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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시론)“전문가들이여, 무지를 자각하라”

2016-10-11 06:00

조회수 : 18,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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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소중하다. 거짓을 물리치고 드러나는 진실은 무겁고 강력하다. 그러니 세속의 힘을 가진 자들에게 진실의 힘은 가장 두려운 존재다. 어떻게든 진실을 가려야만 알량한 힘을 지켜낼 수 있다고 믿으니 졸개들도 마찬가지다. 곡학아세(曲學阿世)와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고사는 벌서 수천년 전의 일이라지만 지금도 여전히 세상을 활보한다.
 
역사의 평가보다 현실의 향락이 중요하고, 하늘의 그물은 여전히 성글어 빠뜨리는 게 많다고 믿는 자들은 사마천의 한탄이 무색하게도 백이 숙제의 삶보다는 도척의 삶을 기꺼이 택한다. 어차피 죽은 다음에야 걸리는 그물이라면, 욕망과 본능이 주는 달콤하고 짜릿한 맛을 만끽하는 것만이 삶의 지혜라고 믿을 뿐이다.
 
아무리 혼용무도(昏庸無道)한 세상이라지만, 해괴한 일이 너무 많다. 아무런 직책도 갖지 않고 그저 어떤 이의 다섯째 딸로만 소개되는 이가 다시 자신의 딸과 관련된 일로 나라를 어지럽히고, 역린(逆鱗)이라는 왕조시대의 단어와 더불어 승리의 주역으로 등장한다. 그 와중에 권력을 감시한다던 특별감찰관은 그 부하들까지 직장을 잃게 만든 못난 사람이 되고, 오로지 주군을 향한 일편단심으로 곡기를 끊는다며 방문을 잠갔던 유력인사는 충성의 결실로 119를 불러 자신의 침상을 사진에 담았다.
 
진실을 위한 단식이 아첨을 위한 단식에 조롱당하고, 딸의 시신이라도 찾으려는 가련한 엄마의 간절한 염원은 새로운 학칙을 거침없이 만들고 지도교수까지 바꾸어가며 딸의 입학과 성적을 지켜내는 막강 엄마의 배경 앞에 감히 나설 길이 없다. 대통령이 지목하는 “참 나쁜 사람”은 세월호의 진실을 가로막는 관료를 향하기보다, 막강 엄마의 지엄한 딸에게 가당찮은 성적을 부여한 심판을 처단하지 못한 관료에게로 향한다.
 
진실을 두려워하는 권력자에 맞서 수많은 이들이 피 흘린 결과, 우리는 권력에 맞서 진실을 지키려 노력하는 전문가 집단과 그들이 살아갈 토양을 일구었다고 믿었다. 언론이 그렇고 학문이 그렇고 수사가 그렇고 재판이 그렇다. 심지어 직업공무원제도 그러한 노력의 소산이었다. 무릇 진실을 목숨보다 소중히 해야 할 사람들은, 펜을 들고 가운을 입은 채로 총칼을 들고 갑옷을 입은 이들을 제압하는 것을 또 다른 사명으로 부여받은 것이다. 그래서 감히 전문가라 불리게 된 이들은 거짓에 따른 혼란을 멈추게 하는 일에 누구보다 먼저 나서야 한다.
 
하지만 우리 앞에 펼쳐진 현실은 참담하다. 의학을 배우고 의술을 길렀다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진단서를 두고 충고와 질타를 멈추지 않지만, 이제 막 의사의 길로 접어드는 학생들조차 “전문가란 오류를 범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오류를 범했을 때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호소했지만, 정작 그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가장 흔들림 없이 알려야 할 주치의는 병사를 고집한다.
 
억울한 죽음의 원인을 살펴 단죄해야 할 책임을 맡고 있는 자들도 오히려 그 책임을 덮을 궁리에 여념이 없다. 그러한 무책임과 무경우에 추상과 같은 판단을 내려야 할 책임이 있는 법원마저 ‘조건부 영장’이라는 희귀한 모양새로 갈등의 끝이 아닌 갈등의 원인을 제공할 뿐이다. 결국 전문가는 혼란의 종식은커녕, 사회와 상식의 판단에 맞서 아집과 궤변을 고수하며 혼란을 가중시키는 존재가 되었다.
 
평화의 댐과 4대강 사업 등을 거치며 확인된 현실, 즉 과학적인 근거보다 권력의 이해관계에 따른 연구 결과가 아무런 제재 없이 유통되는 ‘전문가 거버넌스의 실종’은 심각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전문가들이 역사적 과오에 합당한 책임을 감당한 적은 없다. 그러니 장영실이 박정희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도척이 백이 숙제를 비웃는 현실은 나아지지 않는다.
 
스스로 양심을 속였기에 양심선언조차도 할 수 없는 전문가들은 이제 공론의 장을 피한 채 ‘관계자’라는 이름으로 기사에 숨어 교묘한 궤변으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한다. 그러니 모든 일은 힘과 술수로만 가려지는 세상이 되었다. 이렇듯 권력이 불편하지 않아야만 살아남는 진실이 활보하는 세상이라면 칼 포퍼가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그토록 증오한 전체주의 사회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전문가들이여, 당신의 무지를 자각하라. “우리는 금수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으로 남고자 한다면, 오직 하나의 길, 열린사회로의 길이 있을 뿐이다.” 당신이 진정한 우파라면 이제 결정할 때다. 거짓과 독선에 맞서 진실과 자유를 지키는 싸움을.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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