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영화 ‘기생충’의 흥행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영광은 이미 과거라고 하지만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사실 이 영화 개봉 전 그리고 개봉 후 관객들은 ‘연출 봉준호’ ‘주연 송강호’ ‘황금종려상’ 등 여러 타이틀에 흥미를 느끼며 관람을 선택했다. 그런데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이 있다. 출연 배우 목록에서 생경한 이름이 눈에 띈다. 흔한 이름이지만 누군지 사실 딱히 떠오르지 않는 이름이다. 얼굴을 봐도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대학로에서 활동하던 실력파 연극 배우 출신으로만 다들 알고 있을 듯싶다. 배우 장혜진. ‘기생충’에서 출연한 또 다른 배우 이선균과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1기 동기이다. 원래 배우였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개인적인 일로 10년의 공백기를 가졌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가 봉준호 감독과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단 사실이다. 한국영화 최고 걸작 중 한 편으로 꼽히는 ‘살인의 추억’에 출연 섭외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저 오디션 제안이 아닌 ‘출연 제안’이었다. 물론 그 인연이 지금의 화려한 복귀로 이어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듯싶었다.
배우 장혜진. 사진/CJ엔터테인먼트
이달 초 ‘기생충’이 개봉과 동시에 흥행 질주를 펼치고 있던 시기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장혜진과 만났다. 낯선 이름이고 낯선 얼굴이다. 그럼에도 ‘기생충’의 강렬한 후광 효과 때문인지 장혜진의 얼굴이 의외로 낯설지 않아 보였다. 성격 또한 호탕했다. ‘기생충’의 화려한 결과 때문일 수도 있다. 장혜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결과에 좋은 영향을 받아 본인 역시 즐겁고 행복하단다. 물론 평소 성격이 너무도 활달하다고.
“하하하. 영화 속 ‘충숙’의 모습은 오히려 저의 실제 성격에서 많이 죽인 거에요. 전 진짜로 활달해요. 제가 낯선 분들이 많죠. 알죠. 연기는 1998년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으로 데뷔한 뒤 그 한 편을 찍고 그만 뒀었죠. 그리고 잠시 좀 긴 공백기를 갖고 있다가 독립영화에 출연하기 시작했는데 2015년 ‘우리들’이란 영화 속에 ‘엄마’역으로 잠깐 나왔는데 감독님이 그 모습에서 ‘충숙’을 보셨다고 하셔서 놀랐죠. 워낙 색깔도 다르고, 결정적으로 진짜 몇 장면 안나왔던 배역이에요. 하하하.”
사실 장혜진은 봉준호 감독과 인연이 이번에 처음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살인의 추억’에 출연 섭외를 받았었다. 그것도 봉준호 감독에게 직접 전화를 받아서 출연 의향을 받았었다고. 정말 놀랄 경험이다. 그때는 사실 봉준호 감독도 첫 작품인 ‘플란다스의 개’ 흥행 실패 이후 절치부심의 마음으로 준비했던 작품이라 유명 배우들의 출연 섭외를 하지 못할 시기였다.
배우 장혜진. 사진/CJ엔터테인먼트
“아마 그랬을 거에요(웃음). 그때 진짜로 감독님이 저한테 전화를 주셔서 출연 제안을 하셨어요. 근데 그때 제가 거절했어요. 하하하. 지금 생각하면 미쳤죠(웃음). 그런데 그때는 제가 연기를 안 할 시기였어요. 고향에 내려가서 진짜 완전 다른 일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살인의 추억’이 엄청 흥행했죠. 나중에 ‘기생충’ 때 그 시절 얘기를 말씀 드리니 감독님이 깜짝 놀라시다가 기억을 해 내시더라고요.”
그는 또 다른 거장 감독과의 인연도 전했다. 바로 이창동 감독이다. 대한민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두 거장 감독과의 인연에 사실 너무도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존재는 대중들에게 너무도 낯선 이미지였지만 이미 거장들의 눈에 그는 될 성 부른 떡잎이었던 듯싶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과 ‘시’에서 단역으로 출연한 바 있는 그는 이 감독의 데뷔작 ‘박하사탕’ 오디션을 보면서 이 감독과도 인연을 맺은 경험이 있다.
