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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도덕이 사라진 시대
2019-12-16 00:00:00 2019-12-16 00:00:00
초등학생 시절, 체육 다음으로 좋아하던 과목은 도덕이었다. 쉬워서 점수를 잘 받았다. 공부할 것도 없었다. 그저 상식적인 생각을 하면 됐다. 상식적인 일이 도덕적인 일이었다. 중고등학교로 넘어가면서 도덕이 어려워졌다.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하고 답하면 될 일이 아니었다. 철학이 담기면서생각의 힘이 중요해졌다.
 
어른이 됐다. 그것도 불혹을 훌쩍 넘긴 기성세대다. 기성세대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난, 도덕이 부재한 시대의 민 낯을 바라본다. 무엇이 문제 였을까. 많은 사람들이 초등학교 이후도포자’(도덕을 포기한 자)의 길을 선택하기로 한 것인가. 어쩌면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보다 도포자가 더 많은 세상일지도 모르겠다.
 
유명 연예인의 성폭행 사건이 터졌다. 지난해 대한민국을 강타한미투열풍 이후 우리 사회의젠더 감수성은 분명 변했다. 성 관련 범죄는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지탄받는다. ‘강제성여부가 가려지더라도 해당 연예인은 사실상 공인으로서의 생활을 더는 이어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부적절한 업소에 출입했단 이유만으로도 그의 도덕성은 이미 치명타를 입었다.
 
상반된 입장 속에서 진실 여부는 법적인 싸움을 통해 진위가 가려질 것이다. 문제는 이 사건을 대하는 대중의 반응이다. 포털 사이트 기사 댓글에는 연예인을 옹호하는 댓글, 피해자를 옹호하는 댓글, 논란을 폭로한 유튜브 채널을 공격하는 댓글 등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각자가 생각하는 바에 따라 자유 의견을 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 주장을 관철시키고 상대편을 공격하기 위해 도덕적 선을 넘는 경우가 더 많이 목격된다.
 
사건이 또 하나 터졌다. 이번엔 교육방송 인기프로그램에서 성인 남성 연기자가 미성년자인 여성 연기자에게 부적절한 언행을 한 것이 도마에 올랐다. 해명이 더 가관이다. ‘장난이었다고 한다. 비상식적인 일을 장난으로 여길 만큼 도덕적 규범이 해이해져 있다는 방증이다.
 
굳이 성 관련 사건이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도덕이라는 말은 힘을 잃어버린 듯하다. 최소한의 도덕성조차 찾아볼 수 없는 일이 또 알려졌다. 40년 전 총칼로 권력을 찬탈한 전직 대통령은 당시 동료들과 반란 기념일을 축하하는 자리를 즐겼다. 알츠하이머라 주장하는 그는 반란 기념일은 기억하면서 그의 권력에 대항했다는 이유로 무참히 죽어간 시민들의 목숨은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린 전직 그룹 총수가 세상을 등졌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말로 유명했던 그는 말년에세상은 넓고 도망갈 곳은 많다는 조롱을 받았다. 40조 원에 달하는 분식회계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였지만 세상은 그의 죽음 앞에 존경을 표했다. 도덕성보단 경제적 업적이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이 시대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줬다.
 
도덕이 사라졌다. 이제 상식적인 일이 곧 도덕적인 일이라는 암묵적 규칙은 깨져버렸다. 비상식적인 일이 더 많이 일어나고 있으니 도덕이라는 말에희소성이란 개념마저 첨가해야 할 요즘이다. 도덕이 부재하고 상식이 실종된 사회가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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