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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회장님, 진심어린 사과 그렇게 어렵나요?
2018-10-19 11:19:11 2018-10-19 12:11:13
순간 기자들의 발걸음이 한 사람에게로 향했다. 눈과 귀도 한 사람으로 쏠렸다. 18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제30차 한미 재계회의'에서 벌어진 풍경이다. 기자들이 쫓은 이는 조양호 한진 회장이다. 이날 조 회장은 한미 재계회의에 한국 측 위원장으로 참석했다. 기자들이 조 회장을 기다린 것은 한국 재계를 대표해 회의에 참석한 그의 연설을 기대해서가 아니었다. 지난 15일 검찰이 발표한 한진 총수일가 갑질 의혹 수사결과에 대한 소감과 입장을 듣기 위해서였다.
 
앞서 서울남부지검은 대한항공 항공기 장비와 기내면세품 구입을 하는 과정에서 일감 몰아주기로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 등으로 조 회장을 불구속 기소키로 하고, 이른바 '물컵 갑질' 혐의로 조사를 받아 온 셋째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에 대해서는 '공소권 없음'으로 무혐의 처분했다.  
 
조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한 첫 번째 시도는 그가 회의실에 들어설 때 이뤄졌다. 그는 "좋은 날 그런 질문을 굳이"라며 자리를 벗어났다. 조 회장이 오찬을 마치고 나올 때 두 번째 질문이 있었다. "검찰 결과에 대해 국민께 하실 말씀 없나요?" 그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멈추더니 돌아섰다. 한마디는 해야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번 한미 재계회의는 한미 공동으로 북한 투자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주요 기업인들이 양국의 우호를 다지고 통상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검찰 수사결과에 대한 입장을 묻는 게 다소 실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조 회장은 지난 4월 물컵 갑질 이후 감춰졌던 가족의 온갖 비리와 일탈이 사회적 문제로 비화됐음에도 이날까지 제대로 된 사과와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서면으로 된 사과는 있었다) 자신들의 갑질 횡포로 상처를 입었을 피해자들, 별안간 면허 취소 위기에 몰리며 실직을 걱정한 진에어 직원들과 그 가족들, 회사의 보복 두려움에도 촛불을 들고 광장에 설 수밖에 없었던 대한항공 직원들 그리고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재벌의 일탈에 분노한 국민들까지, 그 누구도 당사자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지 못했다.
 
더구나 이날은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 이후 그의 첫 대외일정이었다. 때문에 기자들은 상처 입었을 모두를 대신해 조 회장의 사과를 마지막으로 기대했다. 돌아온 것은 동문서답. 조 회장은 한미 관계가 중요하다면서 미국 기업인들 앞에서는 수사를 늘어놨다. 차라리 조 회장에 대한 질문을 바꿔야 했을까. "국민께 하실 말씀 없나요?"가 아닌 "조양호 회장님, 진심어린 사과 그렇게 어렵나요?"로 말이다.
 
최병호 산업1부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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