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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노항래 은빛기획 대표 "故 신해철 조문보를 만든 배경은"
2014-11-24 18:09:03 2014-11-24 18:09:12
◇신해철 ⓒNEWS1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우리시대의 가왕(歌王) 고 신해철 님의 힘찬 가락 속에서 슬픔을 이길 힘을 얻습니다."
 
지난달 28일 7080에게는 추억이었고 90세대에게는 멘토였던 가수 신해철이 세상을 떠났다. 그와 함께 청춘을 함께 했던 이들은 마치 자신의 반쪽이 잘려나간 것처럼 슬퍼했고, 애잔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커다란 슬픔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신해철의 죽음에 같이 아파했듯이 조문보를 통해 추모에 동참한 이들이 있다. 위에 글귀는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그를 추모하는 의미로 만들어진 8쪽으로 구성된 조문보에 쓰인 문구다.
 
이 조문보에는 신해철의 삶을 돌아본 글과 함께 생전 호흡을 맞췄던 동료 연예인들의 일화가 실려있었고, "내가 죽으면 장례식장에서 '민물장어의 꿈'이 퍼져나가길 원한다"는 고인의 말을 빌어 '민물장어의 꿈' 가사도 담겨 있었다. 
 
신해철이 죽은 뒤 이틀 째 되던 30일 유족과 장례식장을 찾은 고인의 지인들에게 조문보가 전달됐다.
 
조문보가 제작된 배경에는 스토리가 있었다. 국민참여당에서 정책위원장을 맡았고 현재는 은빛기획이라는 자서전 제작사를 이끌고 있는 노항래 대표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노항래 대표를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의 은빛기획 사무실에서 만나 속마음을 들어봤다. 그는 "유족들이 좋아하는 마음에 개인적으로는 보람이 있었습니다. 노 대통령을 좋아해줬던 고인에 대한 고마움이 있어서 만들게 됐습니다"라고 담담히 이야기를 꺼냈다.
 
◇노항래 대표 (사진제공=은빛기획)
 
◇"신해철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 싶었다"
 
신해철의 조문보 제작은 지난달 29일 노 대표가 지인들과 함께한 가벼운 점심 자리에서 시작됐다. 50대 언저리의 이들 역시 신해철의 노래를 들으며 8090을 같이 보냈다. 그들에게도 신해철의 죽음은 크나큰 아픔이었다.
 
"노 대통령의 의리를 지켜준 친구였잖아요. 저도 굉장히 아쉬웠죠. 얘기를 하던 중에 노 대통령을 좋아해줬던 친구인데, 뭔가 보답할 거 없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조문보를 만들게 됐습니다. 돌아가신 대통령을 위해서라도 의리를 지키고 싶었어요."
 
큰 상심을 하고 있는 유족들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점심을 먹고나자마자 급히 제작에 들어갔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그의 사진을 구했고, 이력을 얻었다. 신해철이 생전 썼던 저서 '신해철의 쾌변독설'에서 일부를 발췌했다. SNS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올린 추모의 글을 검색했다. 서태지가 직접 읽은 추도문도 같은 방식으로 구했다.
 
그렇게 누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조문보를 만들었다. 8시간이 넘는 시간이 걸렸고, 미리 1000부를 제작해 유족에게 전달했다.
 
반응이 뜨거웠다. 고인을 사랑했던 사람들이 그 조문보를 갖기를 원했다. 다음날 4000보를 더 제작했다. 조문보 제작 기금은 참여네트워크의 조합원들의 뜻으로 해결했다.
 
"일부 팬들에게서 아직도 전화가 옵니다. 자기한테 그 조문보를 보내줄 수 있겠냐고요. 신해철씨는 정말 멋진 삶을 산 거 같아요."
 
◇노항래 대표 (사진제공=은빛기획)
 
◇"품위있는 장례문화 만들고 싶다."
 
조문보는 표현부터 생소하다. 장례식장에서 거의 본적이 없다. 신해철의 장례를 계기로 이름이 알려졌다.
 
노 대표는 올해부터 조문보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최초로 시작된 사업이다. 상표권으로도 등록했다. 그는 어떻게 조문보를 만들게 됐는지 궁금했다.
 
노 대표는 "사실 우리 장례문화라는 게 내용이 없다고 생각했다. 조의금 전하고 상주에게 눈도장을 찍으려고 장례식장에 가는 게 전부인 듯 했다. 품위있는 장례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웰다잉 프로그램의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작은 노 대표 아버지의 자서전을 만든 것부터였다.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노 대표였다. 학생운동을 하던 아들과 목사인 아버지는 이념적으로 틀어져있었다. 징역살이 하는 아들이 못마땅했던 아버지였다고 한다.
 
나이가 들고나서 아버지의 자서전을 만들게 됐다. 아버지도 그 과정이 즐거웠고, 본인에게도 뜻깊었던 시간이었다고 했다. 작은 인쇄물로 만들었고, 돌아가셨을 때 조문객들에게 나눠드렸다.
 
"당시 조문오신 분들이 굉장히 기특하게 여기셨어요. 엄청 잘했다고 좋아해주셨어요. 여러 장례식장을 오고 가다가 조문보를 사업 아이템으로 생각하게 됐습니다."
 
지금 그에게 있어 조문보를 만드는 작업중 가장 큰 보람은 유족들의 반응이다.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고 한다.
 
"유족들이 고맙다고 할 때가 가장 기뻐요. 많은 분들이 조문보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들의 일생을 다시 그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람은 죽어서 평판을 남기잖아요. 장례문화가 고급스러워질수록 사회에 품위가 생긴다고 생각해요. 미국만 보더라도 영결식을 하고 고인에 대한 추모도 나누고 에피소드도 얘기하고 하거든요. 한 인간의 삶을 돌아보고 위로하는 문화가 생겼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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