“제가 부산 출신인데 그때 부산 사투리 쓰는 배우들을 제작진이 찾아서 저도 주변의 추천으로 오디션을 봤죠. 당연히 그땐 떨어졌죠. 그리고 이후에 ‘밀양’ 오디션을 갔는데, ‘박하사탕’ 때 오디션에 사용된 대본을 주신 거에요. 그래서 ‘이거 박하사탕 때 오디션 대본 아닌가요?’ 했더니 감독님이 절 기억해 내셨죠. 그때 감독님이 ‘너 감정이 충만해 졌다. 연기 해도 되겠다’ 그러시는 데 너무 기분 좋았어요.”
배우 장혜진. 사진/CJ엔터테인먼트
그렇게 10년을 단역으로 영화계에서 종횡무진 활약했다. ‘기생충’으로 단 번에 주연 자리를 꿰찼다. 대한민국 최고 배우인 송강호와 부부 사이로 출연했다. 최우식 박소담 두 핫스타가 현재까지도 ‘어머니’라며 자신을 따른다. 가장 기분이 좋은 건 자신의 얼굴을 알리고 또 좋은 작품으로 연기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을 스스로 얻게 됐단 점이다.
“우선 ‘충숙’이란 이름부터 너무 마음에 들었죠. 정감 있잖아요. 거기에 송강호 선배와 부부라니. 얼마나 짜릿해요. 하하하. 나한테 이런 일도 일어나는 구나 싶었죠. 사람들이 알아보는 거? 그건 별로 상관 없어요. 하하하. 칸에서 공식 상영 이후 카메라가 전 몰라보고 지나치기도 했어요. 보셨죠(웃음). 살을 그렇게 찌웠다 뱄으니 하하하. 그냥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래요. 내가 민폐가 되면 안 된다. 그것 하나만 지키자. 다들 너무 배려를 해줘서 고마워요.”
워낙 밝고 에너지가 넘치는 기운을 뽐내기에 궁금해 진 점은 ‘기생충’ 속 상황과 충숙의 입장이 공감이 됐을까 싶었다. 당연히 배우이기에 공감이 돼야 연기가 나오고 또 그래서 지금의 결과물을 이끌어 냈지 싶지만 말이다. 장혜진은 이 질문에는 잠시 생각을 했다. 이미 학교 졸업 후 영화로 데뷔를 했지만 연기를 떠난 시간이 워낙 길었기 때문이다. 그 시기와 영화 속 ‘충숙’의 상황이 맞물린 듯싶었다.
배우 장혜진. 사진/CJ엔터테인먼트
“우선 삶의 가난은 모르겠지만 마음의 가난은 ‘충숙’보다 더 심했던 시기가 있었죠. 그래서 ‘기생충’의 상황과 인물의 상황이 이해가 됐어요. 충숙은 운동 선수 시절 전국체전 은메달까지 딴 유망주였지만 지금은 그렇게 살고 있고. 그렇게 살고 싶었을까요? 살다 보니 자꾸 꼬이고. 주어진 상황이 가난하지 삶까지 가난하고 싶진 않았겠죠. 어떻게 해서든 가족을 지켜야 하고. 상황에 매몰되면 안 된다 싶었겠죠. 짜파구리 장면에서도 제가 실제로 그랬어요. ‘이걸 맛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에만 진짜로 집중했으니.”
장혜진은 실제로 띠동갑 자녀를 둔 엄마이기도 하다. 남편은 아내의 이런 상황이 대단한 것인지를 잘 알지 못하는 정말 완벽한 일반인이라고. 큰 아이도 그저 ‘영화 재미있더라’는 평을 전하며 엄마의 일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단다. 이제 네 살은 둘째가 조금은 마음에 걸리지만 너무도 하고 싶던 연기가 이제 제대로 눈에 들어와서 앞으로 더 확실하게 즐겁게 해볼 요량이란다.
배우 장혜진. 사진/CJ엔터테인먼트
“‘어른도감’하고 ‘선희와 슬기’란 영화에는 둘째를 안고 가서 촬영을 했어요. ‘선희와 슬기’에선 둘째 모유 수유하면서 촬영을 했으니. 하하하. 그래서 둘째도 영화에 등장해요(웃음). 연기가 너무 하고 싶었거든요. 진짜로. 그 마음을 알게 됐는지 스태프들도 같이 아기를 봐주고 그랬어요. 아역들 어머니들이 돌아가며 저희 둘째를 봐주시고. 이젠 그나마 좀 컸으니. 좀 다양한 연기를 해보고 싶어요. 봉준호 감독님이 다음 작품은 언제 불러주시려나 모르겠네요. 하하하.”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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