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차철우·김태은 기자]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통화가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이재명정부의 외교가 본궤도에 오를 전망입니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부터 6·3 대선까지 6개월이라는 외교 공백의 여파가 만만치 않은 실정인데요. 이 대통령은 취임 하루 만에 관세 전쟁과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노선에 대한 압박, 주한미군 역할 변경과 북·러 밀착에 따른 안보 불안 등 숱한 시험대에 오르게 됐습니다.
하루 만에 외교 '본궤도'…입증의 시간
애초 4일 오후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첫 통화를 가질 예정이었지만, 대통령실은 양국 정상 통화가 순연될 전망이라고 전했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이 대통령에게 축전을 보내고,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가 임박하면서 임기 하루 만에 외교일정이 시작된 겁니다.
백악관은 3일(현지시간) 이 대통령 당선에 관해 "한·미동맹은 철통같이 견고하다"고 밝혔습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성명에서 "우리는 역내 안보를 강화하고, 경제적 회복력을 향상하며, 우리가 공유하는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한·미·일 3자 협력을 계속해서 심화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대통령에게는 외교 일정도 산적해있습니다. 오는 15~17일 캐나다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는 이 대통령의 외교 데뷔 무대가 될 전망입니다. 우리나라는 G7 회원국은 아니지만 2021년과 2023년 두 차례 초청됐습니다. G7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열 가능성도 있습니다. '톱다운'(하향식) 방식의 외교가 개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오는 24~26일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가 개최됩니다.
앞서 윤석열씨는 취임 11일 만에 서울에서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의를 가졌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 약 51일 만에 미국에서 정상회의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대선 유세 과정에서 내치 관리를 이유로 G7 참석 여부에 유보적 태도를 밝혀 만남이 뒤로 미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오는 11월에는 경주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도 열릴 예정입니다. 이재명정부의 외교 역량을 가늠할 수 있는 시험대가 될 전망입니다. APEC 정상회의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도 함께 참석하는데요. 트럼프 대통령의 참석 가능성도 있어 우리 정부의 외교력이 중요한 실정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취임 선서식에 참석해 취임사 하고 있다.(사진=국회사진기자단. 뉴시스)
시험대 오른 '실용외교'…외교 난제 '첩첩산중'
이 대통령의 '실용 외교'는 한·미 간 외교 현안과 맞물리면서 곧바로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최근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전 세계를 상대로 한 '관세 정책'을 발표하며 무역 질서 재편에 나섰습니다. 한국에도 25%의 국가별 관세부터 품목 관세가 부과된 상황입니다. 다음 달 9일이면 상호관세 90일 유예기간이 종료되는데요. 트럼프 대통령은 주요국들과의 관세 협상을 두고 '속도전'에 돌입하는 모습입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은 지난 3일(현지시간) 무역 협상 중인 모든 국가에 4일까지 '최고의 제안'을 제시하라는 서한을 보냈습니다. 이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대미 관세 협상 제안서를 검토해야 하는 겁니다.
한국은 치열해지는 미·중 전쟁 속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였습니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지난달 31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많은 국가가 중국과의 경제 협력, 미국과의 방위 협력을 동시에 하려는 유혹을 받는 것을 안다"며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노선에 공개적으로 경고했습니다. 이 대통령이 내세운 실용외교는 한·미 동맹 강화와 한중관계 발전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만큼, 외교 '줄타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은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에 관한 압박 수위도 높이고 있습니다. 헤그세스 장관은 같은 날 "독일을 포함한 나토 회원국들은 국내총생산(GDP)의 5%를 국방비로 지출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며 "아시아의 주요 동맹국과 파트너들이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훨씬 더 강력한 (중국발) 위협에 직면하고서도 국방비 지출을 덜 하는 상황에서 유럽이 그렇게(GDP의 5% 수준으로 국방비 증액)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의 경우 주한미군 주둔 비용 중 한국 부담하는 금액을 늘리라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당시 한국을 '머니머신'이라 칭하면서 한국이 현재의 9배에 달하는 100억달러 수준의 방위비 분담금을 지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올해도 '관세' 협상을 기반으로 무역·통상 분야뿐 아니라 대북·안보 분야를 함께 논의하는 이른바 '원스톱 쇼핑'을 거론한 바 있습니다.
주한미군의 임무와 규모 변화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최근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미국의 군사 역량 투입 최우선 순위를 '대중국 억제'로 설정했다고 밝히면서 주한미군의 임무 조정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미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2일 미국 국방부 당국자들을 인용해 국방부가 주한미군 약 4500명을 미국령 괌 등 인도태평양 내 다른 지역으로 재배치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에 미 국방부는 이에 즉각 "사실이 아니다"라고 답했지만, 전략 변화에 따른 조정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입니다.
갑작스럽게 북·미간 대화가 진전될 경우 한국이 '패싱'(배제) 당하지 않도록 사전에 대비하는 것도 이 대통령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비록 미국이 주도하는 러시아-우크라이나전 종전협상이 공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종전에 가까워질수록 러시아와 북한의 접촉면은 확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날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지시로 북한 평양시에 방문했습니다. 러시아 국가안보회의는 이번 회담에서 양측이 "러시아와 북한 간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북러조약)의 일부 내용 이행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북한과 러시아가 접촉면을 넓히면 트럼프 대통령도 북·미 대화 가능성을 높일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때 한국이 소외 당하지 않는 대비책이 필요합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취임사에서 "북한 GDP의 2배에 달하는 국방비와 세계 5위 군사력에, 한·미 군사동맹에 기반한 강력한 억지력으로 북핵과 군사도발에 대비하되, 북한과의 소통 창구를 열고 대화 협력을 통해 한반도평화를 구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차철우 기자 chamato@etomato.com
김태은 기자 xxt19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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