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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우리는 알 수 없다
2020-04-21 06:00:00 2020-04-21 06:00:00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런 팬데믹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경고야 전문가들에 의해 가끔 제기되어 왔지만, 전세계 그 어느 정부도 이정도 규모의 판데믹에 대비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니 우리는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미래란 불확실하고 우리는 알 수 없다.
 
인간은 앞을 보는 동물이라고 한다. 행동의 결과를 두뇌 속에서 시뮬레이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두뇌는 주식시장의 변동이나 팬데믹의 도래를 예측하기 위해 진화하지 않았다. 인간의 두뇌는 아프리카의 홍적세에서 진화했고, 우리의 의사결정을 지배하는 회로들은 대부분 그 환경에 필요한 만큼만 발달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경제학이 가정하는 합리성이 아니라 휴리스틱, 즉 발견법을 기반으로 판단한다. 우리 조상들에게 중요한 휴리스틱은 체스나 바둑에서 최적의 수를 찾는 게 아니라, 뱀이나 호랑이를 보면 도망치는 회로의 개발이었기 때문이다. 시간과 정보, 그리고 인지적 자원의 제약으로 인해, 인간 개개인이 예측할 수 있는 미래는 우리 두뇌가 지닌 휴리스틱의 범위를 넘어서기 힘들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언론에는 각종 철학자와 사상가 그리고 경제전문가들의 인터뷰가 실린다. 모두가 코로나 이후의 세계를 자기 방식대로 예측하고 있고, 일견 그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유발 하라리는 인류에게 분열 혹은 글로벌연대의 선택지가 주어졌다고 말한다. 그에게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개인정보의 보호인 것 같다. 그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동아시아 국가들이 취한 추적 및 일부 감시 시스템에 대해 언급한다. 분명한건 그에게도 팬데믹 상황에서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솔루션이 없다는 점이다.
 
생태학자 최재천은 코로나19 사태가 인간이 지구환경을 파괴해서 생긴 사태라고 진단한다. 더 나아가 그는 우리가 개미사회에서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개미처럼 살아가는 방법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는다. 뇌과학자 김대식은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아마존에 책을 주문했을 때에야 세상이 변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도킨스의 밈 바이러스를 언급하며 서양중심의 세계화를 비판하더니, 코로나 이후 세계질서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세계화 싸움이라고 예측한다.
 
과학사회학자 김환석은 코로나 사태가 300년 서구중심의 근대사상의 한계를 보여준다고 말하고, 글로벌거버넌스 연구자 임소연은 코로나19가 “인간과 비인간, 몸과 환경, 자연과 사회의 이분법을 넘나들어 실재하는 존재이고 새로운 연결과 삶의 방식을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최윤정 교수는 기독일보에 기고한 칼럼에서 첨단 과학의 힘으로 승승장구하던 인간이 다시 한번 형이상학적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자연주의와 허무주의 그리고 실존주의도 아닌 하나님의 보편 은총이라고 한다.
 
가장 한가하게 이 사태를 바라보는 인류학자 조한혜정은, 우리 모두 푹 쉬고 슬슬 재난학교나 만들자는 글을 썼다. 그의 눈엔 경제적으로 소외되어 죽어가는 이들과 현장의 의료진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오두막에 칩거하는 지식인의 심미적 세계관이 무섭다는 생각이 든건, 그의 글을 접하고 나서부터다. 수퍼스타 지젝을 비롯한 좌파 사상가들은 대부분 글로벌 협력과 연대의 가능성에 대해 발언하고 있지만,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오히려 세계화가 약화될 것이라고 말하는 상황이다.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코로나 사태에서 펼쳐지는 이 화려한 지적 향연들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 자신이 배우고 익힌 좁은 전공분야의 한계 속에서, 자신이 주장해왔던 이론의 틀에 따라 발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발 하라리의 예측은 그가 평소 주장해왔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최재천 또한 생태주의적 시각을 대변할 뿐이다. 경제학자는 경제가 가장 중요해보이고, 과학사회학자는 과학사회학의 이론틀이 코로나 사태의 핵심으로 보일 뿐이다. 사상가는 초인이 아니다.
 
코로나19로 세상은 분명히 변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보다, 더 건강하고 합리적인 세상을 위한 제도와 정책과 교육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다. 코로나19가 바꾸어 버릴 세상을,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실천은 코로나19와 상관 없이 계속되어야만 한다. 그러니 계속 걷겠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Woo.Jae.Kim@uottawa.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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