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이젠 너무 유명하지만 아직도 사실 이 배우를 볼 때 면 적응이 잘 안 된다. 영화 ‘범죄도시’ 1편에서 조선족 조폭 ‘양태’로 등장한 김성규. 가끔씩 요즘도 배우 김성균과 이름을 혼동하는 분들이 있다고 웃기고 한다. ‘범죄도시’ 속 양태의 모습은 누가 뭐라 해도 조선족 조직폭력배의 똘마니 모습 그대로였다. 도대체 저런 배우를 어디서 어떻게 대려 왔을까 싶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적응이 잘 안 된다’는 건 이런 점이다. 작품 속 김성규가 아닌 작품 밖 김성규를 볼 때면 쉽사리 납득하기 힘든 어떤 지점을 누구라도 느끼게 된다. 그건 작품 밖 김성규가 ‘너무 멋지다’는 점이다. 취향 차이라고 반박할 수 있지만 그를 실제로 본 관계자들도 모두가 입을 모아 그렇게 말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신드롬의 시작과도 같은 ‘킹덤’을 쓴 김은희 작가는 극중 ‘영신’ 역을 맡은 김성규의 달리는 장면을 거론하며 ‘너무 멋져서 넋을 놓고 봤다’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 김성규가 일본식 변발을 결정했을 때 사실 ‘어느 정도 자신 있었다’고 말한 우스갯소리도 농담은 아니었던 듯싶었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에서 ‘항왜’ 군사인 ‘준사’역을 맡은 그의 존재감은 없어선 안될 단팥 같은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참고로 그의 극중 모습을 보면 또 다른 김성규가 보일 정도다. 이상할 정도로 그가 연기를 하면 뭘 해도 멋이 있어 보이니 말이다.
배우 김성규.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김성규는 인터뷰 첫 시작에 여전히 그리고 아직도 믿기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고 했다. 이미 김성규는 무명의 터널을 벗어난 기성 배우로서의 프로 대우를 충분히 받고 있었다. 그를 캐스팅하기 위해 충무로 내로라하는 감독들이 시나리오를 전달하기 바쁘다. 하지만 그는 이번 ‘한산: 용의 출현’에 대한 남다른 감회로 첫 얘기를 전했다.
“예전 인터뷰에서도 몇 번 밝힌 적이 있었지만 사실 과거에 배우를 그만 두려고 했었어요. 그리고 다른 일을 찾아보자고 마음 먹은 시기에 극장에서 ‘명량’을 봤었죠. 그냥 일반 관객으로서 재미있게 봤어요. 근데 8년 뒤 제가 그 영화 후속편 출연 배우가 된 거에요. 참 닭살 돋지만 당시 함께 영화를 본 친구가 지금의 절 보고 ‘어떻게 이런 인연이 있냐’라고 할 정도이니 말이죠(웃음)”
전작 ‘명량’에선 실제 일본 배우인 오타니 료헤이가 ‘준사’로 출연했다. 그 배역을 프리퀄인 ‘한산: 용의 출현’에선 김성규가 이어 받은 것이다. 준사는 전작 ‘명량’에선 거의 캐릭터의 스토리가 드러나지 않았었다. 그리고 이번 프리퀄에서도 별다른 내용은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왜의 군사로 임진왜란에 참전한 그가 도대체 어떤 이유로 이순신 장군의 수하로서 자신의 나라를 등지고 조선과 이순신 장군을 위해 칼을 드는 지에 대한 구체적 이유는 드러난다.
배우 김성규.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처음 시나리오를 읽는 데 진짜 부담이었던 게, 이 인물에 대한 구체적인 서사가 거의 없었어요. 그저 ‘의’와 ‘불의’란 직관적이지만 어떤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는 상징적인 것들로만 막연하게 채워져 있는 것에 대해 진짜 막막했었죠. 이순신 장군을 연기한 박해일 선배가 있어서 가능할 것이라 생각은 했는데, 처참한 전쟁 속에서 인간으로서 어떻게 이런 선택을 했을까 막연한 부담이 컸어요. 결국 감독님의 요구에 순응할 수 밖에 없었죠.”
김성규가 연기한 항왜 군사 ‘준사’ 캐릭터는 김한민 감독이 만드는 ‘이순신 장군 3부작 프로젝트’에서 없어선 안될 중요한 캐릭터 중 하나다. 그래서 김성규의 부담감도 충분히 납득이 갔다. 내적인 부분은 채우고 나면 그 다음은 외적인 부분이다. 전작 ‘명량’에선 일본인 배우 오타이 료헤이가 한국말에 능통했다고 해도 ‘외국인이 전하는 한국말’의 느낌을 잘 살린 바 있다. 김성규는 우선 대사처리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빠지기 시작했단다. 자칫 잘못할 경우 희화화 될 요소가 많아 보였기 때문이라고.
