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공백 장기화…삼성, 앞날도 '먹구름'
"앞날 생각할 겨를 없었다" 경영차질 우려…옥중경영으로 전열 재정비 전망
2017-08-27 16:04:29 2017-08-27 16:10:45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뇌물 공여 등 혐의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뒤 서울구치소로 이동할 호송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삼성의 실타래가 한없이 꼬였다. 이 부회장의 실형으로, 복귀시 가능했던 계획들은 한동안 떠올릴 수 없게 됐다. 비상경영체제는 기약 없는 리더 공백기를 앞두고 일정 부분 정비가 필요해졌다. 지금으로선 계열사별 독립경영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굵직한 투자와 인사 등에 있어 이 부회장의 ‘옥중경영’만이 예측 가능한 대목이다. 삼성은 창립 이래 최초로 총수가 구속되면서 비정상적인 조직운영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삼성의 비상경영체제가 장기 국면에 접어든다. 이 부회장은 5년 실형을 선고받고 구치소에서 상급심 결과를 기다리게 됐다. 특검법에는 2심 판결이 2개월 내 이뤄지도록 돼 있으나, 가능성은 낮다. 1심도 규정을 넘겨 6개월이나 걸렸다. 항소심은 형량을 결정하는 사실상의 결심으로, 삼성과 특검 모두 사활을 걸 것이 확실시돼 1심보다 더 많은 시일이 걸릴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상고심까지 갈 것을 고려하면 소송은 내년도 훌쩍 넘길 공산이 크다. 이건희 회장마저 오랜 와병에서 깨어나질 못해, 삼성은 당분간 무리한 변화보다 안정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이미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을 지난 2월 해체시켰다. 이후 사상 처음으로 계열사 독립경영체제 실험에 돌입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권오현 부회장(DS부문장)을 중심으로 윤부근 사장(CE부문장), 신종균 사장(IM부문장) 등 전문경영인의 책임 분배가 비교적 잘 돼 있다. 그룹 실적의 70% 이상을 책임지는 삼성전자는 외부로는 삼성을 대표하며, 안으로는 타 계열사의 바로미터다. 지난달 28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간담회에는 권 부회장이 이 부회장을 대신해 삼성 대표 자격으로 참석했다. 앞으로 계열사간 조율은 권 부회장이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최치훈 삼성물산 대표의 향후 행보를 눈여겨봐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난 6개월은 이 부회장 부재 속에서도 비교적 무리 없이 가동됐다. 포인트 인사도 이뤄졌고, 삼성전자는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계열사들도 올 들어 실적이 나쁘지 않은 편이다. 지난해 인수한 하만은 올 2분기 2억달러 영업이익을 내는 등 안착에 성공했다. 삼성전자는 상반기 투자(약 22조원)를 전년 동기보다 130%가량 늘렸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필요한 부분은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다. 삼성전자 주가도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국제 신용평가사 S&P는 이 부회장 유죄판결이 삼성전자 신용등급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고 평가했다. 반도체와 스마트폰을 바탕으로 하반기 실적도 우수할 것이란 전망이다.
 
삼성은 그러나 현재의 호실적 등이 이 부회장의 구속 전 투자와 의사결정 판단에 따른 결과라고 설명한다. 미래 사업 준비나 앞으로의 경쟁은 어려워질 것이란 얘기다. 외부에서도 그룹 차원의 구조조정이나 대규모 인수·합병 등은 아무래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이 부회장의 ‘옥중경영’이 강화될 것이란 전망에도 무게가 실린다. 옥중경영이 정착되면 미뤘던 사장단 인사 등 경영정상화 노력도 병행될 수 있다. 이 부회장과 그룹 간 메신저로는 이인용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장(사장)이 유력하다는 관측이다. 이 팀장은 그룹 내 대표적인 이 부회장 인맥으로, 다수의 미전실 소속 임원들도 미전실이 해체되면서 삼성전자로 배치됐다.
 
비슷한 사례로 SK가 지목되기도 했다. 최태원 회장이 2013년 1월 법정구속된 이후 2년 반 넘게 옥살이를 이어갈 때만 해도 초기엔 반도체사업 차질 등 우려가 많았으나 SK하이닉스는 매년 실적 고공행진을 펼쳤다. 부족하지만 수펙스추구협의회가 그룹 최고의사결정기구로서 최 회장을 대신했고, 중요한 판단은 옥중경영에서 나왔다. 2015년 SK와 SK C&C 합병 등 그룹 지배구조 현안 해결도 최 회장이 수감 중인 상태에서 이뤄졌다. 최 회장은 이후 자산 13조원의 거대 지주회사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동시에 김창근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부회장) 등 부회장 3인을 전격 교체하며 친정체제도 강화했다.
 
다만 삼성으로선 당면 문제가 적질 않다. 당장 판결의 후폭풍이 걱정이다. 법정 공방이 길어질수록 삼성전자의 대외 신인도와 기업 이미지엔 치명적이다. 1심 판결에서도 ‘정치와 자본 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라며 정경유착의 덧칠이 칠해졌다. 향후 상급심 확정 판결에 따른 해외 투자자의 손해배상 청구 등 부차적 문제들도 기다린다. 삼성 관계자는 “그동안 앞날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며 “항소심에서 무죄 입증이 최선인 가운데, 각자는 맡은 일에 충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재단 출연 부분을 뇌물죄로 인정하지 않은 1심 판결에 따라 연관된 다른 재벌 그룹들은 걱정을 덜었다. 특검은 항소심에서 이 부분의 유죄 입증에 전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이 내려진 데는 형량이 큰 횡령과 재산국외도피 유죄 판결이 컸다. 삼성으로서는 근거가 되는 뇌물죄부터 풀어야 한다. 자칫 도돌이표가 될 수 있는 항소심에서 삼성이 변론 전략이나 법률대리인을 바꿀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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