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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주중 한국대사 자리, 그 가벼움에 관하여
2019-01-10 06:00:00 2019-01-10 06:00:00
최한영 정경부 기자
1992년 8월 한중 수교 후 지금까지 12명이 주중 한국대사를 거쳤다. 이 중 단연 눈에 들어오는 인물은 김하중 전 대사다. 김대중정부 말기인 2001년 10월 대사가 된 그는 노무현정부 5년을 거쳐 2008년 3월 이명박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에 임명되기까지 6년6개월을 재임했다.
 
중국에 대한 전문성이 ‘역대 최장수 주중대사’의 바탕이 됐다. 어린 시절부터 외교관을 꿈꾼 그는 고교 시절인 1964년 10월 중국의 핵실험 성공을 보며 중국근무 생각을 굳혔다고 한다. 서울대 중문과 졸업 후 외무부(현 외교부)에 입부한 그는 남들이 원하는 대미 업무를 마다하며 동북아2과장을 맡고 베이징 무역대표부에서 일하며 국교 수립 전부터 중국 외교관들과 인맥을 쌓아왔다. 그가 주중대사로 내정되자 중국 정부가 1주일 만에 아그레망을 부여하고, 부임 이틀 만에 장쩌민 당시 국가주석에게 신임장을 제정한 일은 중국 측의 신뢰를 보여준다. 중국이 ‘중공’으로 불리던 시절부터 선견지명을 갖고 한 길을 걸은 것은 이후 정부의 대중외교에 큰 보탬이 됐다.
 
다른 인물들도 김 대사와 같은 평가를 받으면 좋으련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역대 대사들의 노고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이라는 나라의 중요성 때문에라도 대부분이 재임 중 열심히 일했다. 문제는, 이들 중 상당수가 대사 임명 전 중국과 별다른 인연이 없다는데 있다. 직업외교관이 아닌 정무직 대사가 왔을 때 문제는 더 커진다.
 
이명박정부 시기 류우익 대사가 임명됐을 때 일이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비서실장까지 역임한 류 대사 내정소식을 전하며 “류 전 실장은 대통령 국정·외교철학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중국정부도 보다 긴밀한 한중관계를 위해 중량급 고위 인사를 보내면 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중국 현지반응은 달랐다. 한 중국전문가는 당시를 회상하며 “중국 정계의 첫 반응은 ‘류우익이 누구냐’였다”고 말했다. 이른바 ‘실세 대사’가 오는 것과 한중관계 발전이 정비례 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설명도 내놨다.
 
임명된 대사들의 재임 기간이 짧다는 점도 문제를 키운다. 김 전 대사를 제외하면 역대 주중대사들의 평균 재임기간은 채 2년이 안된다. 말 그대로 ‘얼굴 좀 익힐만하면 떠나는’ 일을 반복한 것이다. 이는 우리 정부가 중국에 쏟는 노력이 크지 않다는 오해와 외교력 저하를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된다. 반면 주한 중국대사들의 재임기간은 적어도 3년 이상이다. 현 추궈홍 대사도 지난 2014년 2월 부임 후 5년 째 일하고 있다.
 
지난 8일 노영민 주중대사가 청와대 비서실장에 임명됐다. 2017년 10월 대사 부임 후 1년4개월 만으로, 새 대사가 오기 전까지 공관 차석이 공백을 메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방중 중 귀국하며 비판이 나오자 노 실장은 “모든 것을 어제·오늘 회의를 통해 마무리하고 오는 길”이라는 말로 갈음했다. 급변하는 한반도 정국 속 주중대사 자리의 가벼움을 다시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이 와중에 소박한 희망도 하나 생겼다. ‘다음 주중대사는 적어도 문재인정부 남은 임기까지 계속할 사람을 임명했으면…’
 
최한영 정경부 기자(visionch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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