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치욕이 안심으로 바뀌는 시간
박용준 사회부 공동체팀장
입력 : 2019-07-18 06:00:00 수정 : 2019-07-18 06:00:00
박용준 공동체팀장
[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얼마 전까지 서울 수돗물 아리수는 박원순 시장, 그리고 서울시의 자랑이었다. 국내 최초로 ISO22000 국제인증을 획득했다. 수질검사도 세계보건기구(WHO)는 163개 항목을 권장하지만, 자체 항목까지 더해 170개 항목이나 한다. 2012년 이후 수질오염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으며, 시민 블라인드 테스트에선 생수 못지 않은 성적을 얻었다. 노후관 교체는 98.7% 완료해 2020년 100%를 앞뒀다. 아예 유네스코 수돗물 국제인증까지 받을 요량이었다.
 
안타깝게도 문제는 남은 1.3%에서 발생했다. 문래동 일대 배수본관은 1973년 만들어져 교체를 앞두고 있었다. 6월20일 문래동의 아파트에서 혼탁수 민원이 발생했다. 수질기준을 훌쩍 넘겼고, 필터를 갈아끼워도 금세 색이 변했다. 현장을 찾은 박 시장이 “치욕스러운 일”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세계 최고를 노리던 서울 수돗물이 하루 아침에 주민 삶을 뒤흔드는 불안요소로 바뀌었다.
 
언제나 모든 사건·사고는 초기 대응이 가장 중요하다. 이미 주민들 사이엔 “3월에도 이미 탁수가 나왔다”, “수질검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 등의 얘기가 돌며 불신의 싹이 퍼지고 있었다. 아파트 민원이 발생한 20일 오후 상수도사업본부장과 현장대응팀이 아파트 현장을 찾았다. 이날 밤 자정을 넘긴 시간엔 박원순 서울시장이 직접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박 시장은 병물 아리수 공급, 저수조 청소, 노후 상수도관 정비, 조사결과 주민 공개 등을 지시하며 진화에 나섰다.
 
당장 서울시의 최고책임자가 문제가 발생한 당일에 현장을 찾자 시민들의 분노는 한층 누그러졌다. 주야간 현장상황실이 운영되며 원인 분석과 수질검사, 저수조 청소, 주민 보상 등이 나뉘어 진행되자 어수선하던 현장 분위기는 방향을 잡아갔다. 주말인 23일엔 민원 발생 3일만에 주민설명회를 열고 탁도는 개선됐지만 아직 음용 가능 단계는 아니라고 솔직하게 전달했다. 주민설명회는 이후에도 주말 등을 이용해 모두 네 차례 열려 주민 요구사항을 반영하고 진행상황을 공유했다.
 
안정화 조치를 취하자 수질조사 결과는 눈에 띄게 좋아졌다. 27일을 기점으로 탁도와 다른 수질기준이 양호하게 나타났지만 섣부른 판단 대신 식수제한 해제는 신중하게 접근했다. 대학교수 등이 참여한 민관합동조사단은 주민들이 가장 걱정하던 필터 착색시험 결과까지 나온 후에야 지난 8일부터 식수제한 해제를 검토했다. 민관합동조사단이 지속적으로 주민들과 소통한 덕분에 주민들도 불신을 거두고 지난 12일 주민설명회에서 흔쾌히 식수제한 해제를 동의했다.
 
식수제한이 해제됐음에도 여전히 민관합동조사단은 운영 중이다. 마지막 단추인 1.7km 길이의 배수본관이 예산만 세워졌을 뿐 아직 교체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관합동조사단은 배수본관 교체 때까지 주민들과 정보를 공유하며 소통한다. 서울시는 이미 추경으로 예산을 세워 남은 138km 노후관을 올해 안에 교체한다. 이젠 상수도뿐만 아니라 하수도와 온수관 정비에 눈을 돌리고 있다.
 
식수제한 해제를 마치고 서울시와 주민 사이에서 함께 호흡한 채현일 영등포구청장과 전화통화를 했다. 채 구청장은 “주민들 불신이 이젠 회복돼 안심해도 될 상황”이라며 한숨 돌렸다. 이어 “박 시장이 메르스 때처럼 발 빠르게 현장에서 대응해 주민들이 차분해졌다”며 “초기 대응과 과정에 대한 투명성, 신뢰 회복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고 평가했다. 치욕이 안심으로 바뀌는 시간, 22일이었다.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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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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