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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건설 돌파구, 엔지니어링)②어렵고 돈 안되는 설계 기피…"시공 위주 성장, 관성 버리지 못해"
세계 설계 시장 점유율 하락, 시공 중심 해외 수주는 한계…"판로 열려면 설계 역량 키워야"
2019-07-22 06:00:00 2019-07-22 06:00:00
[뉴스토마토 김응열 기자] 건설업에서 설계의 중요성은 커지는데 국내업체의 설계 역량은 성장이 더디다. 중국의 일대일로, 개발도상국의 경제 성장에 따른 도시 개발 등 해외 인프라 설계 시장의 확장 가능성이 커지고 있지만 선진 외국 기업과 경쟁해 해외 사업을 수주하기에는 전망이 어둡다는 지적이 나온다. 설계 분야가 시공에 비해 부가가치가 높다는 점, 설계 수주 경험이 다른 설계 사업 입찰 시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같은 약점은 국내 건설업계에 뼈아프다. 이에 시공 위주로 치우친 건설업계가 자성하고 국가적으로도 엔지니어링 산업의 발전을 위해 적정 대금 보장 등 지원 노력을 동반해야 한다는 조언이 뒤따른다.
 
21일 엔지니어링업계 관계자는 “해외 설계 시장은 점점 커지겠지만 국내 설계 역량은 발전이 더뎌 해외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도 비슷한 우려를 표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건설사들이 시공 위주로 성장해왔고 그 관성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있다”라며 “산업 발전을 위해 설계 역량 투자가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실제 국내 건설업계의 설계 분야 세계 경쟁력은 하락 추세다. 한국엔지니어링협회가 글로벌 건설 전문지 ENR이 발표한 225대 엔지니어링 기업의 해외 매출을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의 엔지니어링업체가 세계 설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15년 2.4%에서 2017년 1.9%까지 낮아졌다. 지난해 ENR이 조사한 세계 건설·엔지니어링사의 설계 분야 해외 매출 순위 중 50위권에 진입한 국내 기업은 단 한곳에 그쳤다.
 
 
올해 시공을 포함한 해외 건설 수주 성과도 예년과 비교해 부진한 가운데 국내 건설업계의 설계 역량이 향상됐더라면 해외 성적이 지금보다 나았을 거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 19일 기준 올해 해외 건설 수주 금액은 129억달러(약 15조1200억원)다. 지난해 동 기간 185억달러(약 21조6800억원)의 70% 수준이다. 올해 중동의 발주물량이 감소한 탓도 있지만 설계 역량이 충분했더라면 외국 기업에 놓친 사업을 가져왔을 거란 아쉬움이 남는다.
 
업계에선 해외건설의 판로를 확보하려면 설계 역량을 선진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설계 역량이 기본설계 사업을 수주할 때뿐만 아니라 시공 사업을 따낼 때도 낙찰 가능성을 높여준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본설계 등 설계분야를 수주하면 추후 본시공인 EPC(Engineering, Procurement, Construction·설계, 조달, 시공)도 같이 맡기는 경우가 많다”라고 설명했다. 설계 업무를 직접 수행하는만큼 공사 이해도가 높아 본시공에 들어가서도 좋은 품질을 보장할 수 있고 사고 발생 등의 위험 부담도 적다는 것이다. 
 
EPC 사업 추가 수주뿐 아니라 다른 기본설계 사업을 수주할 때도 설계 역량은 필수적이다. 유사한 설계사업 수주 경력이 있는 업체에 사업을 맡기는 경향이 있다고 업계는 전했다. 기본설계 수주 경험이 있으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다는 얘기다. 건설사 관계자는 “설계 역량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아 기본설계를 수주해본 업체가 계속 사업을 가져가곤 한다”라며 “수주를 따낸 경험이 있으면 역량을 입증 받은 셈이기 때문에 추후 기본설계 사업에 도전할 때 한발 앞서나갈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세계 설계 시장의 먹거리도 다수 나올 거라는 게 업계 관측이다. AIIB(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 출범 이후 아시아 시장에서 설계와 공사 시장의 비중이 나날이 상승하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 개발도상국의 도시개발 등 인프라 구축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이면서 시장이 커지는 추세다. 이는 국내 건설업계가 발을 넓혀야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내 건설사의 설계 역량은 좀처럼 늘지 않는 형편이다. 설계 역량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대형사들은 주택 산업으로 수익성을 확보하고 있는데 바빠 설계에 투자를 많이 할리 있겠냐는 자성론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건설사들은 주택 사업으로 이익을 남기고 있는 구조”라며 “설계 분야에 투자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적극 나서고 있지는 않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국내업체들은 당장의 시공에 치중하다 보니 설계에 소홀한 측면이 있다”라며 “건설업의 해외 진출을 가속화하고 발전하려면 장기적 안목을 갖고 설계 분야에 투자를 늘릴 필요가 있다”라고 꼬집었다.
 
김응열 기자 sealjjan1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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