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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4류정치의 부하국감
2020-10-27 06:00:00 2020-10-27 06:00:00
이건희 회장의 별세에 그가 생전에 했던 말들이 관심을 받고 있다. 가장 많이 회자된 것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이다. 또 1995년 중국 베이징 특파원 간담회 발언도 주목받고 있다. 이 회장이 기업 규제를 비판하면서 "우리나라의 정치력은 4류, 행정력은 3류, 기업능력은 2류"라고 말한 것이다. 
 
이 회장에 대한 평가는 사뭇 엇갈린다. 초일류 삼성그룹을 키워낸 경제의 혁신가로 보는 시각이 있는 반면, 정경유착과 무노조경영으로 일그러진 기업인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그의 과오가 바탕이 돼 일류 기업 삼성을 키웠냈는지, 아니면 일류 기업 삼성으로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과오는 어쩔 수 없이 행해져야 했던 것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둘의 연관관계를 명확히 따지기에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압축적 고도성장의 한국 경제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탓이다. 
 
그럼에도 이 회장의 '4류 정치'에 대해서는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이번 국정감사를 보자. 26일 21대 국회의 첫 국정감사가 공식적으로 종료됐다. 만약 국민들에게 국정감사에서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라고 물으면 아마도 많은 이들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부하' 발언을 첫 손에 꼽을 듯 싶다. 검찰총장은 법무장관의 부하가 아니라는 윤 총장의 말은 정치권과 검찰 안팎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고 다양한 해석을 낳았다. 이에 추미애 법무장관은 "'부하'라는 표현은 생경하다"고 말했다. 법무장관이 검찰총장의 상급자라는 표현은 가능한가라는 물음에 추 장관은 "맞다"고 답했다. 즉 국감기간 내내 검찰총장이 법무장관의 부하인가 아닌가를 놓고 소모적 논쟁이 반복된 셈이다.
 
우선 피감기관장들의 뿌리깊은 관료적 사고방식부터 고쳐져야 한다. 예컨대 해마다 국감에서 자료 제출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대의기관인 국회가 요청하는 자료의 필요성 여부를 부처에서 스스로 판단하는 데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입법부인 국회가 행정부의 국정 전반에 관해 행하는 감사가 국정감사다. 국민의 세금이 얼마나 제대로 쓰였는지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보완하고 다듬어야 할 행정력은 없는지 검토하고 점검하는 게 목적이다. 때문에 국감에 임하는 정치인들의 자세와 태도도 분명 달라져야 한다. 
 
매년 국감이 종료되고 나면 보도되는 단어가 있다. 바로 '국감 무용론'이다. 그리고 나서 대안으로 제시되는 게 '상시 국감론'이다. 해당 키워드를 검색창에 치면 수 십년 전부터 같은 지적이 반복돼 왔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국정을 책임지는 주요 국무위원 상당수는 오랜 기간 관료조직이나 기업에 몸담았던 이들이다. 피감기관장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즉 2류와 3류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이 국정감사장에서 4류로 만나는 형국이 작금의 현실이다. 비록 2류와 3류가 만나더라도 1류스럽게 정책 감사를 하는 장면을 기대하기는 어려운걸까.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의견과 같지 않으면 틀리다가 되는 정치의 오랜 악습을 벗어던져야 한다. 나와 의견이 같지 않으면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다.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를 존중하면서 논쟁하되 논의와 협의를 바탕으로 합의점을 찾는 방식으로 나아가는 게 1류 정치다. 지금은 정치를 4류로 평가한 1995년이 아니라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2020년이다. 
 
권대경 정경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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