“우선 제가 이순신 장군과 와키자카 사이를 오가는 캐릭터가 비중은 분명히 컸죠. 그래서 일본말과 조선말을 모두 해야 하는데, 특히 우리 말을 할 때 어떤 톤으로 해야 할까 싶었어요. 일본인이 하는 어눌한 느낌으로 가야할까. 그럼 웃기지 않을까. 관객은 내가 한국 사람인 걸 아는데. 김한민 감독님과의 대화에서 조율한 게, ‘신경 쓰지 말고 가자’였어요. 사실 그럼에도 지금 걱정인 건, 한국 배우가 일본인으로서 등장해 나오는 비주얼을 어떻게 받아 들일지에 대한 걱정이죠.”
배우 김성규.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무엇보다 김성규의 큰 변신은 헤어스타일이다. 극중 김성규는 일본식 변발을 하고 등장했다. 배역을 위한 가발이 아닌 실제 삭발이란다. 영화 속 등장한 모습처럼 가운데만 삭발한 게 아닌 머리 전체를 밀었단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헤어를 붙인 것이라고. 그는 잠시 고민도 했었지만 이내 미련 없이 머리를 밀어 버렸단다. ‘자를 거면 빨리 잘라 버리자’란 심정이었다고 웃었다.
“글쎄요, 일종의 전투에 참여하는 마음 가짐 이랄까. 고민하는 모습이 저 스스로에게 싫어서 그냥 밀어 버렸어요. 우선 밀고 나선 주변 사람들과의 교류를 최대한 자제를 했었죠(웃음). 당시 제 취미가 자전거였는데, 함께 타야 맛인데 그걸 혼자 했어요. 하하하. 뭐 헤어 스타일이 삶에 큰 영향을 주진 않았는데 촬영장에선 너무 더울 땐 햇볕에 머리 위쪽만 까맣게 타기도 하더라고요(웃음)”
그는 극중 자신이 따르게 된 이순신 장군을 연기한 선배 박해일과의 일화도 전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박해일은 극중에서나 극 밖에서나 오롯이 ‘이순신 장군’의 아우라를 느끼게 만드는 거대한 힘을 뿜어냈단다. 한 번은 김성규가 촬영장 근처 숙소에서 산책을 하고 들어가던 중 카페에 앉아 있는 박해일을 발견하고 넋을 잃은 상황을 묘사했다.
배우 김성규.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해일 선배가 평소에도 굉장히 차분하시고 묵직하신데 그 분의 제스처나 그런 것에 상대가 긴장을 한다기 보단 뭔가 다른 기운을 받게 해주세요. 지금 생각나는 데 부산 촬영 때였을 거에요. 오전에 촬영이 없어서 숙소 근처를 산책하고 돌아오는 길에 카페가 하나 있는데 거기에 그냥 일상복 차림으로 선배님이 앉아서 커피를 드시고 계시더라고요. 제가 꾸뻑 인사를 드리니 놀라지도 않으시고 그냥 웃으면서 받으시는 게 누가 봐도 그냥 ‘이순신 장군’이었어요. 그때 드는 생각이 ‘준사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싶었었죠.”
‘한산: 용의 출현’ 전작인 ‘명량’은 무려 1761만 관객을 끌어 모았다. 개봉 이후 8년 동안 국내 개봉 영화 사상 최다 관객 동원 타이틀을 보유 중이다. 영화인들 사이에선 이 기록은 앞으로도 깨지기 힘들 것이란 게 거의 기정사실처럼 받아 들여지고 있다. 김성규는 ‘한산: 용의 출현’ 속 타이틀롤은 아니지만 주요 배역으로서 느낄 부담감은 없을까 싶었다.
배우 김성규.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가 뭘 그 부분에 대해 느낄 게 있었습니까(웃음). 아마 부담을 느낀다면 해일 선배가 엄청나시겠죠. 전 제 배역에 대한 부담과 고민만 생각했어요. 이후 촬영을 끝냈고 언론시사회와 인터뷰를 하면서 ‘내가 정말 큰 작품에 출연을 했구나’ 싶은 것만 다시 느끼게 되고 있는 거죠. 이젠 제 손을 떠난 작품이니 즐겁게 이별하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주변에선 ‘범죄도시’ 흥행에 대한 질문도 많이 하시는 데 기회가 되면 ‘범죄도시’ 세계관에 어떤 식으로든 한 번 더 합류하고 싶어요. 그리고 ‘킹덤’ 질문도 많이 받는데, 김은희 작가님과 언젠간 다시 만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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