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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의료인력 낙수효과' 필요한 때
2020-08-07 06:00:00 2020-08-07 06:00:00
‘닥터헬기’로 유명한 이국종 교수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13년 한 다큐멘터리에 출연하면서다. 피가 철철 넘치는 응급실 바닥을 뛰어다니며 수술용 칼 대신 헬기 로프를 쥔 그의 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헬기로 꼬박 몇 시간이 걸리는 지역까지 ‘종횡무진’ 진료에 매진한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모순적인 감정이 들곤했다. 돈이 안 되는 곳엔 진료도 없다는 ‘박탈감’과 외딴 곳에서 사고를 당해도 비명횡사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안도감’의 교차였다.
 
당시 이국종 교수가 중시한 원칙은 ‘골든아워’다. 한시간 내로 환자의 치료가 시작돼야 그나마 생존 가능성을 높인다는 의미다. 그는 “자신이 환자에게 가까이 가야 환자를 살릴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며 이 원칙을 목숨처럼 여겼다. 이국종 교수의 다큐멘터리를 본 사람들이 알게된 자명한 사실은 진료를 받을 기회가 많을 수록, 더 빨리 받을 수록 살아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었다.
 
약 6개월 전부터 국민들은 ‘의료체계의 골든아워’를 직접 체감할 기회를 강제로 얻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국민이 처음으로 국가라는 존재를 자각하는 계기였다. 팬데믹 앞에 선 의료 시스템은 자칫 ‘돈이 되는 곳에만 진료가 있다’는 시장논리 앞에 위태로워질 뻔 했다. 대구시와 경북 지역에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의료 수요는 넘쳐났지만 진료 공급은 부족했다. 다행히 전국 각지의 의사 250명이 자원하면서 급한 불을 껐다.
 
만성적인 지역 의료인력 부족 현상은 ‘의료체계의 골든아워’를 무디게 만드는 주범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비 의사 인력 현황을 보면,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활동의사가 2.3명으로 OECD 3.4명 대비 68%에 불과한 수준이다. 
‘팬데믹 학습효과’를 얻은 정부가 의대 정원 카드를 내민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정부는 전국 각지에서 근무할 지역의사를 늘리기 위해 지역의사제를 시행하고 정원도 매년 400명씩 10년간 4000명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예상대로 의료계는 “대도심 쏠림으로 인한 부족 현상”이라며 반발이 거세다. 그러나 팬데믹을 겪은 국민의 시선에서 집단반발은 ‘밥그릇 챙기기’로 비춰질 뿐이다. 그들이 말하는 ‘쏠림 현상’도 의료인력 숫자가 부족한 탓이라는 점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지역에 더 높은 의료수가를 적용해주는 등의 지원책도 주요 인프라가 갖춰진 도심쏠림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결국 의료체계의 골든아워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부족한 인력 수를 늘려야 한다. 물 잔이 가득차면 아래 잔이 가득 차듯이 도심에서 넘쳐난 의료 인력이 다른 지역으로 퍼지는 ‘의료인력 낙수효과’가 필요한 때다.
 
정성욱 정책팀 기자 sajikoku@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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