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승리지상주의,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됐다
2014-02-20 10:00:00 2014-02-20 11:12:15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 경기를 정점으로, 소치동계올림픽도 종반을 향해 치닫고 있다.
 
이번 올림픽은 유독 구설수가 많았던 대회로 기억될 듯 하다. 안현수를 둘러싼 해묵은 파벌 문제는 올림픽 기간 내내 여론을 들끓게 했다. 심지어는 대통령 마저 이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기결과와 메달 순위에만 관심이 집중되는 성적지상주의, 김연아 등 유력 금메달 후보에게 가중되는 과도한 관심도 이번 대회에도 여전했다. 참가선수들이 경기에 집중하는데 방해가 될 정도다.
 
여기에다 일부 네티즌들은 한국 쇼트트랙 선수와 경기 중 충돌한 외국선수의 SNS에 사이버 테러를 저질러 해외 여론의 빈축을 사고 있다.
 
언론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부산외대생들의 참사가 있었던 날, 유력 공중파들은 뉴스시간에 여자 쇼트트랙 계주 금메달 소식을 톱으로 전하기에 바빴다. 국가적 비보가 있었던 날에도 이들의 관심은 오직 메달에만 집중돼 있었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금메달이 나오는 순간이면 마치 세상이라도 다 얻은 듯 환호작약하다가, 기대에 못미치는 성적이라도 거두게 되면 금세 외면한다. 금메달을 딴 선수이거나, 예선 탈락한 선수이거나 모두가 지난 4년간 이번 대회를 위해 구슬땀을 흘려왔다. 하지만 좋지 못한 성적을 거둔 이들에게 그동안의 노고를 격려하는 목소리를 찾기 힘들다.
 
김연아 선수가 지난번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했을때, 전세계 언론들은 그의 뛰어난 경기력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한국 국민들의 부담스런 기대를 견뎌낸 강한 정신력을 언급하는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 한국인의 극성스런 호들갑은 외국에서도 익히 알려졌을 정도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국제대회 성적에 대해 과도할 정도로 집착해왔다. 올림픽 순위를 국력의 척도로 여겼고, 금메달 수상자를 국가적 영웅으로 추대했다. 반면 기대에 못미치는 성적을 거둔 이들은 역적 취급을 하기도 했다. 메달 도전에 실패한 선수들은 국민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해야 했다.
 
스포츠뿐만 아니다. 각종 국제경쟁력 통계에서 한국의 순위가 조금이라도 떨어질 때면, 신문지면은 이를 질타하는 사설로 뒤덮이기 일쑤다. 나태해진 사회분위기를 꾸짖고, 지금은 분배가 아니라 성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방송을 메운다. 반면 '삶의 질'이라던가 '언론자유', '청년실업' 등의 통계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둔감하다.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결과만 내놓으면 된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 정서가 됐다. 지난 50여년간 사회가 겪어온 압축성장의 이면에는 이같은 결과지상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결과지상주의는 스포츠 세계에서 승리지상주의로 나타난다. 동메달을 목에 걸고 환호하는 외국 선수와 은메달을 따고서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한국 선수가 흔히 대비되곤 한다. 금메달이 아니면 모두 패배자라는 냉혹한 기준 때문이다.
 
올림픽이 끝나면, 잠깐이나마 주목받았던 비인기 종목 선수들은 다시 음지로 돌아가고 몇몇 올림픽 스타들에게는 CF 요청이 쏟아질 것이다. 스포츠 분야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다시 수면 아래로 들어가고 국민들의 시선은 다음번 스포츠 이벤트로 옮아갈 것이다.
 
몇십년째 이어져온 모습을 이제는 매듭지을 때도 됐다. 스포츠 경기는 스포츠 경기로서 받아들이고, 지난 몇년간 올림픽을 위해 땀흘려온 선수들의 노력을 아낌없는 박수로 격려해야 한다. 나눠먹기식 파벌싸움의 희생양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실력으로 공정하게 평가받는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한다.   
 
올림픽이 끝날 때마다 되풀이되는 반성이 공염불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이제는 바꿔야만 한다'는 각오로 시스템 개선에 임해야 한다.
 
소치올림픽이 끝나면 4년 후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린다. 그때는 지금보다 하나라도 나아져 있어야 하지 않을까.
 
손정협 IT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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