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니 코리아디스카운트…자사주 취득만, 소각하는 미국과 달라
자사주 취득 후 보유…경영권 방어제로 작용
지배주주 지배력 부족한 DB하이텍 자사주 비중 늘려가
주주친화정책이라지만 자사주 많으면 외부 접근성 떨어져
“미국선 소각 일반화…자사주로 경영권 방어 시 배임소송”
2024-05-09 15:16:04 2024-05-09 18:06:29
 
[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밸류업 등 주주환원 확대로 자사주 취득이 늘었지만 소각이 없어 되레 주주가치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국은 자사주 취득을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쓰는 반면, 미국은 자사주 취득 시 소각이 일반화 돼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국내 증시가 비선호될 수밖에 없다는 관측입니다.
 
9일 각사에 따르면 회사가 자사주를 취득할 때 매입세가 작용해 주가는 부양됩니다. 하지만 자사주를 보유한 채 소각하지 않으면 회사주식에 대한 인기는 떨어질 수 있습니다. 소액주주로부터 보통주를 장내 매입해 자사주로 두면 그만큼 소액주주 비중이 감소하기 때문입니다. 상대적으로 지배주주의 입김이 커지고 소액주주의 주권활동이 작아지면 주식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도 식게 마련입니다. 이런 이유로 흔히 유통주식 수가 작고 지배주주 지분이 지나치게 많아도 주가가 저평가되기 일쑤입니다. 취득 후 소각하지 않는 자사주도 비슷한 영향을 미칩니다.
 
 
더욱이 국내선 보유했던 자사주가 회사간 우호주 교환이나 인적분할 시 의결권 부활 등 지배주주 주권 확대로 연결된 사례가 적지 않았습니다. 이는 소액주주들의 주권 희석 문제로 이슈화돼 국내 주식 전반에 대한 인기를 떨어뜨리며 코리아디스카운트도 형성하게 됐습니다.
 
DB하이텍은 지난 7일 200억원 규모 자사주 취득을 결의했습니다. 그러면서 주주환원 정책임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소각계획 없이 자사주를 모으는 중입니다. 지난해 1000억원 규모 자사주 매입을 이미 실시한 바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주주친화정책 일환으로 자사주 비중을 당시 6%에서 중장기 15%까지 확대하겠다고도 했습니다.
 
작년 말 기준 DB하이텍 최대주주인 DB Inc 지분율은 12.42%, 김준기 전 회장 지분 3.61% 등 특수관계인 지분을 모두 합쳐도 17.82%에 그칩니다. 국민연금이 8.18%를 보유했습니다. 경영권이 안정됐다고 보기 힘듭니다. 한때 국민연금 지분이 13%를 초과해 최대주주에 오른 때도 있었습니다. 이런 배경 아래 자사주를 확대하니 주주환원정책 외 경영권 방어 목적이란 해석이 시장에서 나옵니다.
 
쉰들러와 경영권 분쟁 중인 현대엘리베이터도 최근까지 자사주 취득을 이어왔습니다. 이 회사는 취득 후 소각과 처분 등을 병행해왔습니다. 처분에는 우리사주조합도 대상이 돼 경영권 분쟁 와중에 우호주를 늘렸습니다. 자사주가 없는 상태에서 회사가 최초 자사주를 취득한 것도 쉰들러와의 분쟁 이후였습니다. 2022년말 첫 자사주 취득 후 2023년 1월말 4.2%의 자사주가 생겼습니다. 이후 이익소각을 병행했지만 결과적으로 가장 최근 공시일인 7일 기준 7.6%까지 자사주가 늘어나 있습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작년 말 기준 최대주주 현대홀딩스컴퍼니가 19.26% 지분을 가졌습니다. 특수관계인 지분은 총 27.80%입니다. DB하이텍보다는 지배주주 측 지분율이 높으나 5% 이상 주주 중에 쉰들러 11.51%, 오비스인베스트먼트메니지먼트 7.1%, 국민연금 6.51% 등 외부주주가 많습니다.
 
역시 자사주 취득 중인 SK는 앞선 사례와는 조금 다릅니다. 지난해 11월부터 1200억원 자사주를 매입하는 데 소각할 계획입니다. SK텔레콤, SK이노베이션, SK스퀘어 등 자회사들도 자사주 취득 후 소각을 완료해 주주친화적이란 평가도 받습니다. 다만 SK는 과거 SK C&C와 합병 과정 등에서 발생한 자사주가 24.6%나 존재합니다. 최태원 회장 지분이 17.73%, 특수관계인 총 지분이 25.87%로 지배력이 부족하나 자사주가 경영권 방어제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최근 밸류업 정책 프로그램으로 기존 보유 자사주의 소각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재계는 경영권이 위태로워진다며 자사주 소각 시 차등의결권이나 상속세 폐지 등 다른 방어수단을 달라고 정부에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은 미국과 비교되며 한국 증시에 대한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목됩니다. 미국에선 최근 주가 부양을 위해 자사주 소각이 활발합니다. 이에 외국인투자자가 한국 기업 투자를 더욱 꺼리게 되는 코리아디스카운트 원인도 상대적으로 더 도드라져 보입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미국은 자사주를 산다면 일반적으로 소각한다고 인식한다”며 “회삿돈으로 자사주를 사서 경영권 방어수단으로 쓰는 건 배임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에 경영진에 대한 소송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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