일하게 아이폰을 선택한 소신 있는(?) 직원도 기자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전화가 오면 나가서 몰래 받는 웃지 못 할 일도 목격했다.
 
그런 포스코가 올해 아이폰 부품 공급업체 명단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아이폰X 등의 제품 옆면에 적용하는 금속소재가 포스코의 제품이다. 계열사인 포스코켐텍도 아이폰 배터리에 사용되는 양음극재를 공급한다. 애플과의 비밀유지계약 때문에 공식적으로 밝히진 못하고 있지만, 이미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무엇보다 임직원들은 이제 고객이 된 애플의 아이폰을 당당하게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9년 만에 바뀐 풍경이다.
 
채명석 기자 oric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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